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권민수 기자] 밀알복지재단이 2020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확대한다.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중복으로 있는 사람을 말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해 말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어 삼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의 작가, 교육자인 헬렌 켈러가 이 장애를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시청각장애인은 듣지도 보지도 못해 스스로를 사회에 드러내기 어렵다. 세상과 단절된 탓에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조차 없었으며 관련 법제도도 전무했다. 1만여 명의 시청각장애인이 존재한다고 추정될 뿐이다. 

올해 밀알복지재단은 이들을 양지로 이끌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쓸 계획이다. 지난해 4월 시청각장애인 지원을 위한 `헬렌켈러센터`를 열고 사업 기틀을 다졌다. 

밀알복지재단 정형석 상임대표는 "시청각장애인의 어려움은 시각 더하기 청각이 아니라, 시각 '곱하기' 청각입니다"라며 "이들이 사회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밀알복지재단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고 말했다. 미디어SR은 지난 21일 서울시 강남구 밀알복지재단에서 정 대표를 만나 2020년 재단의 계획을 들어봤다. 

-2019년이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열심히 달려온 밀알복지재단에 대한 소회를 말해주세요.

비영리법인(NPO)에게는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미르재단', '어금니아빠', '새희망씨앗' 등 기부금을 유용하는 일이 발생해 기부문화가 많이 위축됐습니다. NPO 수는 계속 늘어가지만, 오히려 모금은 줄고 있는 상황이에요.

어려운 와중에도 밀알복지재단은 희망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시민들로부터 쓰지 않는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익금으로 중증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굿윌스토어` 두 곳(창원점, 분당점)을 열었죠.

또 `기빙플러스`도 7개소(가락시장역점,수서점,인천부평점,마곡나루역점,흑석역점,가양역점,수원권선점) 추가 오픈했습니다. '기빙플러스'는 기업의 재고를 기부받아 판매한 수익금을 취약계층 고용과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스토어예요. 

장애인·소외계층 고용을 확대했고, 물건을 팔아 얻은 수익금을 또 목적사업에 사용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볼 수 있네요.(웃음)

-특히 지난해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헬렌켈러센터도 열고 시청각장애인 지원 방안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도 통과시켰죠. 

밀알복지재단이 설립된 지 30년 가까이 됐는데도 시청각장애인 사업이 없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관련 기관에서조차 이들을 위한 사업을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예상보다 빠르게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됐습니다. 올해부터 법에 근거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이 시작됩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이 시청각장애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크게 세 가지 지원책이 담겼어요. ▲시청각장애인 지원 기관 설치 ▲시청각장애인 의사소통 보조 장치 개발 및 보급 ▲시청각장애인 통역 전문 인재 육성입니다. 시청각장애인이 사회와 교류할 수 있도록 돕는 제반적인 내용이 골자죠. 

시청각장애인의 눈과 귀가 되어줄 통역 인재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시청각장애인은 장애 유형에 따라 소통 방식이 달라집니다.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중도에 청각을 잃은 유형, 청각장애인인데 시각을 잃은 유형, 선천적으로 시청각 장애가 있는 유형 등이 있어요. 점자를 아는 분들은 손등에 점자를 찍는 촉점자를, 수화를 아는 분들은 수화를 만져서 소통하는 촉수화를 쓰죠. 장애인에 각 특성에 맞는 언어를 교육하고, 시청각장애인과 소통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육성해야 합니다. 

촉수화로 소통중인 시청각장애인과 수화통역사. 사진. 밀알복지재단

-개정안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단독법으로 입법됐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 시청각장애인 지원법인 '헬렌켈러법'이 1968년 제정됐어요. 단독법이라면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개념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아직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았으니 선제적으로 법을 도입하긴 어려웠습니다. 

시청각장애는 특수한 장애입니다. 단순한 복지적 접근이 아니라 한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인권적 접근이 필요해요. 추후 단독법으로 제정되기를 소망합니다. 

-2020년 헬렌켈러센터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첫째는 시청각장애인 발굴이에요. 그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우니 직접 찾아 나서야 해요. 하지만 우리가 찾아가도 만남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어요. 마음에 이미 너무 많은 상처가 난 거죠. 

그래서 시청각장애인의 자조 모임(동료 장애인끼리 가지는 모임)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세상에 나 같이 힘든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임을 가보니 비슷한 사람이 수십 명 있더라' 그 생각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되죠. 자조 모임을 통해 가족들도 많이 위로받더라고요.

또, 시청각장애인 전문 장애인 활동지원사, 즉 `설리번`도 양성하려고 합니다. 장애인의 신체활동, 가사활동,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국내 9만여 명이 있지만, 시청각장애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이를 보완하고자 합니다. 

-이제 장애인 전반으로 시각을 넓혀볼게요. 2020년이 됐지만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습니다. 일례로, 강서구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주민 민원 제기 때문에 수차례 개교가 늦춰졌어요. 이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합니다. 한 번 인식이 개선된 사람은 장애인의 우군이 되죠. 

장애인이 들어오면 지역 땅값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장애인의 존재가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오히려 장애인과 함께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교육에 좋아요. 소외계층의 존재를 알게 되고, 배려하는 법 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인식 개선 방법은 장애인과 이야기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장애인 관련 강의도 필요하지만 강의만으로는 막연하게만 느껴질 겁니다. 

또, 언론의 관심이 필요해요. 언론이 장애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장애인을 옹호해야 합니다. 실제 언론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될 수 있었어요.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사진. 구혜정 기자

-앞서 언급한 ‘어금니 아빠’ 등의 사건으로 기부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었죠. 하지만 투명하게 운영하는 재단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부 활성화 관점에서, 국민과 기업 등에 한 말씀 부탁드려요.

NPO의 투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성장하고 있어요. '어금니 아빠' 같은 사례는 극소수일 뿐이니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국가가 모두 들여다볼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국가는 제도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재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워요. 그 사각지대를 민간기관인 NPO가 살피는 겁니다. 

민간이 먼저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그 후 공론화와 법제화가 이뤄지는 거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부분에 매몰되지 않고 NPO를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NPO업계에도 바라는 점이 있을까요? 

함께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NPO 연합 사업이 어려워요. 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단기적으로 조금씩 손해를 입더라도 필요한 사업을 위해 힘을 합쳐야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밀알복지재단은 개인 재산의 사회적 환원을 위해 유산기부 활성화를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NPO와 함께 유산기부 인식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요. 

한국은 유산기부하는 사람이 적죠. 영국의 경우 모금액 중 삼 분의 일이 유산기부일 정도로 규모가 크지만, 한국은 1%도 안 돼요. 보통 유산기부라고 하면 전액을 내놓는 거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소액이든 고액이든 자기가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거예요.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유산기부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야 해요.

하지만 인식 개선 사업은 우리 단체 하나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몇 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사업이에요. NPO들이 단합해 적극적으로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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