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9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발언하고 있다 사진:구혜정 기자

# 우연(偶然)에도 인과(因果)는 있다

[김병헌 한국공공PR연구원 대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파문으로 여권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실망을 안겼다. 오 전시장의 그릇된 성추행 행위는 차치하더라도 부산시장 사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여권의 적극적인 해명에도 다소 군색해 보인다. 여권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해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 천수경(千手經)에 보면 오비이락 파사두(烏飛梨落 破蛇頭)라는 구절이 있다. 오비이락 이른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우연의 일치를 뜻한다.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인연과 업보의 고리를 설명할 때 쓰이는 말이었다. 배나무 부근에서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지고 그 아래 휴식을 취하던 뱀이 떨어지는 배에 머리가 깨져 죽게 된다. 뱀은 죽어 산돼지로 태어나고 까마귀는 죽어 꿩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번에는 꿩이 햇볕을 쬐다 때마침 산비탈을 지나던 산돼지가 돌을 헛디뎌 구르는 돌에 치어 죽는다. 꿩은 다시 사냥꾼으로 태어나고 어느날 산돼지와 마주친다. 사냥군이 산돼지를 쏘려하자 산돼지는 근처에 있던 조그만 암자로 숨는다, 암자에는 당시 수(隋)나라 승려로, 천태종의 개조(開祖)였던 지자대사(智者大師)가 있었다. 그는 사냥꾼에게 과거부터 이어져 온 서로의 원한 관계를 설명하고 산돼지를 죽이지 말라 했고 사냥꾼은 불제자가 되었다는 삼생(三生)에 거친 인연의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처럼 불교는 공교롭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도 사실은 얽히고 설킨 인연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 본다. 인과응보라는 말에 이같은 의미가 농축돼 있다. 까마귀가 날 때 공교롭게도 배가 떨어질 수 있다. 배나무 주인은 까마귀가 배를 쪼아 떨어뜨렸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실제 까마귀는 과일을 먹지 않는다, 오히려 까치가 배나무 밭을 곧 잘 공격하곤 한다.

# 야당의 의혹 제기는 당연한 수순

이번 사태와 관련 야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합리적 의심이다. 배나무 밑의 뱀이 죽었기 때문이다. 공교롭다는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로 활동했던 법무법인 부산이 오 전 시장과 피해자 간 합의 공증(公證)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상담을 했던 부산 성폭력상담소 측은 "평소 공증업무를 처리해오던 법무법인 두 곳 중 한 곳을 정한 뒤 피해자에게 소개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굳이 법무법인 부산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될 수가 없다.

법무법인 부산은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이던 지난 1995년 출범 시켜 2012년 대선 전까지 대표 변호사로 활동한 곳이다.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도 이곳 출신이며 현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대표를 맡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성추행 사실이 총선 기간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권과 가까운 법무법인을 공증 기관으로 선택하는 데 누군가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서마저 들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정치에 이용되는 것을 원치 않아 오 전시장이 총선 이후에 사퇴하기로 했다는 설명마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미래통합당은 박근헤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 곽상도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꾸렸다. 김도읍·김미애·김웅·유상범·황보승희 등 부산 지역 또는 검사 출신 당선인들도 참여시켰다. 조사단은 28일 첫 회의를 갖고 여론전에 나선 상황이다. 곽 의원은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추측에 불과했지만 법무법인 부산이 등장하면서 수위를 높여갈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큰 틀에서 상황을 은폐하고 비호하는 세력이 있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 당사자인 오 전시장의 사퇴 발표문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또한 여권의 부담이다. 전한(前漢)의 학자 한영(韓嬰)이 저술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실린 구절을 보면 ‘흰 뼈는 상아와 비슷하고 물고기 눈알은 구슬과 비슷하다(백골유상 어목사주/白骨類象 魚目似珠)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중국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제(齊)·양(梁)나라 대의 대표적 시·서(序)·부 등을 수록한 시문집 덕이다. 시문집에는 송(宋), 제(齊),양(梁)대에 걸쳐 벼슬을 한 임방(任昉)의 글이 등장한다.임방은 자신의 쓴 치대사마기실전(致大司馬記室箋)에서 자신을 ‘물고기 눈알처럼 쓸모없는 사람인데도 조정에서 보옥처럼 사용했다(유차어목 당돌여번/維此魚目 唐突璵璠)’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어목혼주(魚目混珠)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한다. '물고기 눈이 진주와 섞이다'는 뜻으로 진짜와 가짜가 마구 뒤섞여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 진실이 승패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말해 ‘진짜를 뺨치는 가짜’라는 의미다. 지금은 이른바 ‘짝퉁’ 즉 정교하게 모방한 가짜가 진짜를 되레 손가락질하는 세상이다. 지난 23일 오 전시장의 사퇴 발표문이 그랬다. 물고기 눈알을 진주처럼 포장했다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 발표문의 문구를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본인이 작성했던 누가 도움을 줬던 주관적 판단이 객관적 오류를 빚은 사례다. 오 전 시장은 “법적 처벌을 받는 명백한 성추행이었다”면서도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주장했다.

명백한 성추행을 마치 당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현으로, 자기 변명이며 자기 기만이다. 국민을 호도하려 했다는 지적도 있다. 또 ‘경중에 관계없이’ ‘한 사람에게 5분의 짧은 면담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심각한 범죄행위를 축소하려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물론 극한 상황에 몰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수 있지만 이건 아니다. 피해자도 오 전시장의 발표문에 대한 입장문에서 “발생한 일은 경중을 따질 수 없고 법적 처벌을 받는 명백한 성추행이었다”면서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 표현으로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반박했다.

오 전 시장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에 대한 비난, 시장 재직시절의 또 다른 성추행 의혹 및 고발 등의 파장은 부산을 중심으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는 오 전시장의 범죄 행위에 대한 엄정한 단죄와 피해자의 2차 피해방지가 가장 중요하다. 또 이번 사태는 부산 시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물론 실체적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 여정은 여권에게는 녹록치 않을 것이다. 야당의 공세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여야 모두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공방에만 주력한다면 사태 전말에 대한 진실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든 승자는 없을 것이다. 재발 방지대책 마련 등 대승적 차원의 통큰 행보가 여야 모두에게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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