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권민수 기자]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디지털 성착취 범죄 관련 법안들이 발의된 것에 대해 IT·법률 전문가들은 실효성이 없는 데다 사실상 국내 사업자에만 적용돼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가 28일 개최한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방심위 '선(先)삭제, 후(後)심의' 절차 도입과 인터넷사업자 책임강화 규정 등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반복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 원인은 지나치게 낮은 형벌로 인한 법의 '위하력' 상실과 국제공조 역량의 미흡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위하력(威嚇力)은 일반인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간주해 공개 처형 처럼 무서운 형벌로 위협함으로써 일반인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만드는 힘이란 뜻으로 예방적 차원에서 주로 사용된다.

정부는 지난 23일 웹하드 사업자에만 적용돼 있던 디지털 성범죄물의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의무를 인터넷 사업자까지 확대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디지털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해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위반 시 제재수단으로 `징벌적 과징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국내 사업자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해외사업자들은 정부의 권고나 정책을 무시해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인터넷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인터넷상에서의 범죄행위를 근절하기 하기 위해 다양한 자율 조치를 마련해 시행하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업해왔다"면서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기업에 대해서만 규제를 강화해왔던 점을 미루어 보아, 글로벌 기업에 역외적용을 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 또한 "실질적으로 해외사업자에게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지금까지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의 근거는 해외사업자이므로 실효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 중소 사업자는 해외로 이전하게 되면서 국내 산업만 타격을 받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차라리 디지털성범죄 수사에 비협조적인 해외 플랫폼에 대한 국민적 거부·불이용 캠페인을 통해 사법 협조를 압박하는 것이 더 현실적 방안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역외적용 규정을 도입한다고 해도 집행력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매일 새롭게 생겨나는 해외 플랫폼 이용을 막는 것은 중국처럼 만리방화벽을 쌓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인터넷사업자에 책임을 묻기보다 입법, 수사강화 등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진근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n번방의 책임을 인터넷사업자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 문제의 핵심이 희석된다"며 "수사와 증거보전 그리고 범죄자 처벌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입법안이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감청허용, 잠입수사의 법제화 및 증거능력 부여 등 수사기관이 디지털 범죄자를 더 잘 잡을 수 있도록 범죄억지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 개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사업법, 저작권법, 정보통신망법 등 현존하는 규제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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