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수탁자 책임 원칙(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지 600일이 지났습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경영계는 물론 자본시장에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소중한 돈이 모여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 기업 경영에 건강한 개입을 한다는 의견과 연금 사회주의가 우려될 정도로 과도하다는 의견이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동시에 단순 의결권 행사를 넘어 기업의 비재무적 정보를 토대로 한 투자 의사 결정과 주주권 행사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반적인 투자 방법론으로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이어지는 책임투자 확대 계획이 갖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공적 연기금이 투자 수익을 높이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투자 철학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미디어SR은 이번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어떤 기업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았습니다. [편집자 주]

국민연금공단 사옥. 사진. 국민연금

[미디어SR 권민수 기자] 말뿐인 사회책임투자라는 비판을 받아온 국민연금이 2020년에는 적극적으로 책임투자를 이행할지 주목된다.

사회책임투자(SRI, 이하 책임투자)는 환경, 사회, 거버넌스(ESG) 등 비재무적 요소를 검토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투자한 후에도 주주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면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투자 전략을 말한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러한 투자 방식을 고려하는 자산은 30조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보편화된 투자 접근법이 됐다.

그간 국민연금에 책임투자 활성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나, 국민연금은 소극적으로 이행해와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규모는 2018년말 기준 26.8조원(국내주식 중 24.6%)로 기금 전체 가운데 4.2%에 불과했다. 세계적인 연기금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네덜란드의 공무원연금 APG는 2018년 말, 총 기금 4590억유로(한화 621조원) 중 책임투자를 엄격히 적용하는 자산은 692억유로(93조원)로, 전체 자산의 15%에 달한다. 2014년 290억유로(39조원)에서 두 배 넘게 규모를 키웠다. 

책임투자전략 다양하지만, 제대로 활용 못 해

국민연금은 종합적인 책임투자 전략 없이 일부 투자 전략만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문제도 있다. 

책임투자에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포지티브 스크리닝, ESG 통합투자, 지속가능 테마 투자, 주주활동 등 다양한 전략이 있다. 

국민연금은 이중에서 술, 담배, 도박 기업을 투자대상에서 제외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우수한 ESG 성과를 보이는 기업을 중심으로 BM을 구성하는 `포지티브 스크리닝` 전략, 기업가치 훼손 시 비공개 대화 등만 소극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에 별다른 고민 없이 쉬운 것만 골라 적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미국, 네덜란드 등 글로벌 연기금은 다양한 책임투자 전략을 적극 활용 중이다. 미국 내 최대 규모의 공적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CalPERS)이 대표적인 예다. ▲담배, 군수무기제조업 투자 배제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반대율 42%) ▲경영진과의 활발한 대화 ▲능력, 성별, 나이 등과 관계 없는 이사회 다양성 구성 지향 ▲투자대상 기업 성과를 개선하기 위한 집중 관리 기업 선정 등의 책임투자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난2017년 `22년까지 5개년 지속가능한 투자전략 계획`을 세웠다. 이중 사회책임투자를 강조했는데 투자 결정 과정에서 ESG 요인을 통합해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왜 책임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을까? 책임투자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민연금은 단기적인 수익률 성과를 내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시간이 필요한 책임투자를 선뜻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책임투자에 관심이 적었던 지난 정권 기조에 따라 책임투자를 활성화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전문가는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은 독립돼 있지만 정책은 정부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전 정부는 책임투자에 관심이 없었고, 주주행동은 오히려 기업을 압박하는 도구라 생각했을 것"이라 설명했다. 이어 "그 시간 동안 해외 연기금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양한 책임 투자기법을 연마했다. 국민연금은 시기를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0년, 국민연금은 달라질까

이 같은 비판에 국민연금은 2019년 11월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국내 주식 일부에만 적용하던 책임투자를 기금 전체 자산군(국내외 주식, 채권)으로 확대하는게 주요 내용이다. 

또, 기존 투자방식에 ESG 요소를 융합시키는 `ESG 통합전략`을 수립해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적용한다. 책임투자 원칙 등 기금운용 관련 지침을 제‧개정하고, 기업 ESG 정보 공시제도를 개선한다. 기금본부 내 책임투자 인력을 늘리고, 기금본부 ESG평가체계를 개선하는 등 책임투자 활성화할 기반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700조를 굴리는 국민연금이 책임투자를 개선, 확대하겠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특히 기금운용본부의 정기 ESG 평가에서 2등급 이상 하락해 C등급 이하에 해당할 경우 중점관리사안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라며 "국민연금이 환경, 사회 부문에 부정적 이슈가 있는 기업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사무국장은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책임투자 위탁운용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간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위탁운용사로 선정되기 위해 스스로 책임투자 공모펀드를 출시해 운용해볼 가능성이 높다"면서 "위탁운용을 늘리면 전체적인 책임투자 규모가 늘고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임투자 업계는 이번 정권이 지난 후 또다시 책임투자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이에 정권과 관계없이 책임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투자 철학을 세우고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네덜란드 연기금은 홈페이지에 투자 철학을 공개하고 있다"며 "국민연금 또한 정부에 휘둘리지 않는, 책임투자의 근간이 되는 철학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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