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제공 : 현대자동차그룹

회사는 노조의 적이 아니다

기원전 260년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일이다.한(韓)나라는 진(秦)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자 조(趙)나라에게 성을 넘기는 조건으로 보호를 요청했다. 조나라 대신들중 일부는 명분없는 이익을 추구하면 재앙을 초래한다며 반대한다. 그러나 평원군(平原君)은 ”큰 대가없이 주는데 안 받으면 어리석은 일“이라며 한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일 것을 효성왕(孝成王)에게 건의한다. 왕은 평원군의 건의에 따라 조괄(趙括)을 대장군으로 40만대군을 출병까지 시켰으나 진나라에게 패한다. 항복한 40만 군사는 생매장을 당했다. 전국시대의 판도를 바꾼 유명한 장평(長平)전투다. 조나라는 패전 여파로 30여년후인 기원전 228년 결국 망하고 만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능력과 지혜가 빛났던 공자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에는 어두웠다. 눈앞의 이익은 지혜를 어둡게 한다(이령지혼/利令智昏)”며 평원군을 혹평했다.

눈앞의 이익이 지혜를 혼미하게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고사다.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나 이름을 돌아보며 의를 생각하라는 고명사의(顧名思義)와 대비된다. 누구든 당장 눈 앞의 이익이나 편리함을 포기하고 그냥 지나치기는 힘들 것이다. 그 이익이 온당치 않으면 취하지 말라는 성현((聖賢)들의 가르침이 그래서 많은가? 공자(孔子)는 “이익에 끌려 행동하면 원망이 많아진다(방어리이행 다원/放於利而行 多怨)’이라고 했다. 맹자(孟子)는 위(魏)나라 양혜왕(梁惠王)에게는 ”인과 의를 말하지 않고 어찌 이익을 찾느냐(何必曰利/ 하필왈리)“며 경고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이기적이라고 한다. 누구나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나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그게 탈이다. 최근 현대·기아자동차 노조의 행태가 평원군의 편협한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 안타깝다.

현대·기아차는 신차들이 잇따라 대박을 내면서 판매계약을 하고도 고객에게 수개월씩 차를 공급하지 못해 고민에 빠져있다. 노조측이 그들의 편익만 앞세우는 탓이다. 때문에 증산을 위한 노사협의는 언제나 난항을 겪어왔다. 가뜩이나 무한경쟁에 돌입한 글로벌 자동차시장에 대비 비상경영을 하고 있는 차에 이번에도 호기를 놓칠까 회사측은 속앓이를 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초부터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 물량을 늘리려 기존 제조공장인 울산4공장뿐 아니라 울산2공장에서도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특근비 감소를 우려한 4공장 노조원들의 반발로 지난해 7월에야 증산 합의를 봤다. 팰리세이드는 당초 월 6240대를 생산하다 월 8600대, 월 1만대로 두 차례 증산 과정을 거쳤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

현대차는 최근 잘나가는 그랜저 생산량을 월 9000대에서 1만2000대가량으로 약 30%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조와의 협의 과정에서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다. 4만대가량의 출고가 지연되면서 계약후 대기 기간이 3개월 정도 늘어나자 일부 고객은 이탈 조짐을 보인다. 노사 협의는 다음달에 본격화할 전망이다. 기아차 노사도 경기도 화성공장에서 생산 중인 대형 SUV 모하비의 생산량을 월 1700대에서 월 2000~2300대로 늘리는 방안을 내달에 본격 논의한다. 지난해 9월 초 출시한 모하비 역시 잘 팔린다. 지금은 계약후 4달가량 대기해야 한다. 소형 SUV 셀토스도 증산 계획을 검토 중이나 조심스럽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시간당생산대수(UPH)를 올리는 방안밖에 없지만 사측 맘대로 안된다. 유연생산을 위한 노사협의를 거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게 최대 난관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생산량을 대폭 늘리려면 근로시간, 투입 인원뿐 아니라 엔진 증산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국내 사업장은 생산직 파견근로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어 수요를 감안 순간적으로 생산인력을 늘리거나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 파업이라도 벌어지면 임시대체근로자를 투입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하다. 반면 일본과 독일은 파견을 금지한 업종을 정하고 나머지는 파견근로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대체근로 금지규정도 없어 쟁의행위로 조업이 중단되면 즉시 대체근로가 가능하다. 물론 일본 독일도 유연근로를 하려면 노사 협의를 거친다. 유독 우리나라가 노조 반발이 심해 협의가 녹록치 않은 게 문제다. 한 관계자는 "대체로 해외 공장은 사측이 시장 수요에 따라 모델별 생산량을 수시로 바꾸는 일이 가능하나 국내는 노조가 근로조건, 투입 인력 등에 까다로운 조건을 다는데다 유연근로 공장·라인별 노조원들의 합의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제공: 현대자동차그룹

이택상주(麗澤相注)를 생각하라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상호 경제적 필요에 의한 관계다. 경제적 요구나 필요를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이끌어가면 자칫 쟁의나 분쟁을 일으키게 되기 쉽다. 반면 노사의 각자 요구가 조화를 이루면 해당 기업은 물론 나라의 산업 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다.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위해 노조는 무책임한 행동의 자제가 사측은 사회적 책임의 강조가 선행되야 하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노사화합을 통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키면서 대립, 반목이 아닌 공생, 공존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노사관계 안정 차원이 아닌 21세기 기업의 생존과 발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노동자들을 생각하고 노동자들은 기업을 이해해야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주역(周易) 태괘(兌卦)의 풀이에서 유래된 이택상주(麗澤相注)라는 말이 있다.두 개의 잇닿은 연못(麗澤)이 서로 물을 대주며 마르지 않는 것(相注)처럼 협력하고 도움을 주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뜻한다. 최고의 상생이다. 이때 이(麗)는 ‘붙어 있다’ 또는 ‘짝’이란 의미다. 1812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제자 초의(草衣)를 시켜 그린 다산도(茶山圖)와 백운동도(白雲洞圖)에도 이택은 전해진다. 다산도를 보면 아래 위로 연못 두 개가 있다. 월출산 아래 백운동 원림(園林)에도 연못이 두 개다. 담양 소쇄원(瀟灑園)에도 냇물을 대통으로 이은 두 개의 인공 연못을 파 놓았다. 담양 명옥헌(鳴玉軒)과 대둔사 일지암도 어김없이 아래 위 방지(方池)가 있다. 둘은 절차탁마(切磋琢磨)하여 상대에게 자극과 각성을 주며 함께 발전하고 성장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도 당시 공부 방법에 혁신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혼자 공부하며 의문을 해결하는 질서법(疾書法)외에 변론과 토론을 통해 학문을 진취하는 이택법(麗澤法)을 제시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국학(國學)에도 이택관(麗澤館)이 있었고, 조선시대는 이택당(麗澤堂)이니 이택계(麗澤契)니 하는 명칭들이 여럿 확인된다. 이처럼 노사도 서로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상생협력을 통해서만 서로 발전하고 성장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기아차가 밝힌 전기차 등 향후 투자 재원 마련 방안은 감원에 나선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 다르다. 글로벌 인기 차종인 SUV 판매를 늘리며 인도 등 신흥시장을 공략하고 중국 시장에서 체질을 강화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 이제는 노조 차례다. 이택상주의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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