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정남.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한혜리 기자] 

맹렬한 바닷바람을 닮아 강하고, 저돌적인 성미. 우리가 흔히 아는 부산 사람 특유의 대범함과 화끈함이다. 그들의 큰 배포를 우리는 종종 ‘츤데레(겉으론 쌀쌀맞은 모습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나 행동을 일컫는 신조어)’나 ‘사나이’로 표현한다. 그러나 부산인의 진가는 바로 ‘직진’이다. 자신이 한 번 마음 먹은 신념을 행동으로 밀어붙이는 것.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이하 미스터 주)’로 코믹 연기에 도전한 부산 남자 배정남의 연기에 대한 진심은 고로 ‘못 먹어도 고(GO)’다.

Q. 언론 시사회 당시 “영화를 찍으며 정말 행복했다”고 표현한 적 있다. 완성된 영화를 본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배정남: 비중이 크다 보니 영광이고 감사했다. 포스터에도 얼굴이 실린 건 처음이니까. 더불어 책임감과 부담감도 생긴 것 같고. 영화를 보니까 막상 슬프더라. 내가 안 나온 신은 완성본으로 처음 보잖아. 완성본을 보니 ‘미스터 주’는 웃긴 코미디보단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근래에 나온 영화 중 가장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 같고. 딸래미(반려견 벨을 부르는 애칭)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더 와닿았지.

Q. 영화와 관련한 인터뷰도 지난 영화 ‘보안관’에 이어 벌써 두 번째다.

배정남: 일단 이런 인터뷰로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새로운 모습이나 대중이 오해할 수 있는 점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가령 이 영화가 코미디로만 비춰지는 점에 대해 말이다. “우리 영화는 휴머니즘입니더” 이렇게. 하하.

Q. ‘미스터 주’에 합류를 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배정남: 이미 ‘미스터 주’라는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영화 ‘바람 바람 바람’ 시사회 때 뒤풀이에서 우연히 감독님을 만났다. 인사를 드리니 그때부터 ‘빵’ 터지시는 거다. 하하.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목소리 역할 하나만 남는 거 있으면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떡하니 만식(배정남) 역할을 내게 준거다. 감독님 생각하시기에 나와 만식의 모습이 많이 겹쳤었나 보다. 나도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Q. 만식은 처음부터 사투리 캐릭터였나?

배정남: 아니다. 처음에 감독님께 “서울말로 할까요?” 하니까 사투리로 가자 하시더라. 아무래도 사투리 때문에 ‘날 것’의 모습이 나오다 보니까 그게 좋으셨나 보다. 그렇게 몇 번 시도해보고 사투리로 가게 됐지.

배우 배정남. 사진. 구혜정 기자

Q. 코믹연기, 그리고 비중. 만식의 어깨에 짊어진 무게가 많았다. 특히 많이 망가져야 되는 캐릭터였고. ‘망가짐’에 대한 우려는 없었나.

배정남: 절대.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이 망가져봤지 않나. 하하. 또, 망가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웃어주고 좋아해주잖아. ‘하면 된다’라는 정신으로 더 하면 했지, 거리낌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관객들이 다른 배우들보다 더 친근하게 오픈 마인드로 봐주지 않을까 싶었다. 사람들이 일단 나를 보면 웃는다. 그래서 웃기는 거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그게 참 복이라고 생각한다.

Q. 아마 배우로서의 갈망도 한몫했겠지?

배정남: 그렇겠지. 일을 엄청나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급하게 서두르고 싶진 않다. 조금씩 쌓아가잔 생각으로 살고 있다.

Q. 주변 반응은 어땠나?

배정남: 내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되게 좋아하더라. 하하. 친구들과 떠들며 나오는 그 모습 그대로니까. 또,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영화가 슬프다고 하더라. 휴머니즘을 느낀 거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영화는 휴머니즘 입니더”. 하하.

Q. 만식의 모습이 투영되어서 인가, 이성민이 챙겨주고 싶은 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배정남: 만식이처럼 2% 부족해서 그런가. (웃음) 이렇게 실제 관계가 영화 속에 조금씩 투영되는 것 같다. 그래서 캐스팅도 이뤄진 것 같고.

Q. 이 영화로 ‘초통령(초등학생의 대통령이라는 줄임말로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캐릭터)’을 꿈꾼다 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초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할 장면은 어느 순간인가?

배정남: 아무래도 만식이가 굴로 떨어지고 나서 거지꼴이 되어 돌아올 때가 아닐까. 남루한 행색이라든지, 웃긴 걸음걸이라든지 전부 초등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모습이다. 애들 웃기는 게 제일 어렵잖아. 사실 ‘7번 방의 선물’처럼 이런 휴먼 드라마 영화는 근래에 잘 없었잖아. ‘초통령’을 꿈꾼다는 건 그만큼 ‘미스터 주’는 부담 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영화란 뜻이다. 아이들부터 80, 9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 보고 나면 아마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거다.

Q. 기억나는 애드리브가 있다면?

배정남: 애드리브는 시도조차 어려웠다. 이렇게 큰 역할은 처음이라서 하고 싶어도 안 했던 것 같다. 소심해서 말을 아꼈다. 근데 후회가 되더라. “아, 오늘 그거 해볼걸”하고 말하면 주변에서도 다들 해보지 그랬냐고 한다. 다음부턴 되든 안되든 말이라도 꺼내 보려 한다. 뭐, 찍어보고 좋은 거 내면 되지 않나. 하하.

Q. 여름에 촬영했으니 더위와도 고생했겠다. 게다가 동물 탈까지 쓰지 않았나.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신은 언제인가?

배정남: 촬영 시기가 7월 말에서 8월 초였으니까 아마 가장 더울 때였다. 말도 안 되게 덥더라. 항상 촬영 현장엔 응급차랑 냉동탑차가 있었다. 탈을 쓰고 촬영한 건 3~4일밖에 안 됐는데, 살이 쭉쭉 빠지는 게 느껴졌다. 탈에 불이 붙었던 신을 촬영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더라. 하하. 그 신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어. 탈을 쓴 둔한 몸으로 구르고, 발버둥 쳤으니까. 그래도 끝나고 보니 또 아쉽더라. 힘든 걸 이겨내고 싶었던 것 같다.

​배우 배정남. 사진. 구혜정 기자

Q. 평소 대표 반려인이지 않나. 촬영하면서 반려견 벨 생각도 많아 났을 것 같다. 극 중 군견 알리나 동물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배정남: 살면서 그렇게 똑똑한 개는 처음 봤다. 와, 집중력에 깜짝 놀랐다. 벨은 택도 안돼. 새 발의 피 정도? (웃음) 벨도 집중도가 좋은데, 알리는 ‘월드 클라스’고, 벨은 ‘동네 클라스’다. 하하. 대단하더라. 처음엔 동물과의 호흡이 어려울 것만 같았는데 알리는 워낙 잘하다 보니 문제될 게 없더라.

Q. 실제로도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배정남: 사실 벨과는 늘 이야기한다. 간식 달라, 산책 나가자 같은 말은 다 알아듣는다. 둘만의 소통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이거 하나만큼은 티라도 내줬으면 좋겠다. 최근엔 벨이 발등을 핥길래 아픈지, 간지러운지 싶었다. 겉으로는 티가 안 나니까. 반려인 입장에서는 제일 소망한다. 자주 건강검진 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Q. 얘기만 들어도 애틋함이 느껴진다.

배정남: 자그마치 6년을 함께 살았다. 이렇게 누구와 오래 살아본 게 처음이다. 심지어 부모님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사람이 ‘동물을 키운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게 더 크다. 무뚝뚝한 나도 벨을 통해 어느 순간 표현이라는 걸 배우고, 무한적인 사랑을 알게 됐다. 책임감이나 위안은 물론이고. 내가 받는 게 더 크다. 늘 고맙다.

Q. 이외에도 벨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배정남: 어디를 가고 싶은지 얘기해보고 싶다. 벨과 해외여행을 가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여행을 정말 가고 싶다. 만약 기회만 된다면 뉴욕을 데리고 갈 생각이다. 거긴 반려동물에 대한 환경이 훨씬 더 갖춰져 있으니까. 특히 공원.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공원이 참 넓다. 친구들도 많을 테니 사교성 좋은 벨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다. 또, 뉴욕은 모델 일을 할 때 내가 살던 곳이기도 하니까 지리적으로도 잘 안다. 친구도 있어서 매년 다녀오는 제2의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벨에게 아빠가 살던 곳이라며 뉴욕을 보여주고 싶다.

Q. 영화 ‘보안관’에 이어 이성민과 또다시 호흡이다. 워낙 절친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 호흡을 맞춰보는 건 처음이지 않나. 선배로서의 이성민과 ‘형’으로서의 이성민은 어떻게 다르던가.

배정남: 확실히 다르다. 평상시엔 푸근한 선배이다가도 현장에 가면 ‘쓱’ 하고 변한다.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서로 이렇게 긴 대사를 맞춰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리드도 많이 해주시고 본인이 카메라에 나오지 않아도 나를 위해 감정을 맞춰 연기해준다. 도움이 많이 됐다. 정말 고마웠다. 이성민 형님은 내 인생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특히 ‘사람으로서의 이성민’을 많이 닮고 싶다. 사람이 잘되면 변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게 없다. 항상 가족들부터 챙기고 집엔 온기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형님은 매번 나만 보면 형수님 같은 사람 만나라고 한다. 그게 말처럼 쉽나. 하하. 형수님도 대단하신 분이다. 종종 내가 아이를 낳으면 봐주시겠다고 하신다. 말씀이라도 참 고맙다. 내겐 늘 감사한 분들이다.

​배우 배정남. 사진. 구혜정 기자

Q. 모델로 높은 위치에 있다가 연기를 시작하며 다시금 신인이 됐다. ‘영화’라는 매체를 몸으로 느끼니 어떻게 다르던가.

배정남: 모델이란 시장은 사실상 굉장히 작다. 관심 있는 사람만 지켜보지. 반면 영화는 온 국민이 보는 매체니까 스케일 자체가 차원이 다르잖아. 모델이라는 일을 할 때도 힘들었지만, 연기는 더 어렵고 힘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 마치 모델을 처음 시작할 때 마음과 같다. 신인이 된 마음으로 늘 겸손하려 한다.

Q. 연기하길 잘했다고 느꼈을 때가 있는지.

배정남: 최근에 느낀 건데, 쫑파티 때 스태프들이 나에 대한 인상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그런 선입견이 바뀌고 얘기를 들을 때마다 연기하길 잘했다 싶다. 당장 이 영화 하나로 모든 선입견을 바꾸긴 어렵겠지만, 앞으로 잘 바꿔나갈 자신은 있다. 그럼에 있어서 이 영화가 큰 발판이 된 건 사실이다. 연기도, 책임감도 많이 배웠다. 확실히 하면 할수록 배우고 느는 것 같다.

Q. 연기를 시작하고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앞으로 배우로서 가장 욕심나는 것은 무엇인가.

배정남: 모델 시작할 땐 서울 올라와서 돈도 없고 친구도 없다 보니 생계를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그땐 진짜 앞만 보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급했던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상처도 많이 받고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많이 유해졌다. 그 옛날의 독기는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급하진 않다.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천천히, 즐기면서 행복하게 연기하고 싶다. 초조해지면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이제 시작이니까. 지금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열심히’는 모두가 한다. 대중에게 매 작품마다 느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거는 확실히 약속할 수 있다.

Q. 예능 프로그램의 활약이 지금의 ‘연기하는 배정남’의 바탕이 되어준 셈이지 않나. 사생활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불편함은 없는지 궁금하다.

배정남: 전혀 없다. 있었으면 내가 안 했을 거다. 프로그램 팀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이번에 영화 응원은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창원까지 내려왔었다. 이쪽 일 하면서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들은 처음 봤다. 피디님을 비롯해서 작가님, 연출팀 모두 너무 좋은 팀이다. 센 사람이나 안 맞는 사람이었으면 난 예능에 도전하지도 못했을 거다. 바로 티 난다. 싫으면 싫은 성격이라서.

Q. 예능을 통해 친근감을 느낀 대중이 많다.

배정남: 구수한가 보다. 하하. 이게 더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으니까. 옛날엔 낯설고, 세 보이고, 까칠하게만 보였다면 지금은 나를 모를 것 같은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도 알아봐 주신다. 지나가면 “개 잘 있나~”하고 인사해주신다. 이럴 때마다 정겹고 좋다.

Q. 그래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배정남의 매력이 있다면?

배정남: 내 매력? 음, 다 보여줘서…(일동 웃음) 진지한 연기로 진중한 면을 보여주고 싶기도 한데, 지금 해봤자 모두에게 낯설겠지. 하하. 조금씩 보여줄 예정이다. 다음 영화를 보시면 아실 거다.

Q. 대중에게 앞으로 어떻게 보여지는 배우가 되고 싶은가.

배정남: 연예인이란 느낌보다는 동네 옆집 오빠, 아저씨, 동생처럼 친근한 사람이고 싶다. 예를 들어 “정남이 나오는 영화 있던데, 함 보러 가자!” 할 수 있는 배우. 편한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우 배정남. 사진. 구혜정 기자

Q. 모델 시절엔 생계에 대한 간절함에 의해 달렸다고 말했다. 그럼 지금의 배정남을 달리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인가.

배정남: ‘도전’인 것 같다. 나 자신을 깨는 도전. 모델 일을 할 때도 그랬지만, 남들이 뻔히 생각하는 건 깨고 싶다. 온전히 나와의 싸움이다. 그에 있어서 지금 당장은 대중이 날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앞으로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거란 자신이 있다.

Q. 앞으로 배우로서 달릴 힘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배정남: (기자들을 향해) 몇 살까지 했으면 좋겠습니꺼? 90세? 에이, 난 그때까지 못살 것 같고. 하하. 모델할 때 깨달은 바가 올라갈 때만큼이나 잘 내려와야 한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편해지는 거지. 질투 같은 건 방해만 될 뿐이다. 연기를 시작한 지금은 오를 때겠지만, 한 번 경험이 있어서인지 급하지 않다. 천천히 오르다 내려올 순간도 준비해야겠지.

Q. 확실히 이전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초행자의 불안감에서 초월한 느낌이다.

배정남: 사실 이번엔 약간 불안했었다. 막상 개봉도 하고 홍보도 거의 끝나가니까 이 불안함이 바로 ‘책임감’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기분을 알았으니 다음 영화는 더 낫겠지. 일단은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다음은 뭐, 하늘이 뜻이겠지.(웃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하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심더! 하하.

Q. 그런 의미에서 다음 계획은?

배정남: 새 영화 개봉도 앞두고 있고, 시나리오도 보고 있다. 또 불러주시면 당연히 해야지. 영화 참 좋다. 미리 스케줄이 나와 있으니 벨도 돌볼 수 있고, 밥도 주고. (일동 폭소) 영화 밥차가 제일 좋아. 특히 군대식 제육볶음 있잖아. 그 얇은 거. 밥차 제육볶음이 제일 맛있다. 그거 나올 때가 제일 행복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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