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남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김남길이 영화 ‘클로젯’을 통해 괴짜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경훈으로의 변신을 마쳤다. 매 작품마다 캐릭터 소화력이 좋다고 꼽히는 그답게, 이번 작품 역시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인물로 완성됐다. 연기자로서 수많은 고뇌의 순간을 마주했던 김남길은, 이제 초연한 자세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게 됐다. 다양한 소재를 갈구하는 그에게 ‘클로젯’은 남다른 도전이 됐다. 김남길을 만나 작품과 연기에 대한 솔직한 소회를 들어봤다.

Q. 영화가 생각보다도 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김남길:
저는 원래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편인데, 컬트 장르의 마니아가 보기에는 그렇게 무섭진 않겠다 싶었어요. 중간에 놀랄 만한 장면이 있긴 하지만 억지로 놀라게 할 장치는 배제하자는 이야기를 감독님과 많이 나눴어요. 찝찝함으로 영화를 보는 느낌을 최대한 없애고 싶었거든요.

Q. 무서운 걸 잘 못 보는데도 공포영화에 출연한 게 놀라워요. 연기하면서 힘들진 않았나요.
김남길:
사실 그런 것 때문에도 조금 고민을 하긴 했는데, 예전에 공포영화를 하신 분들이 찍을 땐 재밌었다고 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그런데 진짜로 해보니까 다 알고 찍는 것이어서 무서울 게 없었어요. 그리고 하정우 형과도 오버하지 말고 과하게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표정은 지양하자고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런데다가 제가 나눈 인물 특성 상 제가 놀랄 만한 장면이 없었어요. 

배우 김남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기존 공포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역할이에요. 귀신을 잡아야 하는데 어딘가 허술하고 신뢰가 가지 않아 보이는 인물이었죠.
김남길:
기획 당시부터 경훈이라는 인물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쉼표가 돼줬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었어요. 극 안에서 정우 형과 더 분위기를 풀어볼까 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톤에서 튀어 보일까봐 자제했는데, 시사를 보니 더 해도 됐겠다 싶더라고요.

Q. 기존에 맡은 캐릭터 중에 경훈처럼 서늘함과 유쾌함을 넘나드는 역할이 많았던 것 같아요. 가장 잘 하는 분야이기도 하고.
김남길:
그래서 이번엔 그 느낌을 줄여보자 싶어서 과하게 연기하지 않았어요. 사실 사람은 살면서 한 감정만 갖고 있지 않잖아요. 여러 감정을 갖고 살아가니까 심각함 속에서도 실소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Q. 극 중 애드리브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남길:
현장에서 선보인 애드리브가 많았죠. 근데 정우 형은 웃지도 않고 애드리브를 다 받아치더라고요(웃음). 말도 안 되는 대사가 정말 많았어요. 영화의 톤에 맞게 가고자 자제한 부분이 있는데, 영화를 보니 제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더 믿음이 가지 않도록, 아예 사기꾼처럼 보였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 김남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마지막 퇴마 장면에서의 고군분투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김남길:
상대 배우 없이 혼자 찍다보니 처음엔 조금 과하게 연기했어요. 그랬더니 주변에서 정말 신들린 사람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이 이 장면에 정서적인 느낌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나중에는 조금 조절해 연기했어요. 애타까지의 오컬트 퇴마와 차별성이 있길 바라셨거든요. 귀신이나 악마 등 초자연적 현상을 응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원인을 알고 해결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구조의 역할을 말씀하셔서 그렇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Q. 작품 제의가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남길:
작품을 볼 때 항상 새로운 걸 우선적으로 봐요. 제가 해보지 못한 소재의 장르나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지점에서 이 작품의 장르가 신선하게 느껴졌죠. 저는 제가 공포나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는 찍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장르를 못 보는 만큼 표현을 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거든요. 그런데 하정우, 윤종빈 형이 전화하더니 그러더라고요. ‘술자리에서 장르 다양성 있어야 한다는 말만 하지 말고 우리가 해보자. 그래서 잘되면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오지 않겠냐.’ 그 말에 알겠다고, 한다고 했죠.

Q. 장르 다양성은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죠. 하지만 철저하게 시장 논리를 따르다 보면 가장 먼저 배제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김남길:
그래서 정우 형과 ‘최대한 다 해보자’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해요. 어떻게 잘 만들지를 얘기해보고 결과는 나중에 보자는 거죠. 사람들이 다양한 소재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잘 만드는 수밖에 없어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확장성도 생기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번 영화도 장르에 너무 갇히지 말자고 했어요. 장르적인 색과 사회 고발적인 성격, 오컬트, 미스터리를 다 떠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저희 영화를 보니 공포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슬프고 짠하더라고요.

배우 김남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장르적으로는 분명히 공포인데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어요. 상업영화의 경계에 선 작품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김남길:
저 역시 시나리오를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받아들이는 데에 호불호가 나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사회고발적인 느낌은 시나리오에서 더 강했거든요. 아역 배우들이 여럿 등장하는 만큼 우려지점도 많아서 제작부에서 아동심리상담 쪽의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저는 ‘클로젯’이 공포영화지만, 이런 부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IMF에 대한 내용도 있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생각이 들 수 있는 장면들이 있는데, 시대적인 것들도 영화의 한 부분일 뿐이어서 한쪽으로만 몰입해서 보시진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Q. 지난해 ‘열혈사제’로 대상을 수상한 뒤 보여주는 첫 작품이어서 흥행 부담도 생길 것 같아요.
김남길:
부담을 갖지는 않아요. 흥행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기본적으로 가진 생각은, 어떤 작품이든 ‘쪽팔리지 않게’ 만들자는 거예요. 필모그래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나 이런 작품 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을 하자는 생각이거든요. 그리고 작품이란 게, 사회적 이슈와 맞물리는 등 운이 좋으면 확장성을 일으키기도 해요. 그렇지 않으면 외면을 받을 수도 있죠. 그래서 저는 흥행에 있어 어떤 게 정답인진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제가 하는 드라마는 무조건 시청률이 좋고 영화는 1000만 관객이 되길 바랐지만 모든 게 내 욕심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냥 작품 안에서 최선을 다 하고, 관객이 좋은 작품을 봤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봐요.

Q. 흥행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마음이 바뀐 이유가 있을까요?
김남길:
어릴 땐 성공에 대한 기준 가치가 달랐어요. 그래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성공에 대한 집착보다는 책임감이 컸죠. 나의 작품과 함께 한 배우, 스태프에 책임감을 가져야 했고, 이슈가 만들어져야 스태프나 배우도 다음을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성공에 집착하게 됐죠. 하지만 지금은 그냥, 보는 시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아무리 뭔가를 하려고 해도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는 걸 잘 알아서요.

배우 김남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만큼 깨우친 바가 확실히 있는 것 같네요.
김남길:
사실 이전과 달라진 건 크게 없어요. 나이를 먹어 주름이 늘어난 것 정도죠. 다만 큰 틀의 변화는 없어도 세세한 변화는 있다 보니 연기 색에서 많은 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욕심은 많지만 과거의 욕심과는 결이 다르죠. 예전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연기하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조화를 잘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커졌고요. 작품이 돋보여야 저 역시도 조금씩 드러난다는 걸 깨달은 뒤로 마음이 편해졌거든요. 제가 자의든, 타의든 간에 내려놓게 된 부분도 많았지만, 제 정신건강을 생각하면 많은 걸 내려놔야겠다고 어느 순간 느끼게 됐어요.

Q. 타의로 내려놓은 예를 들어본다면.
김남길:
아무래도 군대였죠. 하지만 다른 것도 있어요. 제가 좋은 시나리오는 다른 배우에게도 좋을 수밖에 없어서, 예전엔 고민이 많았어요. 남들은 120점짜리 시나리오, 감독, 스태프로 시작하니까 저도 그 안에 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다 같이 잘하면 120점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 보니 120점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200점으로 끝나더라고요(웃음). 부익부 빈익빈은 어쩔 수 없는 문제인데,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니 참 힘들었어요. 한때는 자학할 때도 있었거든요.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싶었지만, 여러 타의에 부딪히면서 그 중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찾다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Q. 그런 과정을 거쳤으면 지난해 받은 대상이 더욱 남다른 의미였겠어요.
김남길:
솔직히 감흥은 크게 없었어요. 크게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직업적으로 당연한 일인데도 가끔은 카메라 앞에서 배우들과 연기를 하는 데에 큰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가끔은 숨고 싶을 때도 있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죠. 인복이 많다고 생각했던 터라, 대상을 받을 때 저를 그 자리에 있게 해준 동료들에게 공을 돌릴 수 있는 그 자체가 정말 좋았어요.

배우 김남길.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동료배우 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드라마 ‘선덕여왕’이 떠오르네요. 배우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였죠. 함께 한 배우들 역시 쟁쟁했고.
김남길:
그땐 지금보다 덜 유명했고 더 어렸어요. 그래서 작품이 잘 돼도 그때와 지금 느끼는 체감 정도가 완전히 달랐죠. 지금은 결과들에 좌지우지되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많이 흔들렸어요. 지금은 신기하게도 변화가 크게 없어요.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작품에 책임감 갖고 나름의 연기철학을 갖고 임하다보니 마음에 큰 동요가 없는 것 같아요. 

Q. 이번 ‘클로젯’은 새롭게 도전한 장르이기도 하고, 좋은 제작부와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해요. 스크린을 통해 작품을 마주한 소회는 어떤가요?
김남길: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커요. 사람들이 봤을 땐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불편한 지점이 많은 작품은 아니거든요. 영화가 감독 예술이라고 해도 좋은 스태프들이 함께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클로젯’은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작품이죠. 

Q. 수많은 작품을 거쳐 왔고, 그 작품들이 지금의 김남길이라는 배우를 만들었어요. 공포 미스터리 장르인 새로운 도전도 잘 마쳤죠. 앞으로의 필모그래피의 방향성은 어떻게 잡고 있나요?
김남길:
영화와 드라마를 번갈아 하다 보니 영화의 필모그래피가 적다고 생각해요. 기회만 되면 가리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그동안은 못 봤던 다른 게 보일 수도 있겠죠? 연기는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작품을 많이 찍고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많은 경험이 축적되다보면 소재의 다양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클로젯’도 그런 일환으로 참여했어요. 결과론적 책임감 외에도 연기적인 만듦새를 가장 첫째로 두고 임했는데, 이런 영화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그 자체로 큰 의미예요.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