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회장 박정원의 네트워크
두산그룹 회장 박정원의 네트워크
  • 정혜원 기자
  • 승인 2020.04.24 18: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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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김민영 기자
디자인. 김민영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박정원

한국기네스협회가 인정한 국내 ‘최장수 기업’ 두산 그룹 회장. 두산그룹은 재계에서 처음으로 4세 경영에 나섰다. 그 주인공이 박정원 회장이다. 1962년생인 그가 2016년 예상보다 빨리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설 때부터 ‘두산 그룹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는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24세 때 그룹에 발을 들여놓은 박정원은 지난 32년간 다양한 자리를 거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부친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을 비롯해 숙부들의 경영을 일찍부터 지켜보며 배웠다.

특히 그는 지주회사인 ㈜두산 회장을 겸직하며 박용만 회장의 그룹 경영을 보조했다. 2005년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부회장에 오른 박정원은 가장 먼저 레미콘, 레저 부문, 건설기계 파트 등 비주력사업을 분리 독립시키고 비수익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그 결과 2004년 656%에 달하던 두산건설의 부채비율은 2006년 230%대로 대폭 개선되고 성과를 인정받았으며 2009년 두산건설 회장으로 승진한다.

그러나 건설 업황이 악화하면서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의 유상증자 참여와 두산중공업의 일부사업부 양도를 통해 두산건설을 지원했지만 두산건설은 좀처럼 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대형건설사들이 2010년대 들어 대규모 적자로 휘청인 것은 불과 한 해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두산건설의 경영이 계속 개선되지 못하자 퍼주기 논란도 불거졌다.

한편 박정원은 2004년 일본 혼다와 판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입차 판매시장에 뛰어들었다가 2012년 완전한 사업 철수를 선언하고 대신 2014년 당시 포스코에너지가 독점하고 있던 연료전지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진입장벽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으나 미국 클리어엣지파워와 국내 퓨얼셀파워를 품에 안는 등 적극적 인수합병 전략을 펼치며 사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그 결과 신사업으로 추진해온 연료전지사업이 시장에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두산중공업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1조원 규모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지원받으면서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의 매각설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박정원이 안착시킨 신사업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기업으로 그의 입장에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31일 두산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총 30억9800만원의 보수를 지급 받고 이달 초에서야 보수의 30%를 반납하는 등의 자구책을 발표했다. 

한편 박정원의 야구 사랑은 유명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야구광인데 아버지의 대를 이어 두산베어스 구단주로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14년 7월 55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경기도 이천시에 훈련장 베어스파크의 공사를 시작해 2015년 완공했다.

그는 기업 경영에서도 야구에서 얻은 교훈을 적극적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2013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팀 스포츠인 야구는 여러 기법의 통계와 분석이 활용되는 등 경영과 비슷한 점이 많다”며 “야구에서 경영에 대한 시사점을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임 박용만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대내외적 소통을 활발히 즐기는 것과는 달리 박정원은 내성적이고 과묵한 편이다.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이자 박정원 회장의 동생이다. 1965년 3월20일 서울에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나와 두산상사, 두산 등을 거쳤다. 현재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겸 두산 부회장, 두산엔진 부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박 부회장은 수소연료전지 드론과 협동로봇, 무인 굴착기 등을 앞세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전환)’을 통한 대변신에 나섰다.

신산업 추진에 총력을 다하며 IT‧가전 전시회인 CES에도 2년 연속으로 참가했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2017년 그룹 지주회사인 (주)두산에 디지털 혁신 전략을 총괄하는 ‘최고디지털혁신(CDO: chief digital officer)’ 조직을 신설하고 200여 개 디지털 전환 과제도 추진한다.

박지원은 박정원 회장과 종종 프로야구 관람도 하고, 골프치는 것도 즐긴다. 세계 최고의 명문골프클럽인 영국왕립골프협회(R&A·Royal &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 정회원이다. R&A와 인연을 맺은 한국인은 현재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과 2011년 정회원에 이름을 올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총 3명에 불과하다. 1754년 설립된 R&A는 미국, 멕시코를 제외한 143국 156개의 프로, 아마추어 골프 협회를 관할하고, 미국골프협회(USGA)와 함께 세계 골프 규칙, 에티켓과 장비에 대한 규정까지 정하는 상당한 권위를 자랑하는 단체다.

원칙주의자면서 인화를 강조하며 직원들과도 잘 어울린다. 임직원들과 회식도 많이 하는 편이며 직원들의 경조사와 생일 등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량은 소주 3병.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있을 때 두산상사 이사로 근무하며 손발을 맞췄다.

박용만 회장을 인생의 멘토로 여기며 잘 따른다. YM(박용만 회장)은 업무상 보스, YK(박용곤 명예회장)은 정신적 보스라고 말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소장이자 두산인프라코어 대표이사 회장. 전 두산그룹 회장. 박용만 회장은 박정원 회장의 숙부다.

1955년생인 박용만은 두산그룹 박두병 초대회장의 6남1녀 가운데 다섯째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정원 회장이 두산그룹 경영을 총괄하기 전까지는 박용만이 그룹 경영을 맡아왔다.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13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부임한 이후 재계와 정치권 간 가교 역할에 비중을 두며 규제 완화와 경제 활성화에 의욕을 보여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을 대신해 대한상의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산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1200여명의 페이스북 친구를 두면서 정치‧경제‧사회적 현안 등에도 거침없이 소신을 밝혀왔다. 이같은 활발한 사회 및 정치 참여로 지난해 말 차기 총리로 거명되기까지 했다.

한편 경영인으로서 박용만은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재편과 혁신을 주도해 글로벌기업으로 만든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그룹은 박승직 창업주가 서울 동대문에 열었던 박승직 상점을 모태로 시작해 1990년대까지 OB맥주를 비롯한 소비재 중심의 사업을 벌여 왔다. 하지만 박용만 회장은 소비재 위주의 사업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95년에 창업 100주년을 맞아 사업구조 전환을 선언한다. 그가 두산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으면서다.

이후 그는 기업금융 프로젝트팀을 이끌면서 두산중공업(인수 당시 한국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인수 당시 대우종합기계) 등 현재 주력계열사로 자리잡은 기업들을 인수했다.

또한 기존에 두산그룹 성장의 동력이 됐던 OB맥주 영등포 공장, 한국네슬레 지분, 김치 브랜드인 종가집김치 등 소비재 관련 사업을 매각하면서 ‘미스터M&A'로 불리기도 했다.

이같은 구조전환 작업으로 두산그룹은 2015년 말 기준 중공업부문이 그룹 전체 매출의 88% 가량을 차지하는 등 중공업 중심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김태형

프로야구 KBO리그 두산 베어스 감독. 박정원 회장의 신뢰를 받으며 최근 3번째 감독 계약으로 2022년까지 두산 베어스 감독을 맡으며 역대 최고 대우로 28억원을 받게 됐다.

선수 시절부터 쭉 두산 베어스를 지킨 김태형은 박정원 회장에 대해 “회장님은 정말로 야구를 사랑하는 분”이라며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끝내기 승리를 거뒀을 때 회장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계속 잘해서 보답해야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박정원은 경영을 야구 경기에 비유하기도 하고, 경영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두산 홈구장인 잠실구장을 찾아 경기를 관전한다. 매 경기 이메일을 통해 경기 상황을 보고받으며, 심지어 투수 로테이션이나 타순까지도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해외 전지훈련지를 찾아 선수를 격려하고 훈련을 지켜보는 구단주는 박정원이 유일하다.

김태형은 서울화계초교 5학년 때 야구부에 들어가면서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야구 명문 신일중-신일고를 거쳤지만 우승은 프로에 들어온 이후 1995년에야 맛볼 수 있었다.

단국대를 졸업한 김 감독은 대한야구협회 착오로 체육특기생이 안 되면서 입학이 취소될 뻔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다급해져 야구부가 있는 인천전문대에 우선 입학했고 뛰어난 기량으로 대표팀에 발탁됐다.

1988년 이탈리아 야구월드컵과 서울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서 이 경력으로 단국대에 편입하고, OB에도 입단하게 됐다. 그는 편입을 도와준 강문길 전 단국대 감독을 은사로 꼽는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통솔력, 빼어난 지도력, 빠른 결단력을 두루 갖춘 지도자로 꼽히며, 두산에서 선수, 코치, 감독으로 모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유일한 야구인이기도 하다.

김태형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두산 베어스를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고, 2차례 정규 시즌 우승과 2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한 바 있다. 역대 KBO리그에서 가장 뺴어난 성적이다.

 

구자열

LS그룹 회장. 범 LG가에 속하며 박정원 회장과는 사돈 관계다. 박정원 회장의 딸 박상민씨가 2017년 2월 구자열 회장의 장남 구동휘 LS산전 상무와 결혼식을 올리면서다. 구자열과 박정원 회장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동문이기도 하다.

구자열 회장은 매월 책을 10권 이상 읽는 독서가이자 자전거광으로, 도전정신이 강하며 저돌적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좋아해서 2002년 자전거로 알프스를 넘고 독일-이탈리아를 완주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동양인 최초의 트랜스알프스 완주자로 기록되기도 했다.

극한 레이스에 도전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만큼 한 번 착수한 일에도 끝을 보는 성격이다. 자전거 300대 이상을 소장하고 있어 자전거 박물관을 건립하는 꿈을 갖고 있으며, 100년이 넘은 유럽산 골동품 자전거 5대를 직접 국내에 들여왔다고도 알려졌다.

그는 2004년부터 2013년까지 LS전선을 이끌며 소규모 회사를 연이어 인수하며 회사의 경쟁력을 키워왔다. 덕분에 당시 LS그룹은 인수합병(M&A)시장에서 ‘스몰딜의 최강자’라는 평판을 얻기도 했다.

2007년 국제상사 인수를 주도하면서는 변화에 주저하는 임직원들에게 “이 사람들아, 국제상사 인수는 건물 때문만이 아니라 화끈하게 새로 하자는 것”이라고 호통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2015년부터는 LS그룹의 비주력사업을 잇따라 매각했다. 전선업황의 부진으로 LS그룹의 실적이 악화하자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주력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편 것이다.

2017년부터 뚜렷한 실적개선을 이끈 비결도 재무구조 개선과 주력사업 집중에 과감하게 나선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구 회장은 핵심 사업과 관련이 적거나 수익을 못내는 곳 등을 빠르게 정리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가 큰아버지, 구평회 E1 명예회장이 아버지다. LG그룹이 나눠진 이래 초대회장이자 사촌형인 구자홍 회장에 이어 LS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한 뒤 LG투자증권 국제부문 총괄임원, LG전선 재경부문 부사장을 지냈다. LS전선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LS전선·엠트론 사업부문 회장으로 재직했다.

LS는 독특하게 사촌경영을 유지하고 있다. 65세 이후에 현역 경영에서 은퇴한다는 게 일종의 '룰'이지만 현재 구자열은 67세이지만 올해 사내이사에 재선임되면서 최소 3년 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구자열은 LS그룹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과 박정원 회장은 고급 오토바이인 ‘할리 데이비슨’ 소유주들의 모임인 국내 호그(HOG, Harley Owners Group) 회원으로 친분을 쌓은 바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특별 주문한 할리 데이비슨을 갖고 있을 정도로 재계 스피드 매니아로 알려져 있으며 호그 원년 멤버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인문학 전도사'로도 불린다. 클래식 음악, 독서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인터뷰나 그룹 차원에서의 재원 투자도 인문학적인 부분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2014년부터는 'SSG지식향연'이라는 인문학 토크콘서트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인문학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해까지 6년째 이어져 오던 이 행사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하반기로 연기된 상황이다.

2006년부터 이마트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해 지난해 강희석 이마트 대표를 선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마트 인사는 대부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시절 임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으나 이번 인사는 정 부회장이 먼저 결정하고 이명희 회장에게 승인을 받는 형태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동갑내기 외사촌-이종사촌 지간이다. SNS를 통해 소비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인 재계 인사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의 친분이 알려지면서 폐기 처분을 앞둔 3만톤의 ‘못난이 감자’를 전국 이마트에서 판매했으며 지난 23일부터 백종원 대표의 SOS에 해남 왕고구마를 전국 이마트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김택진

NC소프트 대표이자 창립자, 프로야구 NC다이노스 구단주. 박정원 회장과는 대일고 동문이자 프로야구 구단주로서 라이벌 관계다.

김택진 대표는 2013년 제9구단으로 KBO리그 1군으로 NC다이노스를 창단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박정원 회장처럼 구단주로서 경기장을 자주 찾는 편으로 두 사람 모두 자타 공인 야구팬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NC다이노스의 마지막 홈 경기를 찾은 김택진 대표가 스크린에 잡히자 홈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김택진은 구단주로서도 박정원 회장과 라이벌 관계지만 CEO로서 연봉을 두고도 라이벌 관계다. NC는 지난해 와일드카드를 쓰고 포스트시즌 진출에 의미를 두면서 두산베어스가 크게 앞지르는 모양새지만 연봉은 2배 가까이 차이난다. 지난해 김택진은 100억원에 육박하는 연봉을 받았으며 박정원 회장은 50억원 가량을 받았다.

김 대표는 리니지 출시 전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 위해 집을 담보로 잡는 상황까지도 갔었다고 한다. 서울대 전자공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 중에 엔씨소프트를 창립했다. 그 전에는 현대전자에서 인터넷 서비스 개발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1997년 현대전자 동료와 함께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김택진이 1997년 창립한 엔씨소프트는 개발 기술력과 서비스 역량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온라인 게임 선도 기업으로, 1998년 출시된 리니지와 그 성장 궤도를 공유한다. 리니지를 필두로 인터넷 기반 온라인 게임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고 엔씨소프트 역시 그 이름을 알리게 됐다. 리지니의 성공을 기반으로 엔씨는 대만에 이어 북미와 유럽까지 진출했다.

김택진 대표는 "게임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세계로 수출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글로벌 야망을 피력한 바 있다.

정혜원 기자 won@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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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뚜껑 2020-04-24 20: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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