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열풍 감당못하는 증권사들, 시스템 장애 생기면 발빼...거래량 폭주 대비 시스템 증설 필요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최근 국내와 해외 증시가 코로나19로 인해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면서 주식 거래량이 폭증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무턱대고 과도한 투자에 나서 자칫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것도 문제지만 종목 주가의 등락과 무관하게 재산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바로 증권사 거래시스템의 오류 가능성 탓이다.
1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증권사 온라인 매매시스템인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접속 장애와 각종 오류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과도한 물량거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증권사들의 대체적인 해명이다. 이들 증권사는 뒤늦게 서버 증설이나 시스템 정비에 나서고 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식 거래 매매에서 때로는 종목과 상품에 따라 매수와 매도에 있어 속도가 차익 실현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 증권사가 한둘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도 증권사 거래 시스템에 유사한 오류는 늘 있어 왔다. 그동안 축적돼온 뼈아픈 경험으로 이뤄졌어야 할 시스템 관리나 긴급상황 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의 거래량을 예측해 딱 그 정도만 수용할 수 있도록 한정적 용량의 서버를 구축해 놓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전쟁터에 나선 장수가 `평소 이 정도 적이 쳐들어오니 칼을 이 정도만 갈아뒀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얼마전만 해도 키움증권을 비롯해 SK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유안타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이 모두 시스템 오류로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
SK증권과 키움증권의 경우 각각 지난달 11일과 13일 시스템 오류로 대량의 민원이 접수됐다. SK증권은 잔고 조회 등에 오류가 생겨 장비 교체와 수리를 하느라 한바탕 곤욕을 치렀고, 키움증권도 접속 지연이 발생해 이후 서버를 증설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키움증권의 경우 지난 한 달간 최소 세 번이나 시스템 오류를 겪어 초 단위로 손실을 겪었을 투자자들의 불만섞인 항변을 받아야만 했다.
KB증권과 이베스트투자증권 역시 지난달에 각각 글로벌 HTS와 MTS에서 로그인 지연이나 잔고조회 지연 등의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전반적인 증권사 시스템의 안전성에 의구심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신한금융투자의 `알파`와 한국투자증권의 `한국투자` 에서도 지문 등 바이오인증 방식 로그인 오류로 접속이 되지 않거나, 주문 체결과 잔고 조회 등의 기능이 일부 작동하지 않았다. NH투자증권의 `나무` 또한 접속 지연으로 잔고가 확인되지 않은 사고가 발생했다.
각 증권사들은 대개 증시 변동성 폭이 커 거래량이 폭주하면 서버 오류가 일어난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일부 고객분들이 그런 불편을 겪었다는 전산 기록이 있을 수 있지만, 불만처리를 해달라고 요청한 분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며 시스템 오류라기보다 단순 지연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전산에 기록된 불편을 겪은 고객들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전산 시스템을 공개하라는 말이냐"며 "내부 기밀이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증권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디어SR에 "거래량 폭주로 인해 증권사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황이기 떄문에 시스템 점검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기준으로 현재 주식 활성화 계좌는 3053만4668개로 올초 2935만6620개 보다 4.01% 증가한 수치다. 또 지난달 하루평균 주식거래량은 21억6675만주로 1월 평균이었던 16억6249만주 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주식투자 열풍도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 증권사들의 입장이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소송을 언급하는 등 반발이 심한 경우도 적지 않아 증권사의 해명만으로는 전혀 근본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시장은 다우지수가 5%이상 급등했던 지난달 2일 MTS 로빈후드가 갑자기 멈추면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이미 많은 증권사 트레이딩 시스템에서 오류로 인해 피해를 본 경우가 많아 집단소송 움직임을 배제할 수는 없다. 심지어 키움증권의 경우 전산장애에 따른 보상절차에 돌입했지만, 피해액에 한참 미치지 못하거나, 모든 사람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사들이 주식거래시스템 '먹통 사고'로 투자자에게 지급한 보상금이 최근 5년간 100억원에 이를 정도라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이는 온라인 주식매매가 일상화됐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대비를 해오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해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17개 증권사의 전자금융 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8월까지 모두 81건의 전산장애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를 본 고객에 대해 증권사들은 거래 건수 기준 총 6906건, 97억8000만원을 보상했다. 이때도 비대면 거래 활성화에 따른 MTS, HTS 사용자가 증가하고 있어 증권사들의 전산망 투자 확대와 내부통제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때는 하나금융투자와 미래에셋대우가 각각 과태료 1억원과 5000만원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 팬데믹으로 명명될 만큼 예외적인 블랙스완 현상이기에 주식 거래량 폭증을 사전에 대비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든 '블랙스완(검은 백조)'은 나타날 수 있다. 다소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대용량 서버를 유지하기 위해 자금을 투입하는 등의 근본적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