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현대차, LG 등 굵직한 기업들이 유휴 자산 매각에 나서는 까닭
"코로나19 위기가 지나간 후에는 버티고 살아남은 자들의 세상온다"

한진그룹 본사.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확산하면서 수요 급감으로 글로벌 실물‧금융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다수 기업들이 위기 상황을 넘기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재계 순위권 대기업 집단들이 줄줄이 ‘실탄 확보’에 나섰다. 이들 기업은 지난 위기를 경험하면서 ‘버티기’가 곧 경쟁력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 현대차, LG …

13일 한진그룹은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을 유휴자산 매각 주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한다. 삼정KPMG‧삼성증권 컨소시엄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분석 및 매수 의향자 조사, 자산 가치 평가, 우선협상자 선정, 입찰 매각 관련 제반사항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매각 대상 유휴자산은 ▲대한항공 소유 서울 종로구 송현동 토지 및 건물(3만 7242㎡) ▲대한항공이 100% 보유한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 운영사 ㈜왕산레저개발 지분 ▲칼호텔네트워크 소유 제주 서귀포시 토평동 파라다이스 호텔 토지 및 건물(6만 5916㎡)이다.

한진그룹은 비수익 유휴자산 매각을 비롯해, 저수익 자산 및 비주력 사업에 대한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지속 개발·육성 또는 구조개편해 그룹의 재무구조를 적극 개선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도 앞서 3월 중순 전 계열사에 현금성 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라는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부상 기아차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4조 2687억원이다. 평시 상태로는 양호한 수준임에도 위기에 선제 대응하는 차원으로 기아차는 현금성 자산을 늘리기로 했다. 현대차·현대모비스는 물론 현대제철을 비롯한 전 계열사 역시 각기 수천억~수조원에 이르는 현금·자금 조달방안을 추진 중이다.

LG그룹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 2월 초 LG그룹은 베이징 트윈타워를 매각하면서 약 1조 3675억원에 이르는 넉넉한 실탄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와 LG화학, LG상사는 이 금액의 각각 49%, 26%, 25%를 조달받게 된다. 또한 최근 LG전자는 전사 차원의 비상경영체제 가동을 공식화하고 긴축경영 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각 사업부는 이달부터 연차소진 적극 권장, 각종 소모품 구입 축소 등 내부 경비 통제에 들어갔다.

LG화학은 앞서 신학철 부회장의 사내 메시지를 통해 올해 초 비상경영체제 재검토를 주문했다. 업계에서는 그룹 차원에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시킨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앞서 구광모 회장은 지난달 ㈜LG 정기 주주총회에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명암이 분명한 유통·식품업계도 경영 악화를 대비해 부동산 등을 매각하며 재무구조 개선에 적극 나선다. 유통‧식품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연장으로 온라인 장보기와 온라인 쇼핑 매출이 늘었지만 오프라인 매출이 쪼그라들어 사실상 고정비 지출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마트는 지난달 25일 재무건전성 및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마곡도시개발사업 업무용지(CP4구역)를 약 8200억원에 매각했다. 2013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로부터 해당 부지를 약 2400억원에 매입했으나 약 5800억원의 차익을 보는 대신 당초 계획했던 복합쇼핑몰 건설을 유보했다.

신세계그룹도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으로 지난해 10여 개의 점포를 매각해 1조원가량을 확보했으며 롯데쇼핑은 지난해 10월 백화점 마트 아웃렛 등 10개 점포를 롯데리츠에 매각해 1조 6000억원을 확보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도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강남 논현동 옛 사옥 매각을 추진 중이다.

#'실탄', 코로나19 종식 후에 더 요긴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7일까지 29개 기업이 부동산 등 유형자산 매각을 공시했고, 이 기업들이 매각한 자산은 총 1조5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8개 기업이 매각한 총 자산(4800억원)과 비교하면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보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도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으로 투자가 줄어들고 기업들의 자금 경색이 지속될 경우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기업들이 한꺼번에 자금시장에서 현금 조달에 나설 경우 은행의 자금 압박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으로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다만 현금 확보를 위기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 아닌 장기적인 경영 전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미디어SR에 “기업들이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사업성 없는 계열사를 정리해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핵심 계열사를 살리기 위한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의미를 짚었다.

오일선 소장은 이어 “결과적으로 코로나19는 반드시 종식될 것”이라며 “다만 코로나19 종식 후에는 이미 한계기업이 정리돼 산업이 재편될 경우 현재 확보한 현금은 유망기업을 인수하는 자금으로 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재계는 당장의 수요 급감으로 인한 실적 악화보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글로벌 시장의 재편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충분한 재고와 현금을 확보해둔 기업들은 위기가 끝난 이후의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내구재일수록 위기가 끝나면 다시 소비와 수요는 회복될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기업의 생사는 위기상황을 맞았을때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러스와 인류의 싸움에서 패배자는 늘 바이러스였기에, 즉 결국은 바이러스가 종식됐기에 코로나19도 장기화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다만 위기가 지나간 후 버텨서 살아남은 기업이 (무너진) 경쟁기업이나 그 기업의 인력 등을 흡수하게 되는 만큼 기업간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