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관계장관회의. 사진. 구혜정 기자

신종 코로나, 경제위기 가중

도탄(塗炭)은 살림형편을 말할 때 가끔 등장한다. ‘민생(民生)이 도탄에 빠졌다’고 하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어려운 삶의 상황을 일컫는다. 한자어인 도탄의 뜻은 진흙과 재. 진흙은 가기 고단한 길을 가리킨다. 진흙의 한자어인 도(塗)의 초기 형태는 사람이 물기 많은 땅을 걷고 있는 모습이다. 지나가기 어려운 길, 또는 그런 길을 가는 행위다. 재를 의미하는 탄(炭)은 석탄 등 땔 연료를 말하지만 탄이 타면서 남긴 재, 또는 불이 이글거리는 구덩이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사람들의 형편이 매우 어려운 상황을 물과 불로 설명할 때가 많았다. 맹자(孟子)에서는 백성의 삶이 힘든 상황을 수심화열(水深火熱)이라고 표현했다. 백성들의 곤궁함은 가렴주구나(苛斂誅求)나 전란(戰亂)또는 재난(災難)에 주로 기인한다. 폭정으로 인한 백성의 재난을 민추도탄(民墜塗炭)이라고 표현했다.

민주사회가 되면서 가렴주구나 전란과 같은 인재(人災)는 거의 없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천재(天災)도 대부분 사라진 듯 하다. 유독 전염병만 새롭게 변이되면서 잊을만 하면 시련을 가져다 준다.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의 세계적인 확산도 수습이 쉽지 않은 모양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염병 외적인 요인으로 국민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 하고 있다. 실물 경제 특히 서민 경제에는 결정적 타격을 주고 있다. 경기가 하강 추세에서 반등 기미를 보이는 무렵에 들이닥쳤다. 서민의 삶은 빨간 풀이 켜진지 꽤 됐다. 서민 실물경제가 도탄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9일 발표한 ‘2월 경제동향’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관광·숙박·음식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예측이다. KDI는 “이달 이후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내국인 외부 활동 축소로 소비 활동 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수 둔화는 뚜렷하다. 지난달 24~31일 입국한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2300명 줄었다. 하루 평균 1544명(11%)이 감소했다.여행업과 호텔업은 물론 백화점과 면세점을 비롯한 유통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로 세계 경제활동 위축 정도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보다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 다른 나라보다 타격이 더 크다. 해외경제연구기관과 주요투자은행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줄이 내렸다. 특히 영국의 캐피탈 이코노믹스는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무려 1.5%로 대폭 내렸다. 한국은행(2.3%)과 정부(2.4%) 전망치보다 한참 낮다.

11일 오전 11시 경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한산한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정혜원 기자

특히 서민경제는 도탄 수준

최근 서울시내 백화점·아웃렛 영화관 등의 손님은 70~90%가량 줄었다. 감염을 우려한 고객들이 외출을 꺼리고 있는 탓이다. 한산하다 못해 휴업 수준이다. 잠실롯데 월드몰, 코엑스몰 등 대형 쇼핑몰은 발길이 끊겼고 식당들도 모조리 울상이다. 면세점과 명품매장에도 사람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10일 여신금융협회가 국내 7개 카드사에서 취합한 국내카드 이용실적(신용카드 기준)을 보면 확진자 수가 본격 늘기 시작한 이달 첫 주말(2월1~2일) 소비자들은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총 1조 3519억원을 썼다. 첫 확진자 발생 직전 주말(1월18~19일)에는 1조 6225억원을 사용, 2주만에 소비가 17%나 줄어든 사실만으로 가늠된다. 정부는 전국 음식점 600곳을 대상으로 영업피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만간 결과를 내놓는다. 사태 전 대비 30~50% 가량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당시 전월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는 외식업체가 84.3%였고, 감소율은 34.3%였다.

도탄이라는 표현은 서경(書經)에 처음 실렸다. 하(夏)나라 걸왕(桀王)의 학정(虐政)에 신음하는 백성을 湯王(탕왕)이 혁명으로 상(商)나라를 건국하며 구한 내용 중에 등장한다. 오늘날도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진 못한다. 빈부의 격차는 벌어지기만 한다. 이번 사태도 전염병 확산 문제보다 어쩌면 서민들에게는 경제적인 고단함이 더 힘들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잘 사는 사람들에 비해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서민들에게는 충분히 ’현대판 도탄‘의 고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 양상이 통제 가능 범위에 있다고 보고 있다. 입국 통제로 중국내 감염자의 국내 유입 사례도 점차 크게 줄고 있다. 추가 확진 사례들이 대부분 당국의 관리 대상내에서 발생한다. 김강립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은 지난 10일 "지금까지의 모든 확진자는 정부 방역망 안에서 발생했거나 관리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날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지난주 금요일 회의에서와는 달리 경제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감을 더욱 드러냈다.

철저한 준비로 신속한 실천을

춘추시대(春秋時期) 齊(제)나라 환공(桓公)이 사냥을 나갔다가 ‘곽씨 일가의 폐허가 된 성을 보게 된다. 촌로에게 곽씨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더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 사람이라서 망했다‘고 말한다. 환공이 의아해하자 ’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악을 미워하기는 했지만 제거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환공이 재상 관중(管仲)에 전한 후일담은 압권이다. 관중이 촌로가 누구였냐 묻자 환공은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관중은 ’임금 역시 그 곽씨 같은 인물(君亦一郭氏也 / 군역일곽씨야)‘이라고 말한다. 그 임금에 그 신하, 군역곽씨(君亦郭氏)라는 애기다.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지만 실천하지 못한다면 좋은 명분까지 잃게 된다. 지도자가 옳고 그름을 명확히 하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정은 기대하기 힘들다. 전한(前漢)의 학자 유향(劉向)의 신서(新序) 잡사(雜事)편에 실려 전해진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애기다. 상(商)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재상 강태공(姜太公)은 “먼저 꾀하고 뒤에 일을 벌이는 자는 번창할 것이며, 그 반대인 자는 망할 것”이라고 답한다. ’먼저 꾀하고 나중에 일을 벌인다‘ 선모후사(先謀後事)의 계책을 강조한 것이다, 좋은 계획은 준비를 갖춘 충분한 기초위에 서 있어야 함을 얘기한다. 청(靑)나라 강희제(康熙帝)시절 진몽뢰(陳夢雷)의 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図書集成) 병략부(兵略部)에 기록되어있는 얘기로 지금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다. 전염병에 대한 미숙한 대처는 정권마저 뒤엎는다고 한다. 시진핑(習近平)국가주석이 곤혹해 하는 이유도 다름아니다. 민심 이반 때문이다. 미숙한 대처 결과의 다른 한 축이 서민경제 위기다. 우리도 좋지 않은 경제상황에 업친데 덥쳤다. 이번 사태가 서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도탄으로 몰아갈 기세다. 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의 선거 슬로건이 불현듯 떠오른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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