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코로나19 관련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있다. 제공 : 청와대

자신보다 우리를 생각하자

중국 명(明)나라 말기 학자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글귀가 있다. ‘꾀꼬리 울음을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을 들으면 싫어한다(聽鶯啼則喜 聞蛙鳴則厭/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꽃을 보면 가꾸려 하고, 풀을 보면 뽑으려 한다(見花則思培之 遇草則欲去之/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듣기좋다 시끄럽다 아름답다 보기싫다는 건 사람들이 성향과 기호에 따른 것이지, 천지 자연의 본성으로 보면 좋거나 싫거나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기준이 아니라는 애기다.

홍자성보다 한세대 뒤진 조선 중기 대학자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남긴 어시재기(於是齋記)’에는 더욱 명쾌하게 정의한다. 담양의 관리 임후(任侯)가 어시재(於是齋)란 집을 짓고 기문과 편액을 청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옳은 것은 적고, 그른 것은 많다(於是者寡 於非者蓋衆/ 어시자과 어비자개중)’란 글을 보낸다. 허목은 좋은글이라며 명을 지어 보낸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명철한 사람이면 가려낼 수 있다(有是非 明者擇之/ 유시비 명자택지). 옳은 것은 가리기가 어려운 게 아니고 확고하게 지키기가 어려운 법이다(處是非難 確於是爲難/ 처시비난 확어시위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나 소속된 무리들이 하는 일은 옳고 생각도 올바르다고 판단하며 살아간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 옳은 일은 적고 그른 일이 훨씬 많다. 그래서 세상은 조용한 날이 없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맞는 것처럼 보여도 자기의 관점에서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수나 전체가 볼 때는 옳은 것보다 그른 것일 수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지나치면 탈법이고 불법이 될 수도 있다. 관점의 차이가 빚어내는 극단적 간극의 결과다. 진영논리가 대표적이다. 세상은 혼자나 자신과 같은 부류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정부가 정책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급한 것은 추적과 역학조사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역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신천지)과 신도들의 행동에 대한 비난과 논란도 다름아니다. 지역 감염의 70%이상을 차지해 빠른 검진 및 추적 그리고 역학조사가 필요한 대규모 집단이다. 지역 확산 조기차단의 핵심이기도 하다. 지방정부는 물론 경찰 등 사법당국까지 나서고 있지만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은 더한다. 신천지 신도들은 정체를 숨긴 채 은밀한 방식으로 포교와 전도활동을 하고 있어, 추적 자체가 어려울거라는 우려마저 커진다. 지난 25일 대구시와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신천지 대구교회 신자 9336명에 대한 전수조사는 마무리 단계다. 지난 9일과 16일 문제의 대구 예배에 참석한 대구ㆍ경북 이외 지역 신자 117명에 대한 신원도 파악해, 해당 지방정부 및 지방경찰청이 추적에 나서고 있다. 신천지 대변인이 제공한 신천지 교회 및 부속시설 1100여곳의 주소록 또한 방역과 예방을 위한 주요 자료다.

문제는 실제 추적 및 역학조사 과정에서 불거진다. 유난히 신천지관련 현장에서만 난항이 거듭된다.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는 신천지 부속기관으로 추정되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주택의 문을 두드렸지만 “교인 아닌데요”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주소지는 신천지 측이 제공한 교회 관련시설이었지만 거주자가 부인하면 방법이 없다. 신천지 측이 제공한 주소지가 엉터리인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선 신천지 자료(공개한 주소록)도 100% 믿을 수 없고 신천지가 아니다고 부인하는 곳도 있어 대응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제공된 주소지도 누락된 곳이 많아 완전 추적은 불가능하다는 애기도 나온다. 종말론사무소가 공개한 지난 1월 신천지 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신천지 교회와 선교센터등 관계 시설은 전국에 1529곳이다. 이외에도 위장 카페나 위장 문화센터 등 포교를 위해 설립한 부속기관들이 적지 않다. 신천지 신도들은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포교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포교해야 14만 4000명에 들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교리를 추종하기 때문이다. 신천지가 지역 확산의 주범으로 몰려 잠시 주춤할 순 있지만 ‘포교 없인 구원도 없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포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는 게 종교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24일 오전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소재 불명인 신천지 신자들의 소재 파악을 적극 주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전날 강제수단을 동원한 추적을 경찰에 요청했지만, 신천지 측이 명단 제출을 거부하는 한 강제할 수단이 없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반 강제적으로 역학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범정부대책회의에서 민갑룡청장에게 신천지 관련 별도 지시를 내렸다. 정부 관계자는 "신천지가 허위 정보를 주거나 일부라도 은폐한 정황이 있을 때를 대비하란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여차하면 강제력 동원까지 검토하란 의미로 들린다.

코로나19 확산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현애륵마(懸崕勒馬)가 주는 교훈

지난 2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신천지로부터 전체 신도 명단 및 연락처를 건네받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신천지의 대응에 변화 조짐은 있어보이나 국민 상당수는 아직 믿지 못한다. 중대본은 신도 명단 확보시 전부에 대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중대본은 지난 24일 국무총리비서실 민정실장을 중심으로 신천지 측과 협의 끝에 전체 신도명단 제공, 보건당국의 검사 적극 협조, 교육생의 검진 유도 등의 협조를 약속 받았다고 밝혔다. 신천지는 우선 올해 1~2월 중 대구 신천지를 방문한 적이 있는 다른 지역 신도들과 대구 신도 중 같은 기간에 다른 지역을 방문한 고위험군 신도 명단부터 제공하기로 했다고 한다. 신천지 전체 신도는 24만여명이다. 일단 믿어보기로 하자.

중국 남북조 시대, 진백지(陳伯之)의 미도지반(迷途知返) 고사가 떠오른다. 진백지는 제(齊)나라 강주자사(强州刺史)였다. 남제(南齊)가 멸망하자 양(梁)나라에 투항한뒤 양나라에 대항해 군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북조(北朝)로 도망가 북위(北魏)의 평남장군(平南將軍)이 된후 회남(淮南)의 병마(兵馬)를 이끌고 다시 양나라와 맞붙는다. 양나라 무제(武帝)는 동생 임천왕(臨川王) 소굉(蕭宏)에게 진백기 정벌을 지시한다, 소굉은 비서에게 그의 항복을 권유하는 글을 쓰게 했다. "길을 잃으면 뒤를 돌아볼 줄 아는 것은 옛 성현들의 생각이고, 길을 잘못 들어도 멀리 가기 전에 다시 돌아올 줄 아는 것은 경전에서 높이 여기는 점이다(迷途知返,往哲是與/미도지반,왕철시여) 不遠而復, 先典攸高/불원이복/ 선전유고)"

진백기는 이 글에 감동, 군대를 곧장 철수시킨다. 낯선 곳을 가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처음으로 얼른 돌아가는 게 최선이다. 길을 왜 잘못 들었는지 따져볼 수가 있어 시행착오도 줄일 수가 있다. 낭떠러지에 이르자 멈추기 위해 말고삐를 잡아챈다는 현애륵마((懸崕勒馬)와 같은 의미다. 신천지는 의도적이 아니었다고 해도 지역 감염의 낭떠러지로 한국을 몰아간 데 절반 이상 책임이 있다.기독교계에서 이단으로 몰려 왕따여서 조리돌림 당해 잘못이 없고 억울한 부분도 있을지 모른다. 그건 나중 문제다. 신도들은 피해자이며 국민이다. 그들과 가족 그리고 그 이웃들을 위해 추적과 역학조사가 즉시 필요하다. 분초가 아깝다.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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