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현대車 등 신사업 정관에 담아
국민연금도 실패한 한진칼 ‘룰 체인지’

2019년 한진칼 정기주주총회 장면.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한진그룹 경영권을 두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사모펀드 KCGI·반도건설 등 3자 연합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간 치열한 경쟁은 조원태 회장의 ‘싱거운’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게임의 ‘룰’이 곧 기업의 ‘정관’

올해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조원태 회장의 연임 여부와 3자 연합이 제시한 사내‧외이사의 선임 여부가 가장 큰 관심을 모았지만 이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정관’이었다. 정오 즈음에 시작한 주총은 장장 5시간 넘게 이어졌으나 주총의 끄트머리에 상정된 정관 변경은 낮은 투표율과 높은 의결정족 수로 회사와 3자 연합 제안 모두 부결됐다.

정관이란 기업 활동의 근간이 되는 규칙으로 기업 내에서는 헌법과 같다. 따라서 기업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항은 정관에 부합해야 하며 기업의 현황이 정관에 맞게 정비되어야 한다. 정관은 의무 기재 사항이나 임의 기재 사항 등 내용에 따라 기재 의무가 다르지만 상법개정에 따라 정관을 변경하지 않으면 기업의 영업 활동이 부당행위로 계산돼 막대한 세금을 물게 되거나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게임의 룰이 자주 바뀌거나 일부에 의해 변경될 경우 모두가 납득하고 존중하는 ‘법’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된다. 한진칼의 정관 변경 안건이 특별결의사안에 해당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가결되기 위해서는 출석 의결권 수의 2/3 이상 찬성, 발행주식 총수의 1/3이상 찬성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 상정된 정관 일부 변경 안건은 한진칼 제안이나 3자 연합 측 제안 모두 부결됐다.

#국민연금도 실패한 한진칼 ‘룰 체인지’

이번 주총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할 기업지배구조 개선 안건으로 꼽힌 4가지는 ▲소수주주 권익 제고를 위한 전자투표제 도입 ▲배임·횡령 이사의 직위 상실 등 이사자격기준 강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사외이사) 분리 ▲이사회 구성원 성(性) 다양성 보장 ▲보상위원회·거버넌스위원회 신규 설치 의무화 및 준법감시·윤리경영·환경·사회공헌위원회 설치, 각 위원회 위원장에 사외이사 임명 등 사외이사 중심 위원회 구성이다. 모두 주주연합이 제안한 정관 변경안이지만 제안 주체와 상관없이 이사회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주총이 열린 지난 27일 오전에 참여연대, 공공운수노조, 민주노총, 한국노총,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의 다수의 시민 단체는 정관 변경이 중요한데 3자연합과 조원태 회장 모두 이를 등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사회가 총수일가의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며 경영진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정관부터 변경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정관 변경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ESG(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책임, Governance‧지배구조)를 강화하겠다는 한진칼의 경영 방침이 무색해졌다. ▲배임·횡령 이사의 직위 상실 등 이사자격기준 강화, ▲이사회 구성원 성(性) 다양성 보장 등 2개 안건은 사회 책임을 다하기 위한 기초적인 조건임에도 부결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투표제와 관련해서 3자연합은 꾸준히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왔음에도 이번 주총에서 또다시 부결됐다. 전자투표제는 찬성률 48.19%로, 3자연합이 제안한 다른 정관 변경 건과 비교하면 찬성률이 약간 더 높은 편이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주총에서는 일부 주주들이 3시간 가까이 지연된 위임장 확인 절차에 대해 강력히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전자투표제 도입이 무산된 것은 안정성을 고려한 ‘룰 체인지’의 허들을 다소 낮춰야 할 합리적인 근거로 평가하기도 한다.

지난해 3대 주주인 국민연금조차 정관 변경에 실패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을 7.34% 보유한 3대 주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한진칼에 대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의결했었다. 국민연금은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 · 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는 자동 해임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주주총회에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결국 한진칼 주총이 번번이 양측의 표대결로만 인식되면서 주총 본연의 목표인 회사와 주주 간의 소통 창구로서 제 기능에서 멀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주와의 소통이 원활해야 이사회 기능의 정상화가 가능한 토대가 구축되며 그로부터 건설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으로 기업 가치를 제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모빌리티 비전 티저 이미지.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신사업 진출 가늠하는 사업 목적 변경

올해 주총에서는 정관 변경을 통해 신사업에 진출하는 기업도 눈에 띄었다. LG전자는 회사 정관의 목적사항에 '통신판매 및 전자상거래 관련 사업'을 추가하는 정관 변경안을 가결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기존의 ‘씽큐’ 앱 스토어를 통해 소모품 등을 앱으로 판매하거나 중개하는 형태의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디어SR에 “'LG 씽큐(LG ThinQ)' 앱을 통해 광파오븐,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함께 사용하는 식품과 세자 등 까지도 팔거나 판매를 중개하는 형태의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앞서 LG전자는 지난해 10월 씽큐 앱 스토어를 열고 ‘퓨리케어 360° 공기청정기’의 필터와 ‘코드제로 A9’의 청소포 등 소모품과 액세서리 등을 팔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소비자들은 세탁기나 냉장고, 오븐 등에서 쓰이는 식품과 세제 등을 앱에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도 이번 주총에서 사업목적을 '각종 차량 및 기타 이동수단과 동 부분품의 제조판매업'으로 바꾼다. ‘기타 이동수단’을 추가해 현대차가 추진 중인 미래 모빌리티 관련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결정이다. 올해 초 현대차는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과 서비스로 사업 구조를 바꾸고, 차를 비롯해 개인용 비행체(PAV),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해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주도한다는 ‘2025 전략’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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