현대자동차 EV 콘셉트카 ‘프로페시(Prophecy)’ 전면.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코로나19와 저유가 등으로  전기차도 수요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대세는 전기차'라는 시대적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전기차는 단순히 ‘친환경’의 틀에 머물지 않고 자율주행차로 꾸준히 진화해 나가는 등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유가와 코로나19, 전기차 수요 위협

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올해 초 배럴당 60달러선에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가 최근 20달러대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국내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1월 첫째주 리터당 1558.7원에서 4월 둘째주에는 1357.3원으로 하락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저유가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휘발유 값이 저렴해지면 기존 내연기관 차의 유지비는 감소하지만 전기차의 충전 비용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유가 하락으로 전기차의 연비 절감효과가 줄어들면서 소비자들이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을 선택할 이유도 줄어들게 된다. 교보증권 리서치센터가 코나 일렉트릭과 코나 1.6 디젤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유가 하락 전 절감효과는 53%였다. 그러나 유가가 20% 하락한 경우를 가정했을 때 4월 기준으로 절감효과는 37.3%로 줄어 들게 된다. 유가가 대폭 하락할수록 전기차의 경쟁력도 그만큼 약화된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인한 유럽의 내연기관 완성차 시장 악화도 전기차 수요와 생산을 위축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당초 전기차 시장의 본격적인 확대가 예상됐던 이유는 유럽이 올해부터 강력한 환경 규제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EU(유럽연합)는 올해부터 배출량이 적은 순대로 95%까지의 신규 차량에 이산화탄소 허용량을 기존 130g/km에서 95g/km으로 낮췄다. 허용량을 초과할 경우 완성차 기업은 1g/km마다 95유로의 벌금을 물리고 2023년에는 배출허용량 기준을 62g/km, 2050년에는 10g/km으로 낮춰 지속적으로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KOTRA의 박소영 독일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은 PA컨설팅 자료를 인용해 “유럽의 선도 완성차 기업이 이전과 같이 (완성차 판매를) 지속할 경우 총 146억 5000만 유로의 벌금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다수의 기업이 대응방안을 갖추지 못해 벌금 부담이 막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처럼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 EU의 규제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필수가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자동차제조업체협회(ACEA), 유럽자동차부품공업협회, 유럽딜러협회 등 3개 단체는 유럽연합(EU)에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주민우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자동차 수요 둔화에 따라 유럽 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완화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며 "독일 자동차 협회 대변인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배출규제 완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매연 등으로 인해 대기환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요가 둔화되는 자동차 업계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배출규제 완화 조치가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멈췄으며, 이에 따라 대량 실업이 발생하고 전반적인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는 점도 고려 요소가 됐을법 하다. 전기차는 원가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높은 탓에 비슷한 성능의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차값이 오히려 비싸다. 때문에 실직 등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줄어든다면 전기차 수요는 더욱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자동차 모빌리티 비전 티저 이미지. 제공 : 현대차그룹

#기후변화, 전기차가 기본값(default)이 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위기와 우려가 ‘대세는 전기차’라는 흐름을 꺽는 데는 미미한 효과밖에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과거에는 유가가 떨어지면 내연기관차 수요가 늘고 전기차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기차가 확고한 미래 트렌드로 자리잡게 돼 전기차나 배터리 업황이 유가 변동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김정환 연구원은 "지난달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순수 전기차(BEV)가 전년 동월 대비 15% 증가했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90%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달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둔화하겠지만 내연기관차보다는 상대적으로 감소 폭이 작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가 급락으로 인한 전기차 시장에 대한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지역마다 영향이 다르지만, 탄소배출 저감 정책이 (시장에) 가장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상황과 구매력 감소 등이 전기차 매출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으나 환경규제라는 글로벌 방향성을 쉽게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이산화탄소 배출규제, 전기차 보조금 등 기후변화 극복을 위한 에너지전환 합의는 오랜동안 논의되고 추진돼온 사안이다. EU는 2030년 이후 순차적으로 내연기관을 퇴출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독일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일본 도요타 등 굵직한 완성차 업체들도 장기적으로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했다. 이와 관련 최보영 교보증권 애널리스트는 “규제에 대한 단기적 완화는 있을 수 있는데, 양보할 수 없는 문제임은 분명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앞으로 내연기관차를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한 상황에서 이를 철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정부도 전기차 및 수소차를 확대시켜나가겠다는 방향성에는 흔들림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이전에는 저유가가 전기차 등의 친환경차 구매 유인을 약화시켰으나, 글로벌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단순히 비용을 고려해 친환경차를 선택하는 구매자는 줄었다고 본다"며 "친환경차에 대한 보조금 등 친환경차에 대한 각종 정책적 뒷받침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 자체 경쟁력도 발전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느껴졌던 전기차의 가격이 꾸준히 개선되는 추세다. 우선 전기차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인데, 그 가격이 2010년 1Kwh당 1000달러 수준에서 2016년 273달러로 73%나 낮아졌다. 2026년에는 1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의 자체 기술적 보완에 더해 충전 인프라 구축도 갈수록 탄력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EV 콘셉트카 ‘프로페시(Prophecy)’ 내부 디자인. 운전석 양쪽의 조이스틱이 핸들을 대신 한다. 사진. 현대자동차

#자율주행차, 전기차에서 출발한다

전기차가 완성차의 ‘뉴노멀’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전망은 ‘무인 자율주행 기술’의 급부상과 결부돼 있다. 코로나19로 무인 자율주행차를 시험하는 무대가 제공되기도 했다.

미국 메이오클리닉은 지난달 플로리다 잭슨빌 병원에 모빌리티 스타트업 비프(beep)로부터 자율주행 셔틀 4대를 도입했으며,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네오릭스는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 온라인 유통업체들이 배송용 자율주행차량을 대량 발주하면서 수주량이 크게 늘었다.

중국 당국도 자율주행 배달 서비스 규제를 임시 완화하며 호응했다. 그동안 공공도로에서 무인 자율주행차 운행은 불가능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반 차량 운행이 줄어들자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무인 자율주행 기술이 싹을 틔우고 있다. 기업용 모바일 식대관리 솔루션 ‘식권대장’ 운영사 벤디스는 로봇 솔루션 전문 기업 로보티즈의 실외 자율주행 로봇에 식권대장의 예약결제를 적용해 비대면 로봇 점심 배달 서비스를 한다. 식권대장 앱으로 식사를 주문하면 로봇이 이를 배달해주는 방식이다. 당초 양사는 실증 테스트를 계획하는 단계였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배달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테스트 조기 실시를 결정했다.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점점 커짐에 따라 전기차를 생산하던 완성차업체는 자연스럽게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레이더와 보행자를 인식할 수 있는 카메라, 360도 영역을 탐지하는 울트라 소닉 음파 탐지기, GPS와 실시간 교통정보 등 데이터 통합시스템 기능이 탑재된 전기차 'Model D'를 선보인 바 있다. 프랑스 기업인 이지마일(EasyMile) 또한 전기자율주행 차량인 'EZ10'을 선보이면서 향후 수 년 내에 자율주행 전기차가 시장에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대 버리긴 이른 배터리 3사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월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LG화학은 점유율 2위,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5, 6위를 차지했다. 3사의 주가는 2017~2018년 테슬라 Model3의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으나 2018년 연말부터는 판매량이 부진해 주가도 함께 횡보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중국 중심의 수요 확대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 17일 테슬라 주가 급등의 배경에는 3월 중국 판매량 호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의 빠른 경제 정상화 노력과 전기차 보조금 제도의 2년 연장은 향후 판매량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전기차 배터리 수요 타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유럽의 자동차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이 전년 대비 2배 이상 높아졌고, 2월까지 배터리 공급 부족으로 재고 수준이 낮아 전기차 배터리 수요 충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직원 500여 명이 유럽의 배터리 공장에 투입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완성차 공장의 셧다운으로 배터리 수요가 잠시 감소했지만 코로나19 확산이 끝나고 수요가 급증할 때를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전기차 판매량이 내년에 529만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2022년에는 710만대, 2023에는 915만대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코로나19와 저유가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전기차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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