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진. 구혜정 기자

# 재주복주(載舟覆舟)가 주는 교훈

배는 물에 실려 질주(載舟)하고 물에 뒤집히기도(覆舟)한다. 배의 향배는 물길에 달려있다. 항해에 정통한 유능한 선장이라도 물길을 거슬러 순항하기는 어렵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배가 물길의 흐름과는 다르게 움직일수는 있지만 물길의 거센 정도를 감안하면 배가 물을 이기기는 어렵다. 21세기에도 물길의 흐름에 따라 어떤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 때로는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애기다.

엄청난 파도는 배를 엎어 버리기도 하니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물의 위력을 알 수 있는 셈이다. 백성 즉 국민은 물로, 임금이나 위정자는 배로 비유하는 것은 여러 고사에서 확인된다. 지금도 위정자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유학자 순자(荀子)는 “임금은 배이며,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물은 배를 엎어버리기도 한다(군자주야 서인자수야 수즉재주 수즉복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라고 했다.

중국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 왕숙(王肅)도 저서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대저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엎어버리기도 한다(부군자주야 서인자수야 수소이재주 역소이복주/夫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시대 남조(南朝) 송(宋)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범엽(范曄)은 후한서(後漢書)'에서 '무릇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며 여러 신하는 그 배에 탄 승객들(부군자주야 인자수야 군신승주자야/夫君者舟也 人者水也 群臣乘舟者也)'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패하거나 낙선하면 ‘민심을 읽었다’며 낮은 자세로 반성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대표나 선거 책임자는 사퇴하기도 한다,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자들도 민심의 위대함을 피부로 느끼며 위민(爲民)과 애민(愛民)부터 강조한다. 지난 15일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에 대한 각 정당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당락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정당간에 승패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늦은 밤부터 패배한 정당이나 낙선자들은 물론이고 승리한 정당이나 후보들도 약속이나 한 듯이 결과에 상관없이 매번 선거 직후와 달라진 것 없는 매뉴얼화 된듯한 국민을 향한 행동과 행태는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단지 상당수 국민들에게는 진정성 없는 코스프레처럼 읽힌다는 게 큰 문제지만,,,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제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국민의 대표를 뽑거나 지도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여긴다. 다수결로 결정 되는 선거에는 오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오류는 충분히 감당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거를 하면서 한 번 쯤은 들어봤음직한 ‘선거는 최선(最善)이 아니라 차악(次惡)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에도 공감한다. 고(故) 함석헌 선생은 “선거란 덜 나쁜 놈을 뽑는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라며 투표를 안 하거나 적당히 하면 제일 나쁜 놈들이 다 해 먹는다”고 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 그래도 없다면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깔려있다. 먼저 정치권에 대한 굉장한 불신이 그 바탕에 있다. 선거판에서는 최선의 인물을 찾을 수 없다는 자조적(自嘲的)인 심리도 작용한다. 그래서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어 보인다. 

# 정치권 불신부터 해소해야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임기가 시작되면 당선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만의 ‘여의도 정치’에만 골몰한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도 여기서 기인한다. 선거는 작게는 개개인의 삶 ,크게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선택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은 선거철만 되면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 차악을 고르는 악순환을 여러번 반복해왔다. 선거는 한사람 한 사람이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으니 국민 모두의 뜻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이를 뽑는 매우 중요한 권리이자 의미있는 정치적 행사다. 선거의 의의와 필요성 및 명분은 차고 넘치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국의 무정부주의자이자 작가인 엠마 골드만이 “투표해서 바뀐다면 선거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투표 제도로는 현 정치의 문제를 타파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름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 여당의 이번 압승은 이제부터 여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압승의 결과가 국민들의 차선 또는 차악의 선택이었다고 해도 책임 또한 더욱 무겁고 엄중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국회의원 과반의 여당이라면 크게는 국민을 위해 전체의 책임도 질 각오가 되어있는 공당이 되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낮은 자세다. 주역(周易)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경전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역(易)이 ‘바뀌다’라는 뜻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늘의 뜻에 순응해 받아들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해결해가는 미래지향적인 방법이 담겨있다. 주역의 1장 1절은 건(乾)괘다. 64괘 중에서 제일 첫 번째 괘일 뿐만 아니라 주역이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모두 담겨있다. 건은 하늘을 상징한다. 하늘을 상징하는 괘라서인지 하늘을 나는 용으로 비유해 설명한다.

# 명품정치를 솔선수범하라

초구(初九),구이(九二),구삼(九三) 구사(九四) 구오(九五) 상구(上九) 용구(用九)의 순서로 표현된다. 잠룡(潛龍),현룡(見龍),건룡(乾龍),약룡(躍龍),비룡(飛龍),항룡(亢龍),군룡(群龍)등으로 단계별로 나누고 있다. 특히 네 번째인 약룡부터 사실상 용이 된다. ‘연못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잠복하기도 한다. 그래서 허물이 없다(혹약재연 무구/或躍在淵 无咎)’라며 스스로 시험하고 혁신을 하라고 말한다. 용이 드디어 기회를 얻어 큰일을 할 때가 왔으나 반드시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다음이 비룡으로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이라고 풀이한다. 여의주를 문 하늘의 용은 대인을 보면 이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과반 여당은 막강한 권한을 쥔게 된만큼 당연히 이로운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같다. 그 다음은 ‘항룡유회(亢龍有悔)’로 용이 너무 높이 날아올라 지나치게 높아지면 재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히면 망하게 되고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용들이 머리를 감추고 있으니 길하다(견군룡무수 길/見群龍無首 吉)’이다.

남들보다 높아지려는 의식을 버리고 겸손과 온유함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때 길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그래야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 국민들이 준 기회이지만 국민들에 대한 무한 책임을 주역은 말해주고 있다. 과반 여당으로서는 새겨야 할 대목이다. 주역의 지혜로 양당제가 더욱 두드러질 국회에서 보다 겸손하고 소통하는 자세로 온유하게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옹야(雍也)편에서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러워지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내용이 없이 번드르르해진다.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君子)라고 할 수 있다(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고 했다. 촌스러움(野)이란 꾸밈이 바탕에 못 미치는 경우이고, 번드르르함(史)이란 꾸밈이 화려하지만 바탕이 이를 보장하지 못하는 경우로 꾸밈(형식)과 바탕(품질)이 조화로울(彬彬)때 비로소 명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명품에 대한 공자의 정의가 어찌 단순한 물건에 관한 것만이겠는가. 사람과 국가 경영에 관한 정의도 마찬가지다. 여당은 이를 꼭 기억하고 낮은 자세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욱 현명하고 지혜롭게 국정운영에 나서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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