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 사진. NEW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라미란이 드디어 스크린 첫 단독 주연에 나섰다. 코믹한 이미지로 사랑받고 있지만 정작 웃기는 게 늘 어렵다고 고백한 그는, 그럼에도 이번 영화 ‘정직한 후보’를 통해 자신의 강점을 십분 발휘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신의 전문 영역을 개척하며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라미란의 독보적인 행보는 눈여겨봄직하다.

Q. 유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영화였어요.
라미란:
보신 분들이 그러셨다면 다행이에요. 저는 정말 어려웠거든요. 매 장면마다 어떻게 하면 더 웃길지를 생각하는 게 정말 힘든 작업이더라고요.

Q. 시사 평이 정말 좋아요.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은 어느 정도인가요?
라미란:
만족감이란 건 늘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작업을 할 때마다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요. 처음 대본을 읽고 연기할 때가 제일 좋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코미디여서 더 힘들었어요. 우는 게 쉽지 웃기는 건 더 힘들거든요. 다만 이번 작품은 분량이 많아서 계속 나온다는 점에선 만족됐죠(웃음). ‘라미란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나’라는 평들을 보면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배우 라미란. 사진. NEW

Q. 대본을 봤을 때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라미란: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거짓말을 못 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작은 통쾌함이 느껴졌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정말 재밌더라고요. 원작이 있다는 걸 몰랐을 정도로 한국 정서를 잘 녹인 것 같아요. 원작의 남자 주인공 성별을 여자로 바꾸면서 새로 생긴 에피소드도 있고,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재미있게 담긴 내용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이 작품을 찍는다고 생각하니 그건 조금 아찔하더라고요. 당황스러운 게 계속 나오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려우니 반대로 한 번 해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요.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한 번 해보자는 심정이었죠. 시켜줄 때 해야지 하고 싶어도 나중엔 못할 수 있는 거잖아요.

Q. 감독이 많이 의지했다고 들었어요. ‘라미란이 아니었으면 현장 지휘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던데.
라미란:
맞아요(웃음). 친구처럼 편했어요. 감독님과 서로 가감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너지가 더 생긴 것 같아요. 감독님 목표는 제가 예쁘게 나오는 거였대요. 하하. 그리고 매 장면마다 하나의 큰 메인 신처럼 찍었는데, 관객 분들이 언제 어디서 웃을지 모르니까 일단 열심히 웃음을 퍼드리려 했어요. 코미디 장르라 현장이 재미있었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신데, 사실 매일 매일이 치열했어요. 소품 팀, 카메라 팀, 조명 팀과 감독님, 배우 모두가 원하는 대로 일단 다 찍어보려 했죠. 초반 신에서의 코믹한 톤을 잡는 것도 오랜 상의를 거쳤어요.

Q. 극 중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장면이 뮤지컬을 연상케 할 만큼 인상적이었어요.
라미란:
다들 베테랑이고, 김무열 씨는 뮤지컬을 했던 분이라 알아서들 척척 호흡이 맞았어요.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합이 맞더라고요. 행동에서 나오는 애드리브도 많았어요.

배우 라미란. 사진. NEW

Q. 고부관계를 유쾌하게 풀어낸 대목도 웃음 포인트 중 하나였어요.
라미란:
그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걱정은 뒤에서 조용히 하는 건데.’ 꼭 고부간이 아니어도 대놓고 걱정하는 분들 많잖아요. 여러 관계에 적용되는 말 같아서 정말 웃기더라고요. 김용림 선생님도 그 장면을 정말 재미있어 하셨어요. 

Q. 부부로 합을 맞춘 윤경호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라미란:
이렇게까지 케미스트리가 좋을 줄 몰랐어요. 처음엔 반신반의했죠. 보좌관은 김무열인데 남편이 윤경호인 게 웃기잖아요(웃음). 그런데 경호 씨가 재미를 정말 많이 살렸어요. 생각보다 정말 섬세하고 걱정도 많더라고요. 

Q. 주된 분량을 함께 한 김무열과의 합도 정말 좋았어요.
라미란:
‘악인전’ 같은 걸 봐서 코믹한 이미지가 잘 상상되지 않았는데 정말 의외였어요. 자기가 웃기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로맨틱 코미디를 하라고 권유했어요. 그리고 이건 무대를 했던 사람들의 특징 같긴 한데, 저희 팀은 따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합이 잘 맞았어요. 다들 유연하게 반응하더라고요. 무열 씨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툭 던지면 탁 나오는 거예요. 애드리브를 던져도 다 받아서 살려주더라고요. 비서관으로 나온 안세호 배우도 애드리브를 다 살려서 영화에서 웃음이 계속 이어진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저 역시도 부담을 덜 수 있었죠. 혼자 하는 작품은 없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배우 라미란. 사진. NEW

Q. 주연으로서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걸캅스’에서 투톱 주연이었다면 이번엔 원톱 주연이니까.
라미란:
부담이 없을 땐 더 편하게 찍고 까불 수 있는데, 확실히 이번엔 생각이 많아진 건 같아요. 부담되긴 하지만 최대한 부담을 안 느끼려고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주상숙에게도 이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가 찌들고, 거짓말을 못 하게 되자 보좌관에게 그런 말을 하죠. “이럴 땐 네가 다 해결해주잖아. 그때까지 가만히 있을래.” 가끔은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그러면 저는 더 불편해지겠죠?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감당하고 책임지되, 그걸 감당할 준비만 돼 있으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것 같아요.

Q. 국내 여배우 중 조연에서 출발해 차근차근 주연배우로 올라간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해요. 처음부터 스타 배우로 탄생된 경우가 많으니까.
라미란:
그런 의미에서 제가 독보적이라 할 수 있죠(일동 박장대소). 그런데 정말, 저처럼 늦은 나이에 안 좋은 조건에서 시작해 주인공을 맡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들 라미란, 라미란 하는 거 아닐까요(웃음). 이젠 그냥 다 받아들이고 웃어넘기고 있어요. 하하.

Q, 그래서 더욱 책임감이 커질 것 같아요.
라미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언제까지 별 탈 없이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요. 계속 그 다음 장이 만들어질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숨어있는 많은 배우들이 활약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 라미란. 사진. NEW

Q. 그런 면에서는 여성 주연작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는 게 반갑겠네요. 지난해 영화 ‘걸캅스’는 물론 최근 드라마 ‘블랙독’ 역시 여성 투톱 주연물이었어요.
라미란:
드라마 같은 경우는 여성배우의 역할과 입지가 있는데 영화는 너무 달라요. 거의 안 나오는 경우도 있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넣는 일도 있죠. 만약 그런 영화라면 그렇게 찍으면 돼요. 다만 다양한 얘기가 나오지 않으니 문제인 거죠. 주체적이거나 자기 이야기를 가진 여성 캐릭터가 없는 거니까요. ‘블랙독’의 경우도 사실 주인공이 남자였어요. 박성순 부장도, 고하늘도 다 남자였지만 박성순을 여자로 바꾸고 나서 고하늘도 여자로 바꿨대요. 굉장히 잘한 선택이라 생각해요. 작가님도 여자이자 실제로 교사였대요. 그래서 ‘블랙독’에도 그런 면들이 더 잘 살아난 것 같아요.

Q. ‘정직한 후보’도 원작 속 남자 주인공을 여자로 바꾼 거잖아요. 많은 작가들이 라미란을 아예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드는 느낌이에요.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라미란:
워낙 독보적이니까?(일동 박장대소) 정말 감사할 일이죠. ‘걸캅스’ 때에는 기존에 제가 가진 외형적인 부분이나 연기한 이미지들과 조금 빗겨나는 인물로 써주신 게 정말 감사했어요. 기존의 것을 답습한 똑같은 인물이 아니었거든요. 이 나이에 액션이 웬 말인가 싶지만,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써주신 거잖아요. 감사할 따름이에요. 제가 무슨 복을 타고 나서 이렇게 사랑받나 싶었어요. ‘라미란 아니면 안 돼’라는 말도 감사하죠. 부담스럽기도 하고(웃음).

Q. 대중에 라미란이라는 배우는 유쾌하고 웃긴 이미지로 통해요. 이번엔 아예 코미디 영화여서 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하고.
라미란:
그게 부담이긴 해요. 더 웃길 거라고 생각해주시니까요. ‘시원하게 빵빵 웃겨드리겠다’는 말도 쉽게 안 나오는 거죠. 과연 그 정도로 재미있는 건지 늘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라미란이라면 웃길 거야’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웃긴 사람이 아니라고 열심히 말하고 있어요. 무대 인사를 할 때도 기대 말고 편히 보라고 말해요. 큰 기대를 하지 말라고 선수를 치는 거죠. 괜히 실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배우 라미란. 사진. NEW

Q. 과거와 변했던 주상숙처럼, 라미란이라는 배우 역시 과거와 변한 자신과 마주한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라미란:
많았죠. 당연한 거라 생각해요. 처한 환경이 바뀌고 날 대하는 주변의 시선과 태도가 바뀌니까요.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다 해도 변해보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제가 46살인데, 그동안 쌓인 노폐물이 있을 거예요. 언제나 9살처럼 순수할 순 없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할 수 있기도 해요. 더 막 살았다면 조금 더 폭 넓게 연기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저는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들을 잘 간직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중에 분명 자산이 될 거거든요.

Q. 지금의 배우 라미란은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좋나요.
라미란:
저를 늘 궁금해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는 저 사람이 뭘 할까 궁금해지는, 그런 거요. 뚜껑을 열어봐도 배신감이 들지 않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Q. 차기작은 결정됐나요.
라미란:
읽고 있는 책은 있어요. 장르를 따지기 보다는 제가 해야 할 인물에 집중하는 편이어서 그런 걸 위주로 보고 있죠. 캐릭터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게 얼마나 공감을 얻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악역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나름 정의로운 역할과 지질한 진상 캐릭터는 해봤어도 악인은 안 해봤거든요.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관객 수가 많이 줄었어요. 이런 분위기에 대한 걱정도 될 법한데.
라미란:
그냥, 잘될 거라 생각해요. 관객 수에 대한 걱정보다는 아픈 분들이 더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공포가 없어지는 게 급선무 같아요. 건강하게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이죠.

Q. ‘정직한 후보’의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이에요. 관객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라미란:
코미디인 만큼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보시기 전에 얼굴 스트레칭을 꼭 하시고, 크게 웃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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