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본사.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항공업계가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 처한 가운데 업계 1위인 대한항공이 올 상반기에 갚아야할 금액이 1조 2000억원에 이른다. 한진칼 측은 송현동 부지와 왕산마리나 매각으로 이 위기를 넘길 심산이지만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1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지난달 발행한 항공운임채권 자산유동화증권(ABS) 6228억원이 이달 내로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여 이달 내로 대한항공 보유 현금이 바닥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 달 고정비용이 4000억~5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가운데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만 2400억원이기 때문이다.

항공운임채권 ABS는 항공사들이 미래에 벌어들일 항공운임을 담보로 하는 채권으로 항공사들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 중에 하나다. 통상 대한항공은 2조원가량을 항공운임채권 ABS로 조달해왔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로 대한항공의 여객 매출 중 94%를 차지하는 국제선 노선의 대부분이 운항되지 않으면서 매출은 급격히 감소하고,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주간 공급 기준으로 약 900회 운항하던 국제선을 코로나19 이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뉴욕 등 13개 노선을 주 50∼55회 운항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오고가는 국제선 여객수가 하루 100명 안팎을 기록하는 가운데 그나마 선방한 화물 수송량 역시 16%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0일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의 업황 악화를 반영해 대한항공의 ABS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단계 하향 조정했다. 한신평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지난달 ABS 회수 실적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68∼84%로 감소해서다.

회사채와 ABS, 차입금 등 대한항공이 올해 안에 갚아야 할 금액은 총 4조원 정도로, 이중 상반기 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만 1조 2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현재 왕산마리나, 송현동 부지 매각 주관사를 결정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도 “얼마에 팔릴지는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만기 상환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노력으로 될 것인지도 모르겠어서 정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지 않나”며 막막함을 드러냈다.

지난 10일 한진칼 이사진은 간담회를 열고 코로나19로 인한 대한항공의 수익 구조 악화에 대한 대응책을 본격 논의했으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소상공인·중소기업보다 시장 접근성이 좋은 대기업은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우선이라는 원칙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31일 “100조원 민생·금융안정 프로그램의 범주 안에서 항공업계도 채권 발행을 하는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주식을 내놓는 등 대주주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의 항공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항공사들도 250억 달러 중 70%를 급여 보조금으로, 30%를 10년 만기 저리 대출 형태로 지원받게 될 것”이라며 “갚아야할 빚이 더 느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연구원은 미국 정부와 항공사 간의 상세한 ‘거래 조건’을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항공사들은 지원금을 받게 될 경우 9월 말까지 고용 유지, 대출 상환 1년 후까지 배당, 자사주 매입, 임원 보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에 규제를 받게 되며 재무부가 항공사들로부터 보통주를 일정가격에 살 수 있는 권한인 ‘워런트’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즉 워런트를 통해 미국 정부는 항공사 지분을 일부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 연구원은 “결국 미국 정부는 정부 지원이 공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고민하고 있는 정부와 한시가 급한 항공사 모두 챙기고 해결해야 할 ‘디테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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