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정혜원 기자] 현금이 얼마 남지 않은 대한항공이 결국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주기료, 항공기 리스 비용 등의 고정 비용을 감당해내기 위한 선택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최소 5000억원, 최대 1조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위해 주요 증권사들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주관사 선정과 인수단 구성이 끝나면 시행 시점과 규모 등을 확정한다고 알려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현재로서는 확정된 것이 없으나 자본 확충을 위해 유휴 자산 매각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공시를 통해 "이와 관련해 추후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1개월 이내에 재공시 하겠다"고 밝혔다.

#유상증자는 부담 없는 선택, 하지만...

대한항공이 올해 갚아야할 회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 차입금 등은 총 4조원에 달한다. 이중 상반기 내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만 1조 2000억원이다.

벌써 이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가 2400억원인데다 매달 주기료와 항공기 리스 비용 등만 5000억원씩 고정 비용으로 나간다.

그러나 항공업계 업황은 여전히 최악 수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항공 여객 매출의 대부분이 국제선 노선에서 발생하지만 대한항공의 지난 3주간 하루 평균 국제선 여객 수는 25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여객 매출의 94%를 차지하는 국제선 노선이 ‘셧다운’ 수준에 들어가면서 대한항공은 1분기 영업손실이 2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대한항공은 대출이나 채권을 늘리는 대신 유상증자를 택했다. 주주들에게 자금을 투자받게 되면 자금 조달의 목적은 이루면서도 상환 의무없이 재무구조 개선이 가능하다. 앞서 대한항공은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2015년과 2017년 각각 5000억원,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다만 항공사가 처한 상황이 널리 알려진 만큼, 현재 시점에서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도 항공사들에 250억 달러의 재원을 쏟아 부으면서 항공사들로부터 보통주를 일정가격에 살 수 있는 권한인 ‘워런트’를 취득하는 조건을 걸었다. 즉 추가 조건 협의 하에 정부나 국책은행이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현재 항공업계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정부가 대형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서 항공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 2월 말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에 3000억원의 금융 지원을 결정한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한채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유상증자 성패, 조원태 회장의 실력 시험대에

오는 24일은 조원태 회장이 취임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코로나19로부터 비롯된 항공업계의 위기 상황이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무대로 볼 수 도 있다. 항공업계 전체가 임원들의 임금 반납이 잇따르고 직원들의 유‧무급 휴직, 희망퇴직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위기를 원만하게 타개할 경우 조원태 회장에 대한 신망이 커지는 것은 물론 대내‧외적 평가도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4월 24일 조 회장은 부친 고(故) 조양호 회장에 이어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4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한진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게 된 그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조 회장은 KCGI와의 경영권 분쟁과 오너가(家)의 갈등과 분열 국면에서도 경영권을 지켜내는데 성공하는 등 나름의 수완과 능력을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위기가 본격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한국신용평가 ABS 신용등급까지 'A'에서 'A-'로 한단계 하향 조정됐다. 이에 따라 조기 상환 리스크도 커진 상황이다.

현재 조 회장은 송현동 부지를 비롯한 그룹의 유휴 자산 매각을 추진하는 등 그룹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한진그룹은 송현동 부지, 왕산레저개발 지분, 칼호텔네트워크 소유의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부지를 매각한다며 지난 13일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선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그룹의 재무구조 건전성을 우려하며 유휴 자산 매각의 필요성을 주장해 온 것은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했던 KCGI 측이었다. 지난해 1월 KCGI는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이라는 제안서를 공개하면서 한진그룹이 글로벌 항공사와 비교하더라도 높은 부채 비율을 갖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당시 KCGI는 이번에 매각 대상이 된 자산들 외에도 만성적자를 기록 중인 칼호텔네트워크과 LA월셔그랜드호텔, 노후화한 와이키키리조트, 등 항공업과 시너지가 낮은 사업부문에 대한 투자 당위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조 회장은 지난해 2월 송현동 부지 매각 등의 내용을 담은 '한진그룹 비전 2023'을 발표하며 송현동 부지 매각 의사를 밝혔으나 정작 연내 매각 절차는 지지부진했다. 이 때문에 올해 조 회장이 재무구조 개선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한 것은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난달 29일 낸 담화문에서 "코로나19 위기의 파고를 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뼈를 깎는 자구 노력도 병행하겠다"며 "기존에 발표한 송현동 부지 등 유휴자산 매각과 더불어 이사회와 협의해 추가적인 자본 확충 등으로 회사의 체질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며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상증자 방안도 지난 10일 긴급 이사회 이후 추진된 방안이며, 업계에서는 유상증자가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기존에 제시됐던 재무구조 개선안이라고 해도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실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을 판가름하고 한진그룹의 명운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