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인수 추진으로 '급부상'
정부 '선택과 집중'전략...LCC 업계 '볼멘소리'

제공: 아시아나항공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코로나19로 항공업계 순위가 요동치고 있다.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제주항공이 체급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지원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동성 위기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다. 정부는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문제는 양사의 부채비율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871.5%이고 아시아나항공은 1386.7%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안으로 상환해야 하는 차입금이 4조4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보유 현금은 1조6000억원에 불과했으며 이 중 상반기에만 9000억원을 갚아야 한다. 최근 6228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지만 이달 만기가 도래할 회사채 2400억원을 상환하고, 4000억원 상당의 항공기 리스료를 지출하면 사실상 보유 현금은 바닥이다. 현재 유휴 자산과 사업부 매각 등으로 현금 확보에 나섰으나 남은 부채가 3조5000억이나 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올해 상환해야 할 부채만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942억원에 불과했다. 부채율이 1000%를 초과한데다 코로나19로 개점휴업 상태까지 겹쳐 1분기 적자만 1600억원 이상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HDC현산 vs AK 대리전?

대한항공은 항공기 보유 규모나 취항지역 수로 볼 때 압도적인 1위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이번 위기를 잘 넘김다면 대한항공의 1위 수성은 크게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아시아나항공이 제주항공의 추격을 따돌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항공업계 전반이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절벽과 고정비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필수 자산인 항공기 매각까지 검토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지원하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은 부담을 덜게 됐다. 한편으로는 이번 지원 결정으로 정부가 HDC현산측에 대해 아시아나 인수 작업의 마무리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가 된 측면도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주요 매출을 차지하는 국제선이 ‘셧다운’ 되는 등 적자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서 HDC현산은 인수 작업 일정을 이달 말로 연기한 바 있다. 특히 앞선 실사 과정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아시아나항공의 추가 부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지난달 말 아시아나항공의 일부 계열사가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개발, 금호속리산고속 등은 총 700억원가량을 라임 관련 펀드에 투자했다.

업계에서는 ‘인수 무산설’까지 나왔지만 사실상 채권단이 HDC현산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줄 것으로 예상돼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예정대로 추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HDC현산의 요구대로 보유한 영구채 5000억원을 출자 전환하는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구채 출자 전환은 기업의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HDC현산이 인수를 결정할 당시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한 에어서울, 에어부산 등의 6개 회사를 모두 품는 '통매각'이 원칙이었던 탓에 인수 부담은 여전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비율을 줄이고 HDC현산의 인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휴자산이나 항공기 리스 반납 등도 검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는 미디어SR에 “항공기는 제조업의 공장에 해당하는 핵심 사업 자산”이라면서 “일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공장을 매각하는 등의 결정은 ‘최후의 보루’에 가까운 만큼 마지막 순간에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시아나항공이 횡보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에는 오히려 가속이 붙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3일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기업 결합 심사 6주 만에 신속하게 승인했다. 공정위는 이스타항공을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회생 불가 회사'로 규정했다. 이스타항공이 살기 위해선 제주항공의 인수가 필수적 요건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공정위 판단대로 이스타항공은 2013년 이래로 자본잠식 상태를 기록했으며 현재까지도 직원들의 월급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항공기 리스료, 공항이용료, 항공유 구입비, 임금 등 지난 3월 기준 미지급 대금 규모가 1,152억원에 이른다. 리스 계약한 항공기 23대 중에서도 10대의 조기 반납을 추진 중이며, 현재 2대는 이미 반납을 완료한 상태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의 재무 상태도 녹록지는 않다. 제주항공의 부채 비율은 2018년 168%에서 지난해 353%로 2배 가까이 급증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96억원으로 전년 대비 87% 급감한 가운데 제주항공 지분 56.94%를 보유한 AK홀딩스의 재무구조까지 제주항공으로 인해 타격을 받는 모양새다.

당초 제주항공이 노리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스타항공이 수요 급감으로 리스 항공기를 반납하고 노선 감축까지 예상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주항공은 태국과 베트남에서 진행 중인 해외 결합 심사까지 완료되면 정부가 지원하는 1500억~2000억원을 토대로 남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해 이스타항공 경영정상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허희영 교수는 "제주항공의 앞날은 불확실성이 커 예측하기 어렵다”면서도 “제주항공의 구조조정 등 재무구조 개선 노력과 HDC현산의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투자 규모 등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주항공은 오는 29일을 목표로 인수 작업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지만, HDC현산은 정부의 자금 수혈에도 인수 절차의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HDC현산은 정정공시를 통해 유상증자 납입일에 대해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로 고지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에 해당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상대적으로 재무 상황이 더 열악한 LCC 업계에는 추가 지원이 검토되지 않고 있어 불만이 분출하고 있다. LCC 내부에서는 "지원책이 발표된 지 2개월이 지났는데도 (3000억원의) 절반도 채 집행이 안 됐다"면서 "이러다 진짜 올해 망하는 LCC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불평이 쏟아졌다.

실제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지난 24일 열린 간담회에서 "LCC 추가 지원은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부가 추가 지원 가능성을 일축하고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것도 LCC 9곳 중 일부를 정리하겠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국내 LCC 업계가 포화상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LCC는 현재 운항하는 곳이 7개, 에어로케이와 에어프레미아 등 면허를 받고 준비 중인 곳까지 포함하면 모두 9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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