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직접 매입은 확대해석"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사민 기자] 한국은행이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비은행 금융기관 대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직접 회사채 매입에 나설지 이목을 끌고 있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은 회사채 시장 신용경색 가능성에 따른 안정장치로서 회사채를 담보로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일 간부회의가 끝난 후 "한국은행은 기본적으로 은행 또는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시장안정을 지원한다"면서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는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한은법 제80조에 의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법 제80조는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한국은행은 영리기업에 대출할 수 있다'고 밝힌 조항이다. 금융통화위원 중 4명이 동의하면 가능하다. 

한국은행은 앞선 지난달 23일 회사채나 CP(기업어음)를 매입하는 방식에 대해 '한은법 제68조에 의거 정부 보증 없이 회사채나 CP를 매입하는 것은 어렵다'며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시장 안팎에서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대응'이라는 지적과 함께 한은이 시장 안정화 역할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때문에 회사채 매입 불가능의 입장을 낸 지 2주 만에 한은이 기조를 바꿔 "검토해볼 수 있다"는 우회적인 대책을 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처럼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한은 관계자는 미디어SR에 "현 상황에서는 신용경색의 가능성이 있으니 안전장치도 감안해보겠다는 정도의 단계"라면서 "SPC를 설립해 회사채를 직접 매입한다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일 채권시장안정펀드가 가동되고 전날 전액 공급 방식의 RP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시작됨에 따라, 당분간 시장 자체 수요와 채안펀드 매입만으로도 차환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증권사 대출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한은이 현 상황을 '중대한 애로'가 발생한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뜻이다. 금융시장 불안으로 증권사 부실 우려가 증가하자 한은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증권사들은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증거금을 마련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에 증권사들이 너도나도 CP 공급을 늘리자 CP 가격이 급락하면서 증권사들의 부담이 커져가는 상황이다.

다만 한은이 한은법 제80조를 적용한 사례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가 유일하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도 신중한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한은이 특정 기업의 지원을 위해 이 조항을 적용한 사례는 없었다. 1997년 종합금융사 업무정지와 콜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지원을 위해 한국증권금융에 2조원, 신용관리기금에 1조원을 대출해준 게 전부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이주열 총재는 "법에서 정한 한국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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