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 원칙(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지 600일이 지났습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경영계는 물론 자본시장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소중한 돈이 모여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 기업 경영에 건강한 개입을 한다는 의견과 연금 사회주의가 우려될 정도로 과도하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단순 의결권 행사를 넘어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를 토대로 한 투자 의사 결정과 주주권 행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반적인 투자 방법론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이어지는 책임투자 확대 계획이 갖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공적 연기금이 투자 수익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투자 철학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미디어SR은 이번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어떤 기업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곽관훈 선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박경서 고려대 교수, 이동구 참여연대 변호사,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사진 : 이승균 기자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한국사회에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은 많은 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중 가장 활발히 논의됐던 것 중 하나가 스튜어드십 코드가 연금사회주의라는 프레임과 함께 수익률 증가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우선 연금사회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뉘앙스는 한국사회에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1950년대 한국 전쟁 이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강한 적대감이 축적돼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 연금사회주의는 시장자본주의에 반한다는 이유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논리다. 

예컨대 정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 절대 정부의 영향력 안에서 자유로 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곧 정부의 개입은 자유 시장주의의 근간에 위배되는 것으로 기업 활동을 위축하고 결국 한국 경제에 부정적 흐름을 끼칠 것이라는 알고리즘이다. 

하지만 스튜어드십코드 탄생의 맥락과 목적을 간략하게 조망하면, 스튜어드십코드가 단순히 연금사회주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의 비합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이라는 것이 사전적 정의다.

그렇다면 기관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가 왜 적극적으로 유도돼야 하느냐는 의문에 봉착한다. 바로 이 질문의 해답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이유이며 스튜어드십코드가 단순히 연금사회주의 시행일 뿐이라는 오명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이다. 1930년에서 80년 사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미국 경제에서 시장 자본주의라는 원칙은 완전무결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터져버린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갔고 자유주의 원칙하의 시장 자본주의가 결코 완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서브프라임모기지였지만, 그 사태의 이면에는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회사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고객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들이 단순히 주식을 보유하고 매매하는 활동에 그치지 않고 투자한 회사에 대해 감시하는 등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계기가 됐다. 

이에 주주활동 수행에 앞서 공개적이고 투명한 원칙에 따라 지침을 만들어주게 된 것이 스튜어드십코드다. 즉 시장자본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단순히 시장자본주의와 배치되는 논리로써 언급되는 연금사회주의 주장이 비합리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히 주주로서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을 요구한다든가 주주총회에서 안건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던지는 것을 과도한 개입 즉 연금사회주의라고 치부할 수 없다.

심지어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기업경영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결국 기금의 수익률 향상으로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이미 2010년부터 금융 선진국인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 스위스, 일본 등 20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다. 

고려대 김우찬 교수는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한 오해가 만연하다는 데 동의했다. 김 교수는 미디어SR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반대하는 측에서 나오는 연금사회주의 논리는 어찌 됐든 결국 연기금 등이 기업 경영에 심각한 침해를 할 것이라는 전제를 까는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기업들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연기금 등이 배당이나 근로자 임금 인상 등을 과하게 요구하면서 기업활동을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가설은 엉터리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국의 연기금들은 펀드매니저들이 주주로서 경영에 개입하지 근로자로써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투자자로서 경영 활동에 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기업의 입장에서 비용처리 되는 임금 등을 높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정부나 정치인이 기업경영에 개입하기 위해서 지인을 사외이사로 임명하거나, 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민연금을 악용하리라는 것도 연금사회주의를 언급하면서 기업이 하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연기금이 정부 등의 압력으로 사적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라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 당시 보건복지부 국장과 국민연금 CIO가 법적 처벌을 받았던 사실은 외부개입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수익률 관련해서도 아직 한국에서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 힘들다는 견해다.

김 교수는 미디어SR에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면 단순히 주가가 올라간다는 논리는 명확하게 증명하기 힘들지만, 기관들이 주주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면 기관이 개입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주가가 올라간 사례는 많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주주활동을 오랫동안 한 해외기금 중 미국의 대표적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의 사례만 봐도 주주로서 기관투자자가 경영감시를 열심히 하면 기업의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는 많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끝으로 제도의 양면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슨 제도이든 장단점이 있지만, 스튜어드십코드는 장점이 훨씬 많은 제도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한 오해가 풀리길 바란다"면서 "이미 수십 년 동안 기관투자자들이 기업경영에 관여해서 수익률을 높였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