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준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두사부일체’와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대표되는 2000년대 초반 코미디 영화 열풍에서 정준호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극 중심에서 자신만의 코믹 연기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그는 돌고 돌아 2020년 다시금 코믹 장르의 영화 ‘히트맨’으로 관객과 만났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정준호의 ‘히트맨’ 속 활약은 눈여겨봄직하다. 연기 외에도 여러 영역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는 정준호는 배우라는 직업을 두고 ‘하늘이 준 천직’이라 표현했다. 지금도 여전히 관객에 신뢰와 믿음을 주는 연기자를 꿈꾸는, 정준호는 역시나 천생 배우다.

Q. 스크린으로는 오랜만에 돌아왔어요.
정준호:
3, 4년 만에 다시 영화를 촬영한 것 같아요. 새해를 알리는 설 연휴에 개봉하게 돼 기뻐요. 다시 영화 현장에 돌아와 보니 많은 게 변했다고 느꼈어요. 많은 룰이 바뀌어 현장 분위기가 경직돼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모두가 빠르게 적응 중이더라고요. 

Q. 코믹 영화 역시 오랜만이죠. 촬영하면서도 남달랐을 것 같은데.
정준호:
코미디 영화의 키포인트는 웃음인데, ‘히트맨’ 역시 웃음이 많은 영화예요. 어떻게 보면 우리네 삶과도 비슷한 영화예요. 고난 속에서 꿈을 좇는 무의미한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주인공 준처럼 가정을 지키고 소소하게 꿈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죠. 웃음도 있고 의미도 주면서 모든 연령층, 다양한 사람들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영화이기도 해요.

Q. ‘히트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정준호:
시나리오에서 신선함이 보였어요. 사실, 처음에 봤을 땐 잘 이해가 안 됐어요. 학생들이 보는 만화 같기도 했거든요. 웹툰, 실사, 애니메이션을 넘나드는 시나리오의 구조 자체가 참 신선하다고 느꼈어요. 이런 것들을 시도한 감독님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캐릭터를 보니까 제가 중심을 잡아 이끌면 이 인물을 잘 살려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도 그런 의미에서 저를 원하셨어요. 시나리오에 감독님이 실제로 겪었던 힘들었던 생활의 일부가 녹아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부분도 많이 공감됐어요. 실제로 뵀을 때의 감독님 눈빛도 낭떠러지 앞에 선 것처럼 처절했거든요. 더 재볼 것 없이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죠. 

배우 정준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Q. 최원섭 감독이 코미디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죠. 함께 작업해보니 어떤 감회를 느꼈을지 궁금해요.
정준호:
 최 감독님은 열정이 정말 많아요. 그리고 30년 가까이 연기하면서 이렇게 예의 있는 감독을 많이 못 봤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본인이 원하는 컷은 다 얻어가더라고요(웃음). 다양한 연기를 찍고 이후에 잘 편집하는 스타일이에요. 정말 똑똑하더라고요. 준비도 정말 많이 해서, 촬영 기간 동안 연기자와 감독 간 얼굴 붉힐 일 없이 대처를 잘 해준 것 같아요.

Q. 코미디 선배로서 최원섭 감독은 어떻던가요. 
정준호: 감독 자체가 코미디를 너무 사랑하고 연기자 장점 잘 파악해서 그걸 살려주려고 많이 노력하더라고요. 제가 평가할 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앞으로 한두 작품만 더 하면 앞으로 충무로의 코미디 장르를 잘 이끌어줄 감독이 될 거라 생각해요. 다음 작품이 더 기대가 되더라고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담긴 신선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Q. 코미디를 오랫동안 하지 않으면 감이 떨어진다고도 하잖아요. 오랜만에 경험해 본 코미디 영화는 어땠나요.
정준호:
맞아요. 너무 오래 놓아버리면 감을 잃기 마련이에요. 감을 찾기 위해 연기자는 늘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요. 저도 ‘두사부일체’ 이후 오랜만에 코미디 영화를 해보니 호흡 자체가 빨라진 걸 느꼈어요. 과거 2000년대 초반에는 군중심리와 카메라 테크닉 호흡, 감독님 연출 기법, 연기자 개인의 코미디 감각에 의해 웃기는 장면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현실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영화에 접목하는 게 코미디가 되더라고요.

배우 정준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Q. 이번 영화에서도 현실적으로 공감할 만한 코미디가 담겼다고 들었어요.
정준호:
저 역시도 그런 걸 활용해서 평소에 잘 쓰는 말을 애드리브로 녹였는데, 관객 분들도 공감이 될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흐름 자체가 빨라졌는데, 이런 걸 따라가지 못하면 외딴 섬에 혼자 있는 기분이 들겠구나 싶기도 했어요. 과거의 장점을 모아 지금의 호흡을 따라가기 위해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양보도 하면서 많이 배웠던 기억이 나요.

Q. 많은 후배들과 함께 한 현장이었죠.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면요?
정준호:
애드리브예요. 과거엔 애드리브를 치기 전에 선배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일단 하고 보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 연기적인 욕심이 많이 생겼어요. 코미디 영화는 대본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의 연기자끼리 보여주는 호흡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민첩함과 순발력이 주옥같은 장면들을 만드는 거니까, 후배들이 하는 걸 보며 저도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죠(웃음). 

Q. 권상우와 호흡은 어땠나요.
정준호:
상우와는 충청도 동향이어서 기질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은 권상우라는 배우가 가진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액션, 짠한 연기,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속 처절함을 가진 가장을 정말 잘 표현했어요. 액션 신에 대한 욕심도 많고, 자기만족이 될 때까지 하는 스타일이어서 준비 자세부터 남다르다 느꼈어요. 그리고 권상우 하면 혀가 짧다는 인식이 있는데 혀가 정말 길더라고요(웃음). 안 되는 발음이 있더라도 그게 상우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그 덕에 오늘날의 권상우가 있을 수 있는 거니까요. 

배우 정준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Q. 연기와 사업을 병행해서 늘 바쁠 것 같아요. 가정에서는 어떤 가장인가요?
정준호:
저는 정말 가정적인 편이에요. 가정의 틀 안에서 가장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땐 정확히 하죠. 그리고 제가 홍보대사를 백여 개 정도 하는 편인데, 그 덕에 전국 특산물들을 제철에 많이 선물 받아요. 그런 것들이 생기면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하고, 출장에 다녀올 때면 아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걸 사와서 시기적절할 때 하나씩 꺼내주고 있어요. 제가 객지 생활을 하다 보니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는데, 아내가 새벽에 들어와도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저를 보고 많이 놀라더라고요. 초지일관 이렇게 사니까, 오늘날의 정준호가 연기력에 비해 상당히 성공을 했다고 보는 것 같아요(일동 박장대소).

Q. 홍보대사 이야기가 나오니 물어볼게요. 사람을 많이 만나고 다니다보니 늘 국회의원 출마설에 휩싸이곤 해요. 마침 총선도 코앞이죠.
정준호: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만 치면 제가 5선 의원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웃음). 홍보대사를 많이 하는데, 생각보다 지방에선 대중에 많이 알려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요. 솔직한 말로는 저도 팬 관리이자 이미지 관리를 하는 셈이죠. 그러다 제가 찍은 영화가 나오면 ‘우리 홍보대사가 나온다’면서 봐주시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곳들을 다니다보면 정치인 분들을 뵐 때도 많아요. 고향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니 주변에서 정치 권유를 하시기도 하는데, 저는 그냥 배우로서 배우의 길을 걸으며 지역의 민원을 정치하시는 분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정치에 대해서는 마음속에서 정리를 했거든요. 저는 이런 식으로, ‘정준호 식의 정치’를 하려고 해요. 제 일을 충실히 하며 민원 사항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요.

Q. 연기자이자 사업가인데 이런 식의 참여 정치까지 하다 보면 늘 바쁠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을 통해 달라진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정준호:
사실 처음엔 벅차기도 했어요. 하지만 제가 가진 욕심 때문에 사업을 시작했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10년 정도 지나서 보니 하길 잘했다 싶어요. 사업을 하다 보니 간접경험을 통해 사회현상을 더 깊숙이 보게 되고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되더라고요. 그런 걸 연기에 접목시키면 또 다른 것들이 보여요. 현장에서 후배들과 어우러지며 뒤에서 받쳐주는 형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죠.

배우 정준호.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Q. 많은 일들을 해내는 원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해요.
정준호:
욕심이죠. 자기관리는 곧 제 욕심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100가지는 됐어요. 대통령, 장군, 선생님, 판사, 의사 등 매일 꿈이 바뀌었죠. 연기자가 되고 사업도 시작하면서 제 자신이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술도 줄이고 늘 루틴대로 행동하려 해요. 그 속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죠. 삶에서의 연기를 배우기 위해 새벽에 남대문시장을 가보기도 해요. 바쁘고 치열한 삶을 들여다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 속에서 연기 영감도 많이 얻는 편이에요.

Q. 삶에 대한 확연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양한 영역을 하는 데에 있어 스스로 생각하는 ‘핵심’이란 무엇인가요?
정준호:
‘사람과 하는 일’이라는 점이에요. 배우는 사람 사는 인생을 그려내는 거고, 사업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경제활동 중 하나죠. 사람과 하는 일들인 만큼 관계를 중요시해야 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에 대한 신뢰가 얼마만큼 쌓이는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더라고요.

Q. 연기 역시 신뢰가 바탕이 되는 작업이기도 하죠.
정준호: 
맞아요. 믿음이 없다면 감독이 연기자를 캐스팅하지 않아요. ‘히트맨’에서의 천덕규는 처음엔 카리스마가 있지만 정에 이끌리며 뒤로 갈수록 넉살과 허당기를 보여주는 캐릭터인데, 이를 정준호라는 배우가 소화할 수 있다고 감독이 믿었기 때문에 제게 온 거라 생각하거든요. 영화는 감독 예술이고 그 안에서 배우는 적절한 역할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신뢰죠.

Q. 꼭 맞는 지론이네요(웃음). 그 신뢰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게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 연기자로서 볼 기회가 어느 정도 생길까요?
정준호:
영화와 드라마를 모두 할 생각이에요. 연기와 사업을 동시에 하고 있지만 역시나 제일 좋은 건 연기자로서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을 때더라고요. 배우로서 제게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순간은 촬영현장에 있을 때예요. 욕심 때문에 여러 일들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늘이 주신 천직인 ‘배우’라는 직업을 더욱 사랑하고 노력하면서 관객에 신뢰와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연기에 더 열중하고 집중해서 더욱 더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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