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구조조정 우려 커져

14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과 전국연합 노동조합연맹이 ‘위기의 항공산업, 신속한 정부지원을 촉구하는 항공업계 노동조합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지원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 정혜원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전세계 하늘길이 멈춰 섰고, 지난주 인천국제공항의 국제선 일평균 여객수는 5000명대를 기록했다. 항공사들은 매출이 거의 ‘제로(0)’에 가까운 상황에서 대거 희망퇴직‧휴직 조치에 나섰지만 항공기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이 커 나날이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항공사 내부에서는 이 여파가 이어져 결국 구조조정까지 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분위기다. '코로나19 괴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번에는 노조가 직접 나서 정부에 지원을 촉구하는 청와대 앞 기자회견까지 개최하는 상황이 됐다. 

#노조와 조종사들까지 정부 지원 촉구

항공사들의 정부 지원 요청이 몇차례 이어졌음에도 정부측에서 특별한 방안을 내놓지 않자 14일에는 항공사 노조까지 나서 정부의 지원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날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과 전국연합 노동조합연맹은 ‘위기의 항공산업, 신속한 정부지원을 촉구하는 항공업계 노동조합 기자회견’을 열고 “항공 산업 존폐 위기에 정부는 정책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라”고 촉구했다.

대한민국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은 대한항공‧아시아노동조합, 아시아나 조종사 노동조합, 아시아나 열린조종사 노동조합, 에어부산 조종사 노동조합,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제주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진에어 노동조합 등 6곳 항공사의 7개 노조로 구성됐으며 지상 조업사로 구성된 전국연합 노동조합연맹은 한국공항 노동조합, 월드유니텍 노동조합 등이 참여했다.

앞서 아시아나 조종사노조는 4월부터 전 직원이 15일 이상 무급 휴직에 들어간다는 사측의 자구책에 동참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기본급과 고정수당을 기존의 절반만 받기로 한 것이다. 당초 조종사 노조는 4월부터 6월까지 매월 10일로 휴직 기간을 정할 것을 사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최근 항공업황이 악화되자 회사 측 자구책에 동참하기로 입장을 바꿨다.

대한항공도 4월부터 외국인 조종사 전원을 대상으로 3개월간 무급휴가를 실시했다. ‘고급 인력’으로 간주돼 인건비 지출이 큰 조종사가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매출 절벽을 메우기 위한 고강도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이날 노조는 코로나19인한 항공업계의 위기가 심각하다며 “한 항공사의 도산은 직접 고용된 직원들만의 문제가 아닌 해당 항공사와 계약돼 있는 수많은 조업사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해당 조업사의 하청 업체까지 줄도산을 야기할 것”이라며 정부의 조속한 지원을 촉구했다.

한태웅 에어부산 노조위원장은 “인천공항은 이용객이 95% 이상 감소해 공항이 아닌 항공기 주기장 역할을 하는 처지가 됐고, 각 항공사는 적자에 허덕이며 서둘러 전 직원 순환 휴직을 실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항공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금융지원을 시작해야 한다”고 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외국 정부의 조치와 비교하며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미국은 74조원, 프랑스는 60조5000억원, 독일 무한대, 싱가포르는 16조5000억원 등 대출 지원과 더불어 직접보조금, 세금 면제까지 전방위적인 지원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2월 중순 ‘항공분야 긴급 지원대책’을 마지막으로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당시 1차 대책은 최대 3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통해 저비용항공사(LCC)의 자금난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으나, 항공사들은 기존 대출을 지원받았을 뿐 신규 자금 지원은 아니라며 산업은행과 국토교통부를 비판한 바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이날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회장과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을 통한 고통분담 등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앞서 이스타항공은 지난 3일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통보하고 임금을 체불해 한바탕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특히 이날 대표 발언자로 나선 최현 대한항공 기장은 "정부는 항공사의 자구책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항공사업장을 필수 공익 사업장으로 지정했음에도 정부가 자구책을 언급하며 지원책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마치 응급환자가 구조를 요청했을 때 수술비 지불 가능 여부를 따지고 치료를 안 해주는 것과 같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사진. 이스타항공

#무급 휴가는 시작일 뿐?

이에 따라 정부가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항공사를 신속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항공사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구조조정에 대한 우려로 직원들이 불안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16일부터 대한항공은 필수인력을 제외한 70%의 직원이 6개월간 휴무에 들어간다. 필수인력이 매월 교대 근무에 나서는 시스템으로, 6개월 중 3개월을 상여금 없이 기본급만 받게 되는 구조다.

사실상 최소한의 임금을 보전받는 유급 휴직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내부에서는 무급 휴가에서 희망퇴직, 구조조정 순으로 이어질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국적 항공사 중 1위인 대한항공조차 구조조정 우려가 현실화 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에 재직 중인 한 직원은 미디어SR에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구조조정 들어가게 되는 것 아니냐”면서 “이대로면 그냥 해고될 수도 있어서 공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대한항공 측은 구조조정을 논의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내부에서도 동요가 다소 있지만 회사의 공식 입장은 아직 논의 중인 것이 없다는 것”이라면서 “경과를 면밀히 더 살펴보면서 현재 상황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항공노조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아무래도 국내뿐 아니라 해외 상황까지 고려하면 코로나19가 장기화되지 않겠느냐”면서 “현재 (업계에서는 버틸 수 있는 여력이) 10월까지라고 보고 있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이 관계자는 “언제 진정될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마도 6개월 뒤면 다시 (자구책) 조정을 얘기하게 될 텐데 지난해 12월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게 차라리 좋은 조건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가운데 항공업계 지원방안을 놓고 국토부와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위는 항공사도 자구 계획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반면, 국토부는 항공사들이 무너지기 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재촉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두산그룹에 1조원을 지원한 뒤 ‘대주주의 책임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겠다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공언'에 따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재무구조 개선안에 사재 출연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대형 항공사들의 금융 지원 방안도 대주주의 책임이 반영되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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