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빌 게이츠는 지난 2015년 3월 TED강연에서 세계적인 대재앙은 핵폭발이 아니고 팬데믹(세계적 감염병유행)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쟁 준비를 하듯 팬데믹에 대비하지 못하면 바이러스가 도시 속을 침공해 스페인 독감처럼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사실 지구상에서 간헐적으로 발생해온 전염병 확산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모든 국가의 대처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최근년도에 속출해온 중증호흡기감염성 바이러스는 출몰시마다 수만 명씩 사망자를 내고 경제적 손실도 수십억 달러이상으로 막대한 피해를 내고서야 잠잠해졌다.

방역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하게 되면 쉽게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된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늑장 대응을 거울삼아 WHO(세계보건기구)는 각국의 질병 발생에 대한 투명한 보고체계와 대응수단을 마련토록 권고해 왔다.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파에 대비할 수 있는 각국의 준비사항들을 고지했지만 각국의 방역준비는 사실상 크게 부족하다. 국가 간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려면 각국의 방역능력 차이를 줄여야 하며 질병에 대한 모든 정보를 서로 투명하게 공유해야만 한다.

존스 홉킨스 대학이 중심이 되어 13개국 21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감염병전문위원회는 각국의 전염병 위기대응력을 측정할 수 있는 GHSI(Global Health Security Index-글로벌 보건안보 지수)를 개발했다. 그 결과 2019년 10월에 195개국을 대상으로 GHS지수를 분석 발표했다.

‘비상조치 능력’, ‘감염의 조기 진단력’, ‘신속한 위기대응력’, ‘환자치료와 의료진의 튼튼한 보건시스템’, ‘세계적 표준에 부응하는 기술력’, ‘질병발생에 취약한 위험환경요소’ 등 6개 분야 140개 문항을 기준으로 삼았다. 놀랍게도 세계 각국의 보건안보능력이 근본적으로 취약했고 지구상에는 팬데믹에 대비할 능력을 갖춘 국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체 평균은 100점 만점에 40.2점에 불과하고, 선진국과 중진국들도 116개국이 50점에 미달됐다. 대부분 국가들은 방역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지 않고 있었다. 전체 국가의 절반 정도는 바이러스위협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심지어 유행성전염병을 적극적으로 다룰 보건전문기구조차 없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GHS지수 평가에서 종합점수 1등은 83.5점을 얻는 미국이었다. 2등은 영국으로 77.9점, 3등은 네덜란드로 75.6점, 4등은 호주로 75.5점, 5등은 캐나다, 6등은 태국, 7등은 스웨덴, 8등은 덴마크이었다. 대한민국은 총점 70.2점으로 9등에 랭크됐다. 대한민국은 비상조치 능력이 57.3점, 의료시설 및 인력이 58.7점, 세계적 규범에 맞추기 위한 투자는 64.3점으로 낮은 점수이지만 조기진단능력은 92.1점, 신속대응력은 71.5점으로 다른 국가들보다 높게 평가받았다.

특히 GHS지수와 상관없이 코로나19에 가장 대처를 잘한 국가로는 상황파악이 빠르고 신속진단 능력을 갖춘 대한민국이 꼽혔다. 초기부터 모든 의심자들을 검진해 환자를 빠르게 분별해 내고 지역사회로부터 격리시켰다. 방역의 기본인 신속검진, 소독, 감염자 격리, 접촉자 추적을 통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코로나19는 비말로 전파하는 특성이라 감염전파 속도가 매우 높고 밀폐된 공간에선 순식간에 주변으로 전파됐다. 대표적 사례가 대구신천지 교단에서의 슈퍼전파 현상이다. 바이러스가 이미 지역사회로 퍼져버린 후였다. 이 같은 사태가 되면 모든 환자를 가려내기 힘들기 때문에 질병이 깊어진 고위험 환자를 선별 치료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통상의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매일 수천 명을 검진해 수백 명의 감염자들을 색출해 내는 전략을 고집했다. 정부가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신속 정확한 진단키트를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중국에서 바이러스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곧 바로 신속유전자증폭기술(RT-PCR)을 활용한 진단키트를 개발해 바이오업체들과 함께 생산체제를 준비했다. 더욱이 국내 의료진들은 복잡한 선별진료소를 개선해서 드라이브-스루 방식이나 워킹-스루 방식까지 도입함으로써 세계 으뜸의 모범방역국가로 자리매김됐다.

반면에 미국을 비롯한 GHS지수가 높은 국가들은 이론은 밝지만 대비가 소홀했다. 상황파악이 느리고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오판해서 사태를 눈덩이처럼 키웠다. 급속히 증가한 환자들로 인해 의료체계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미 지역감염이 확산된 이후라서 고위험 환자를 치료하는 방역밖에 달리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뒤늦게 도시를 폐쇄하고 추가로 감염이 확산되는 걸 차단했지만 미국만 해도 매일 확진되는 감염자수가 3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가 2000~3000명씩 증가하고 있다. 긴급사태를 선포하고 도시를 폐쇄하고 있지만 환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점은 사망률이 높아서 사회적 후유증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판단된다.

재선 가도에 적신호가 켜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WHO에 있다고 질타하면서 책임을 모면하려 애쓰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의 통치력이 동시에 비교되고 평가받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누가 팬데믹 사태를 통제하고 수습해서 이전 상태로 국가경제시스템을 되돌리느냐로 국가 지도력을 평가받게 될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코로나19 위기를 모범적으로 제압한 공로를 평가받은 것이라고 보는게 옳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의 충격은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를 촉발시킬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미 실업자들이 속출하고 일부 온라인 비즈니스를 제외하고는 전 산업 활동이 멈춰 섰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회복이 쉽지 않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약품이 개발되기 전에는 이전의 경제활동으로 회복되기도 어렵다. 지금 70여종의 백신이 개발 중이고 3종은 임상실험에 착수했다고 하지만 바이러스 백신이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지금의 바이러스 파동이 진정된다고 해도 또 다시 2차, 3차 파동이 발생하기 때문에 코로나19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전혀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들이 많다. 누구나 자신의 건강보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마음 놓고 사람들과 접촉하고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기는 힘들게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코로나19는 일시적인 유행병이 아니고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반복적으로 재발할 수 있으므로 정부는 서두르지 말고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장기전을 펼쳐야만 한다. 온 국민이 지킬 수 있는 개인위생수칙과 진료기관의 환자관리 대책 그리고 각 기관의 행사 요령 등을 표준화한 지침들을 만들어 제공해 줘야 한다.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재개될 수 있도록 마스크나 비말 차단모자 등의 착용 요령 등 대중행사가 가능한 생활방역대책이 필요하다.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방역대책이 없이는 경제가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앞 다투어 코로나19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본소득 및 금융지원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도 150조원을 들여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긴급재난지원금과 보험료 감면 등 전례 없는 수단을 강구했다고 하지만 국가 경제규모에 비해 지원 규모가 너무도 부족해 보인다.

국민들 중에는 기본생계조차도 지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 위기를 탈출할 수 있도록 긴급재난극복자금을 최대한 배분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실업자들의 재고용을 위해 산업별로 실물경제 회생대책를 수립해 실행해야 한다. 아울러 비대면 산업의 확산과 발전방향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총선을 통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문재인 대통령이 과감한 경제회생대책을 강도높게 추진할 것을 기대해본다.

이준정 미래탐험연구소 대표 : 미래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이 뛰어나 '미래탐험가'로 불린다.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과 객원교수, 포항공과대학 겸직교수. 포항산업기술연구원 연구위원, 지식경제부 기술지원(금속부문)단장 등을 역임했다.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요즘은 미래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과학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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