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박스 영화 스틸컷.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셀프 자가격리를 며칠 했다.

특강은 줄줄이 순연되거나 취소됐고, 회의도 연기됐으며, 소소한 개인 약속들도 나중으로 미뤘다.

영화관과 대형 서점도 굳이 이런 시기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주저하다 보니 결국 일 터 나가는 일도 주저앉게 되버렸다. 이런 난리가 예전에도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나마 좀 밝은 영화를 보려고 했으나 자꾸 인류 종말을 다룬 영화로만 눈이 가게 된다. 우울하고 무기력할 때 신나는 음악은 오히려 더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참에 아예 바닥으로 깊숙이 침잠하고 나면, 그후에 비로소 수면 위로 나오기가 차라리 쉬울 것 같다. 그런 과정을 걸쳐 선택한 영화가 인류 종말을 다룬 ‘버드박스’였다.

넷플릭스 화제작 ‘버드박스’는 정체불명의 악령(‘그’)이 온 지구를 덮쳐 ‘그’ 를 본 사람들은 100% 자살을 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전염병을 다룬 영화다. 악령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가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여러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앞을 못보게 천으로 눈을 가린 말로리(산드라 블록)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안전한 공간으로 피신시키는 여정에서 정체를 알수 없는 ‘악령’과의 사투가 공포와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역대 넷플릭스 영화 중 최단기간에 시청계정 4500만 명을 기록했다고하니 흥행도 성공한 편이다. '보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영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넷플릭스의 성공방정식도 흥미롭기만 하다. 

한때 영화 속 상황처럼 눈을 가리고 일상을 보내는 ‘버드박스 챌린지’가 시청자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 당시 이로 인해 심각한 사고가 빈번하자 넷플릭스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이 유행 때문에 당신이 병원에서 지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인류의 수명은 대체 언제까지일까 라는 의문이었다.

단 한 번의 치명적 변종 바이러스로 지구의 유산이 잿더미로 변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는 비관적 생각이 자꾸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한다. 작금의 사태를 보면 더욱 그런 마음속 의구심이 깊어진다.  그럼에도 우린 최악의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말로리의 초인적 의지와 포기없는 희망을 마음에 새겨본다.

'모든 바이러스는 무절제함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이렇게 충고한다. “무절제한 삶을 계속 살게 되면 이번 세기 안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아주 불편한 진실을 알고 조금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전 지구적인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하지 않는다면 영화는 현실이 될 수 있다. 마음이 갑갑한 탓인지 요즘들어 따뜻한 봄 햇살과 맑은 공기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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