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5부제. 사진. 구혜정 기자

# 고도(Godot)를 기다리며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겸 극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 도시 '오랑'에서 급작스럽게 벌어진 전염병 페스트의 확산과 이를 이겨낸 시민들의 이야기다. 소설은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시민들이 승리한 원동력으로 세 가지를 지목한다. 첫째 리유와 타루처럼 각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의 '성실성'과, 둘째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파늘루와 랑베르등과 같은 구성원들의 '연대'. 마지막으로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다며 시민들이 끈을 놓지 않았던 '희망'이다.

지난 5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편집인 스티븐 리빙스턴은 자신의 글에서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인용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인류 전체가 작품의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되었다고 말한다,역시 희망에 관한 애기다. 작품에서는 이들은 기다리는 고도(Godot)가 정확히 무언지는, 오는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른다.하지만 매일 기다린다, 그게 희망이다. 누구는 자유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기다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무력감에다 무감각해진 일상이 되어가기 시작한다.둘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일탈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고도의 블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을 닮아간다. 이젠 옆길로까지 새고 있다. 전 세계를 패닉 상태로 몰아가는 코로나 19사태의 고도는 무엇이며 언제쯤 오는 걸까? 정부가 이어지는 경제적 파탄에는 본격적으로 손 쓸 틈도 모자란다. 무작정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 청결, 확진자 엄정격리, 역학조사 등을 통한 차선의 방역만 이어지는 현실이다, 점차 좋아지고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며 다시 늘어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은 더욱 엄격해진다. 우려와 심리적 불안감은 짜증으로 이어지면서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일상에 자극적인 일탈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설마’라는 근거없는 자신감마저 거든다.

성큼 다가온 봄은 사람들의 심란함을 더욱 흔든다. 지난 6일 처음으로 확진환자가 50명선 아래로 떨어지고 전세계 언론은 지속적으로 우리의 방역체계를 본 받고자 하며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미국 유럽 일본 등 다른 국가의 급박한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200명 육박한 사망자수마저 대수롭지않게 다가온다. 해외유입 환자는 늘고 있고 신규 환자의 3분의1 이상은 해외유입이다. 초기보다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집단감염이 아직도 곳곳에서 일어난다.특히 수도권의 집단감염 양상이 심상치 않다. 수도권 누적 확진자 수는 지난 1일로 1000명을 넘어섰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3차 대유행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눈썹에 불이 붙는다’는 표현의 위급한 상황이 아직도 남의 애기는 아니다.

# 3차 대유행 가능성은?

연미지급(燃眉之急),눈썹에 불붙은 듯이 위급하다는 의미다. 눈과 가장 가까운 눈썹까지 위험을 느끼게 되야 막다른 곳에 몰린 걸 안다는 뜻이다. 불교 선(禪)의 대의를 밝힌 입문서라 하는 남송(南宋)대(代)의 선승(禪僧) 보제(普濟)가 기존의 불조(佛祖) 전등록(傳燈錄)들을 정리‚재편집한 오등회원(五燈會元)에서는 불이 눈썹을 태우는 것이 가장 화급하다며 화소미모(火燒眉毛)라고도 했다. 지난 2월 대구에서의 신천지교인들로 인한 급속한 확산과 같은 화급하고 갑작스러운 엄청난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진다.

나관중( 羅貫中)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오(吳)나라에 책사인 장소(張昭)가 원병을 청하러 온 촉(蜀)나라의 제갈량(諸葛亮)에게 한 말에서 유래한다. 위험한 일인줄 눈썹까지 불이 붙을 때라야 알게 되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사다. 산적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잘 되겠지, 설마하는 마음가짐으로는 눈썹이 타올라도 위험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코로나 19사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인식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알기까지는 더욱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이를 목도했다.일본도 그랬다. 7일에서야 도쿄도등 주요 지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지금 우리 시민들의 위기의식이 그런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사망하지만 나는 아니다는 것이다. 페스트에서 카뮈는 이렇게 부주의하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을 비판한다. 이들은 자신 눈앞에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재앙의 존재는 자기와 무관하다며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지난 2달 사이에 우리는 비슷한 사례들을 국내 외에서 여럿 보아왔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개인의 안전만 생각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속한 공동체와 이웃의 안전에 책임지는 태도까지를 포함한다. 내 몸이 건강할 때 이웃이 건강할 수 있고, 이웃이 건강할 때 내 안전도 보장된다.

지난 주말 벚꽃이 절정을 이루면서 여의도 윤중로와 한강시민공원, 남산 등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은 시민들로 꽤나 북적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벚꽃축제가 취소되고 주요 봄철 관광지가 폐쇄되는등 지자체와 당국의 조처에도 시민들은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쏟아져 나왔다. 홍익대입구 명동 강남역 주변도 붐볐다. 4.15 총선 선거 운동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경각심이 느슨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마지막 멈출 시점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4일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종교시설과 체육시설, 유흥시설, PC방, 노래방, 학원 등의 운영 제한도 19일까지 계속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신규 확진환자 수를 하루 평균 50명 내외까지 줄인다는 목표다. 계속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참여가 저조해진 탓이 크다. 여전히 '대유행' 우려는 남아있다. 최근 일주일간 신규 확진자 발생 추이는 △31일 125명 △1일 101명 △2일 89명 △3일 86명 △4일 94명 △5일 81명 이었으나 6~7일 연속으로 47명을 기록, 50명대이하로 이틀째 진입했다. 박능후 중대본 1차장은 "정부는 그러나 현 상황이 여전히 엄중하다고 판단한다"면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할 때가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끌고 갈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고 향후 생활방역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람의 움직임은 선(線)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차를 몰아도 차선을 지켜야 하고 횡단보도 정지선 앞에서 멈춰야 한다. 지하철을 탈때도 노란선 밖에서 기다린다. 대부분의 선은 안전과 연관이 있다. 선을 지키라는 요구를 받게 된다. 우리는 선상을 오가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삶을 살아간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찬가지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44장을 보면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知足不辱,知止不殆,可以長久)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멈춰야 될 엄중한 시점이다. 코로나19와 관련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황이 좋은데 만족하자. 그리고 한번만 더 멈춰보자,이번 주말이 고비라고 한다. 고도는 점차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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