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항공대교수 "정부와 정치인들은 9.11테러 당시 미국을 배워야 한다"
“1조원 이상 적립돼 있는 정부의 관광진흥개발기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항공업계 "정부가 공항시설사용료의 납부를 유예가 아니라 감면해줘야 한다"

사진. 픽사베이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일본 정부가 9일부터 한국발 항공 여객편이 도착할 수 있는 공항을 도쿄 나리타공항과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제한했다. 사실상 입국금지 수준의 강력한 조치다. 중국‧일본 등 근거리 국가 위주로 운항하는 저비용 항공사(LCC‧Low Cost Carrier)뿐 아니라 대형 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까지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주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일본 후쿠오카행 항공권(편도)을 단돈 8,000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워낙 좌석 수요가 없자 내놓은 그야말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사실상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단행하면서 이같은 고육지책마저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LCC인 이스타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은 이번 조치로 국제선 노선의 운항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에어서울은 지난 2일부터 모든 일본 노선을 운항하지 않기로 했으며 이스타항공도 4개 일본 노선 중 2개 노선을 선제적으로 운항 중단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나마 대한항공이 인천~나리타 노선을, 제주항공이 인천~나리타, 인천~오사카 노선을 운항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 LCC 관계자는 일본의 입국제한 조치 전 미디어SR에 “그래도 일본행 항공 여객은 아주 적게나마 꾸준하다”고 귀띔했다. LCC는 중국, 일본, 동남아 등 5시간 내의 국제선 근거리 노선에 수익의 대부분을 의지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조치로 인해 이같은 여객 수요마저도 잃게 됐다.

나머지 LCC도 숨통이 조여든 것은 마찬가지다. 진에어의 경우 괌과 세부 등 4개 국제선 노선만 운항하고 있다. 티웨이도 괌과 사이판 노선만 지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제주항공은 동남아 노선 12개를 유지하고 있지만 기존 24개 노선에 비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대한항공은 5일부터 인천발 전체 항공편에서 승객 발열 체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사진. 대한항공

#허희영 항공대 교수, “정치권, 항공업계 신속 지원해야 파장 최소화”

일본의 입국제한 조치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미국 내 여행 경보 조치가 상향됐고, 유럽의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도 만만찮다. 코로나19가 대형 항공사(FSC‧Full Service Carrier)마저 쓰러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미 항공업계는 유럽과 미국 등 장거리 노선도 운항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이달부터 미국 13개 노선 중 4개 노선은 아예 운항을 중단하고, 9개 노선은 운항횟수를 크게 줄였다. 유럽 노선도 총 12개 노선 중 8개 노선의 운항을 중단했다. 아시아나항공도 유럽 4개 노선의 운항을 중단한 상황이다.

항공경영 전문가로 손꼽히는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디어SR에 “항공업계가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현재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심각하다”면서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덮쳐 타격이 더욱 크다”고 진단했다.

FSC는 장거리 노선이 수익성과 직결된다. 미주, 유럽 등 중‧장거리 노선까지 중단‧감축하게 되면 항공사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하게 된다. 현재 코로나19의 확산세는 예측도 어려워 불확실성은 가중되고 있다. 허 교수는 당장 상반기 안에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다고 해도 항공 여객 수요 등이 평상시로 회복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세가 두드러질 경우, 항공업계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게 될 공산이 짙다. 감염을 우려한 전체 여행 수요가 감소하고 타 국가에서의 출‧입국 제한 조치가 지속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허희영 교수는 미디어SR에 “정치권이 신속히 나서 FSC, LCC 모두 지원을 해줘야 할 상황”이라고 주문하며, 9.11테러 당시 미국 정치권의 대응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9.11테러 이후 당시 미국 상‧하원 의원이 1주일만에 항공업계에 150억달러(당시 기준 한화 약 19조5000억원) 규모를 지원하는 특별예산안을 통과시켰다”고 상기시켰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의 위기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의 항공 여객이 급감하고 굵직한 항공사들이 연이어 도산할 위기에 처했던 상황에 견줄 만하다는 분석이다.

허 교수는 구체적인 지원금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관광진흥개발기금이 현재까지 1조 이상 적립돼 있다”면서 “항공산업이 곧 관광 및 여행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번 기회에 기금을 항공산업에도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코로나19가 2015년 메르스 수준으로 지속될 경우,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165만명 감소하고 관광수입도 4조6000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외국인의 국내여행과 인트라바운드(내국인의 국내여행) 확대로 국내관광·지역경제 활성화를 노리던 정부의 목표도 차질을 빚는 상황이다.

앞서 국토교통부는 LCC 항공사 사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해 지원대책을 추가로 논의했으나 항공업계는 여전히 지원이 부족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항공사들은 정부가 공항시설사용료의 납부를 유예하는 수준이 아니라 감면해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항공사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2018년 영업이익이 1조 3000억원에 육박한다면서 이번 위기 사태에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당국의 열린 자세와 정책적 결단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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