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김병헌 전문위원]

왼쪽부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 : 미디어SR

성장하는 경영자가 필요하다

나관중(羅貫中)은 중국 원(元)말 명(明)초의 인물로 최고 걸작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저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능력이 완성된 시점에 등장해 이른바 ‘성장 캐릭터’를 찾아보기 쉽지않다. 위촉오(魏蜀吳) 삼국 가운데 오나라의 군권을 책임졌던 일부 주요 장수만 성장형 캐릭터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주유(周瑜), 노숙(魯肅), 여몽(呂蒙), 육손 (陸遜)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여몽이 대표적 성장형 인물로 꼽힌다. 여몽은 삼국지 최고의 장수 가운데 한 명인 관우(關羽)를 사로잡고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촉의 유비(劉備)에게 넘겨주었던 형주(荊州)를 되찾아 오의 위세를 떨친 장수다. 제갈량(諸葛亮) 못지않은 전략가이기도 하며  오하아몽(吳下阿蒙)과 괄목상대(刮目相對)의 주인공이다.

여몽은 어린 시절 가난해 글을 배우지 않아 처음에는 병법에는 무지하나 무술에만 뛰어난 장수였다. 손권(孫權)의 권유로 학문에 힘쓰면서 식견과 지혜까지 겸비한 명장이 된다. 주유의 뒤를 이어 도독이 된 노숙이 여몽을 만나 그의 엄청난 식견에 탄복하여 "옛날 오나라 땅의 아몽(여몽의 아명)이 아니로세" (비복오하아몽/非復吳下阿蒙)", 그러자 여몽은 "선비는 사흘 뒤에 만날 때도 눈을 비비고 마주해야 한다 (사별삼일 즉당괄목상대/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待 )“고 답한다는 내용이다.

오하아몽과 괄목상대는 같은 뜻으로 통한다. 당(唐)의 정치인 조거정(趙居貞)이 지은 신수춘신군묘기(新修春申君廟記)에 처음 등장한 개과천선(改過遷善)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나 용례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개과천선은 "남의 말을 듣고 (잘못을) 고치는 것"이고 괄목상대는 "스스로 잘못을 고치거나 발전하는 것"이라는 자기 반성적 의미가 추가로 담겨있다. 공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고 했다. 중국 속담에도 “방탕한 자식의 개과천선은 황금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잘못을 고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은 없다”도 같은 의미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 문제도 반성의 정도에서 따져들어가면 해답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지난13일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을 맡고 있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 연임에 찬성할 것을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간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의 다양한 갑질로 국민적 공분을 한몸에 받았지만 조 회장은 그룹 회장 취임 후 많이 달라졌다. 물론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이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집단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판단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조 회장은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초토화된 항공업계 위기 극복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이 묶인 여객기를 활용해 국내 수출입 기업 지원을 위해 화물만 실어 운항하자고 제안하는등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한진칼 주총 승자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한진칼 이사회에 대해 "KCGI가 지분을 취득할 당시 이사회는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미미했지만, 지속적인 요구에 지배구조위원회 등을 도입하고 자본구조 개선을 위해 비영업용 자산 매각을 공시하며 개선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한 대목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를 괄목상대 개과천선이라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한진칼 주총 안건과 관련해 지난 13일 이같은 의견을 냈고, 그 보고서를 한진칼 지분 2.9%를 가진 국민연금과 기관에 전달했다. 조원태 회장에 맞서고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등 3자 연합로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3자연합이 내놓는 경영전략은 상대적으로 전문성 보다는 조회장 깎아내리기 위한 문제 제기에 주력하는 공격적 행태로 비춰진다. 전반적으로 평가할때 경영구상이나 전략 등 측면에서 조원태회장측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은 조원태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유발한 당사자이자, KCGI가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당시 후진적 지배구조로 인한 문제점으로 지적한 ‘땅콩 회항’의 당사자"라고 했다. 반도건설에 대해서도 "한진그룹이 보유한 토지 등 유휴자산을 활용한 사업기회가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3자 연합 주체들이 공통의 경영 철학으로 회사를 운영할 지에 관해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3자연합은 경영권 뺏어오기의 목적이 불분명해 보인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 지금이라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조회장의 속내도 알 수 없다. 최근 그의 행보는 적어도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에 대한 의지가 일부 있어 보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양측 가운데 한쪽을 편들 생각은 없다. 예전의 모습을 감안하면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고 본다. 한진그룹은 오너일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속 임직원의 터전이며 주주들의 기업이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지난 14일 조 회장의 연임안에 찬성을 권고한 내용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반대 의견도 취지는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다른 의결권 자문회사인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17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해 3자연합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한진그룹 사진:구혜정 기자

지분이 전부는 아니다

한진칼 주주총회에 대해 국민적 관심은 높아지나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주총 때까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조회장측은 3자연합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금감원에 조사를 요구했다고 지난 17일 밝힌 상태다. 앞서 3자연합도 조회장 측 일부 우호지분의 의결권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한 상태여서 의결권 지분상황이 변할 수 있는 여지도 일부 남아 있다. 18일 현재 3자연합측이 확보한 지분은 의결권이 인정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KCGI 17.29%, 반도건설 8.28%, 조 전 부사장 6.49% 등 총 31.98%.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은 조 회장(6.52%),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5.31%),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6.47%), 델타항공(10.00%)등 약 32.45%로 추정된다.

중국 서진(西晉)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노포(魯褒)는 저서 전신론(錢神論)에서 돈을 신(神)에 비유하며 당시 배금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그는 속담을 인용해 "돈은 귀가 없지만 귀신을 부릴 수 있다(錢無耳, 可使鬼)"고 말한다. 당(唐)나라 때 장고(張固)가 지은 유한고취(幽閒鼓吹)에도 귀신도 맘대로 부릴 수 있는 돈의 위력에 대한 비판적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가통신(錢可通神) 전가통귀(錢可通鬼), 전가사귀(錢可使鬼)등의 성어로 전해진다. 뜬금없어 보이나 전신론을 이 대목에서 언급한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을 단순한 자본의 대결, 즉 지분싸움으로만 생각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혹여 승리의 공식이 지분 확보, 즉 자본의 논리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세상은 변했고 기업 환경도 달라졌다. 이제 국민들이 이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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