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국거래소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요즘 엘리베이터만 타면 다 주식 얘기하던데요” 30대 직장인 한 모씨는 코로나19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주식 투자에 관심이 쏠려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그도 여윳돈을 조금씩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디어SR에 “분위기에 휩쓸려 주식 투자를 결정하게 될 경우는 위험하다”면서 “코로나19 사태의 경우 백신이 나오기까지 1년이 넘게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야구로 따지면 현재는 7회까지도 못 간 상태”라며 자신의 여유 자금과 상황을 고려하여 투자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개인 매수세는 뚜렷하지만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주식 및 펀드 투자 등 금융교육을 받아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금융당국은 2009년부터 금융교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편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10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나마 콘텐츠 개발, 민간 전문가 육성, 금융교육 필요성 홍보 강화 등의 정책들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개인이 금융교육을 스스로 책임졌어야 했다.

실제로 은퇴세대들이 뒤늦게 평생 해보지 않은 재테크를 하다가 목돈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고령층 개인회생·파산 신청자가 급증한 것도 이런 문제 상황을 뒷받침한다.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높은 수익률에만 혹해 투자를 결정해 사회적 파장이 심각한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 불완전판매로 논란이 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역시 고령 투자자가 많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DLF 가입자 가운데 60~70대가 70%에 달했다. 동양 기업어음(CP) 사태나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피해자도 대부분이 60~70대였다.

하지만 생애주기를 고려하면 고령층에 이르러서 안정적인 자산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식투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에도 개인 매수세가 뚜렷한 이유가 시중의 여유자금이 주식을 쏠리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지적한다.

김자봉 선임연구위원은 미디어SR에 “부동산 갭투자 등 차액 실현을 노리던 여유 자금이 현재 주식 시장으로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현재처럼 주가 변동성이 굉장히 심할 때는 당장 (자금이) 여유가 있고 투자 경험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안전하지만 여유 자금이 없는 사람이나 은퇴 자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금융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가 부족한 채로 은퇴할 경우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노후대비 자금에 손실을 입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노후대비 자금은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하지만 무작정 높은 수익률을 좇아 원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금융 상품에 투자하게 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금융 리터러시가 부족할 경우 결국 노후대비 자금에 손실을 입힐 가능성이 커지고 노인 빈곤율도 심화할 수 있다. 금융교육 부재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를 악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자봉 연구원은 미디어SR에 “거듭되는 외환위기,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 자살률이 많이 증가했다”면서 “분위기에 편승해서 투자한 후 손실이 막대해지거나 위기 상황 등에 대처할 방안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사회 전반에 심각한 파장을 미친다”고 진단했다.

저금리, 저성장으로 ‘노동소득은 망했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제로 금리 시대에 금융 리터러시는 자산을 불릴 수 있는 핵심 지식이 됐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금융 리터러시의 수준이 향후 소득과 부의 규모, 크게 보면 소득의 양극화와 관계가 있다고도 지적한다.

2010년 KDI 경제정보센터가 발표한 ‘학교 경제교육의 실태와 향후 과제’에 따르면 부모의 학력과 소득, 직업, 가장의 유형 등 가정환경이 탁월하고 학생 개인의 학교성적이 높을수록 경제 이해도가 높았다. 또 금융이해도가 높을수록 가계 자산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5년 한국FP학회에서 발표된 ‘금융이해력이 가계 자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금융이해력이 1점 증가할 때, 금융자산이 0.7%, 부동산이 0.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자산, 순자산도 각각 0.3%, 0.5% 증가했다.

이에 2009년 금융위와 기획재정부, 교육부 등 관계 부처가 금융교육을 정규 과목에 편입하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융교육의 필요성이 부각된 데 따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금융교육에 관한 법률 제정과 법정 전담기구 설치는 19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채 자동 폐기됐고,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처지다

금융교육 현장. 사진. NH농협은행

#선진국은 실전형‧일상생활형 금융교육 중

금융위원회는 올해 업무계획에도 금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교육 기관별로 산재된 교육콘텐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청소년·청년·중·고령층 등 생애주기별로 콘텐츠를 관리·개발하기로 했다. 금융교육에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도 구축하고, 금융교육 강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도 마련한다.

그러나 금융교육이 정규 과목으로 편성되지 않아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영국은 각 공립학교 금융교육 담당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에게 금융교육을 얼마나 제공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금융교육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2%에 불과했다. 설문에 응답한 교사 중 15%가 ‘많이’, 60%가 ‘어느 정도’라고 답한 바 있다.

영국은 2014년 9월부터 만 11~16세를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의무화했으며 캐나다 역시 모든 주에서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은 특히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제교육협의회(CEE)가 전국 240여개 지역센터를 통해 교사 연수와 프로그램을 학교에 제공하고 있다. CEE의 노력으로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방 차원의 학교 금융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2018년 기준 미국 45개 주가 교육과정에 개인금융 교육 기준을 마련했고, 이 기준을 실행하는 주 역시 38곳에 달한다.

교육 방식에 있어서도 한국의 금융 교육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선진국은 이처럼 금융 리터러시가 사회적 양극화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체계적인 금융교육 과정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영국, 미국, 독일 등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을 상대로 맞춤형 금융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며 파생상품과 같은 복잡한 상품을 가르치기도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2월 작성한 ‘주요 선진국의 경제교육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정부가 정의하는 금융 역량은 ‘일상 및 평생에 걸쳐 돈을 잘 관리하는 능력’이다. 이에 따라 영국 역시 실용성 위주의 금융교육을 실시하는데, 초등학생 때는 돈의 역할과 안전한 보관법, 가정의 수입과 지출 등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로 공부한다.

KDI는 “한국의 경우 초등학생에게도 경제학 원론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희소성과 합리적 선택을 가르치려 하는데, 영국은 학생들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주제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금융교육의 실용성은 사회 진출 직전 단계인 16~18세에서 극대화된다. 상품과 숙박 등 임차 계약 과정을 이해하는 내용부터 시작해 부모로부터 독립할 때를 대비해 예산 계획 세우는 법도 가르친다. 연금을 일찍부터, 꾸준히 납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좋은’ 부채와 ‘나쁜’ 부채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부채는 악(惡)’이라고만 가르치는 한국식 교육과는 다른 점이다.

캐나다는 수학이나 사회 같은 필수과목 과정 중에 금융이나 소비생활에 대한 부분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금융이해도를 높인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막연히 갖고 싶은 것’과 ‘반드시 필요한 것’을 구분해 절약을 습관화하는 연습을 시킨다.

금융을 따로 분리해 교육하기보다는 다른 과목과 통합해 가르친다는 점도 선진국 금융교육의 특징이다. 싱가포르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는 ‘경제교육’이라는 용어와 ‘경제학’이라는 별도 과목이 존재하지 않는데다 금융만을 다루는 별도의 정규 수업시간도 없다. 지난 2014년 싱가포르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여러 학문과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금융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싱가포르는 사회, 수학, 영어 등의 과목에 금융 관련 단원이나 주제가 섞여있다. 학문적 경계가 없다보니 다양한 관점에서 금융을 바라볼 수 있고, 오히려 이론보다 실생활 위주의 금융교육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초등학교의 인성·시민성 과목에서는 ‘책임 있는 의사결정’ 단원에서 시간·자금 관리를 배운다. 한정된 시간과 돈을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이라는 개념을 체득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육 현장에서 실질적인 금융교육이 이뤄지려면 학생들이 스스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금융상품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금융상품에 가입해보고 주식 투자도 해보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은 최근 시민들의 투자 역량을 키우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1130만 파운드(약 172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각 연령대별로 65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한편 지난 1월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의무화해달라는 청원에도 1만4000여명 동의에 그친 한국의 현실로 미루어 금융교육이 정규 편성되고 선진화하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당 청원 글은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올린 글로, 금융사기 방지를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금융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 정규 교육과정에 주 1시간씩 금융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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