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본점. 사진. 각 사 제공

[미디어SR 김사민 기자]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은행권 수익성과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포용적 금융', '디지털 전환'의 과제로 향하는 길은 더욱 빨라졌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날로부터 100일이 지나고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이에 국내 실물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고용·소비·수출 등 각종 경제 지표가 모두 속절없이 고꾸라지고 있다.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8년 4분기 이후 최악인 -1.4%를 기록했으며, 소비 심리 역시 지난 1월과 비교해 33.4포인트나 추락했다. 4월 들어 수출액은 전년 대비 26.9% 감소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월 국내 사업체 전체 종사자 수는 1827만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2만5000명(1.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체 종사가 수가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한 것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9년 6월 이후 초유의 일이라고 한다.

이처럼 경기 침체가 장기화해 기업들이 부실 위기에 처하고 가계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 이는 고스란히 금융권의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정책에 맞춰 시중은행들은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예대율 규제 등 건전성 규제를 완화하면서 은행권 유동성 관리에 대한 부담을 덜어줬다. 그러나 이는 한시적 조치에 그치므로 규제 완화가 끝나면 도미노처럼 건전성 위기가 현실화할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과 비교해 9조6180억원이 증가한 910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통계가 시작된 지난 2004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생활이 어려워진 소상공인, 중소기업의 긴급 대출이 주를 이루면서 2분기 충당금 증가 이슈도 불가피하게 됐다.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초저금리 대출의 대상은 비교적 고신용자인 신용등급 1~3등급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최근 대출 범위를 넓히기 위해 민간 신용평가사 나이스신용평가와 기준을 통일하면서 은행별 리스크 관리도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내부 신용등급은 은행들 나름의 경쟁력이자 리스크 관리 모델"이라고 전제하고 "하지만 여러 요인들을 두루 감안해 정책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신 객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이스 신평 등급에 따라 대출을 취급하면 리스크 관리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가 가계대출 원금 상환을 일시적으로 유예해주면서 이러한 건전성 우려는 당장의 연체율 지표로 확인하고 대비하기도 쉽지 않다. 은행업은 경기를 후행적으로 반영하는 특성이 있어 추후 잠재적 부실의 후폭풍이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은 후행 산업이므로 지금 코로나19 여파가 추후 3~4분기에 몰아칠까 걱정된다"면서 "이러한 우려가 선반영되므로 은행주 반등 폭이 다른 산업주에 비해 작을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게다가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75%로 내리며 사상 최초로 사실상의 제로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더더욱 은행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은행별 수익성을 보면 KB국민은행의 올 1분기 순이자마진(NIM)은 1.56%로 전년 동기(1.71%) 대비 0.15%포인트 떨어졌다. 또한 신한은행은 1.61%에서 1.41%, 하나은행은 1.55%에서 1.39%, 우리은행은 1.52%에서 1.38%로 일제히 하락했다. 기준금리 인하 영향과 코로나19 타격이 직접 반영되는 2분기 실적은 더욱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시 은행 순이자마진은 5bp 내외에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로 인한 은행권 이자이익 감소분은 1조4000억원 정도"라고 추정한 바 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로 은행권에 먹구름만 드리운 것은 아니다. 코로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오히려 실천 시기가 앞당겨진 금융의 과제들도 있다.

먼저 코로나 위기 대응의 선두에 선 은행권의 '포용적 금융'이라는 공적 역할이 주목받게 됐다. 재난 상황에서 중소기업, 자영업자를 줄도산 위기에서 구제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금융의 공적 기능에 긍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은행권은 채권시장안정펀드, 증권시장안정펀드 등에 모두 참여해 10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하기로 당국과 합의를 본 상태다. 소상공인을 위한 3조5000억원 규모의 이차보전대출을 공급한 데 이어, 10조원 규모의 2단계 긴급대출에도 참여한다. 2단계 대출은 창구를 시중은행으로 통일해 중신용자까지 모두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공급할 방침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나이스 신용평가와 동일한 기준으로 신용등급을 통일한 후 고객들의 대출 수요가 늘었다"면서 "신용등급 1~3등급의 소상공인 중 주거래 은행을 방문해 대출받는 수요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으로 금융권이 지속해서 강조해왔던 디지털 전환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고객들이 은행 창구를 방문하는 일이 적어지면서 비대면 전용 예금, 대출 상품의 판매도 증가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 서비스가 어려워지자 비대면 서비스가 빠르게 확대됐다"면서 "코로나19를 촉매제로 모든 금융권이 준비하고 있던 디지털 전환에 속도가 붙은 셈"이라고 진단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언택트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비대면 시장이 더욱 성장했다"면서 "4차산업이 대두되면서 언젠가는 변화할 모습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변화가 좀 더 빨라진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권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이뤄낸 변화가 아닌 환경적 요인으로 급격히 펼쳐진 모습인 만큼 이에 따르는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대기 선임연구위원은 "현재의 흐름은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 외부 상황이 만들어낸 디지털화"라면서 "금융사별 계획에 맞춰 차근차근 추진해야 할 것을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급히 앞당긴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디지털 가속화를 긍정적 측면으로만 보기에는 인력 구조조정, 점포 축소, 고용 인력 감소 등 또 다른 부정적 요인이 따른다"면서 "천천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나 적응 단계가 필요한데 어쩔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몰아치게 되면 부작용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