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충무로에서 가장 뜨거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하정우가 ‘백두산’을 통해 재난영화 연타 흥행에 도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합격점이다. 2003년 데뷔해 16년의 시간 동안 여러 터닝 포인트를 맞았던 그에게 ‘백두산’은 한국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새로운 자부심으로 남았단다. ‘소처럼 일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스크린을 바쁘게 누비고 있는 하정우의 꿈은 관객과 함께하는 배우다. 

Q. ‘백두산’의 조인창 역할은 하정우라는 배우 그 자체 같았어요. 물 흐르는 듯하게, 유연한 연기를 보여줬죠.
하정우: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재난영화는 스토리 라인이 예상 가능한 만큼 캐릭터를 단면적으로 잡지 말고 다른 모습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시나리오를 본 뒤 사실주의영화에 가까운 캐릭터처럼 연기해야겠다 싶었죠. 이병헌 형의 연기를 보면서 형 역시 단면적이지 않게 농담을 던질 수 있는 틈을 마련하면서도 극한상황에서 맞받아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감독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Q. ‘백두산’은 재난영화지만 버디무비의 특성도 띄고 액션 역시 강하게 담겨 있어요. 배우로서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하정우: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화제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과학자들이 ‘백두산’이 1000년에 한 번 터지는 주기가 왔다고 하는데 그러는 참에 이런 시나리오를 받게 돼 관심이 갔죠. 그리고 제가 원래 재난영화를 좋아하는데, ‘투모로우’에서 재난상황을 겪고 주인공들이 도서관에 들어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는 그 순간의 낭만이 있거든요. ‘터널’에서도 케이크를 먹는 그 조그마한 순간에서의 낭만이 있고요. 저는 재난영화의 그런 점들이 참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배우 하정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조인창이라는 인물의 허술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리준평과의 대조적인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남았던 것 같고.
하정우:
영화 ‘더 락’에서 니콜라스 케이지 캐릭터가 인상 깊게 남은 터라 조인창 캐릭터 역시 방황하면서 우왕좌왕하는 걸 극대화해 표현하자 싶었어요. 이병헌 형과 제가 각자의 몫을 한 것 같아요. 형이 멋있고 인간병기 같은 느낌이었다면 저는 반대로 허술하게 보인 거죠. ‘그린북’의 비고 모르텐슨처럼 인간적으로 허술해 보이면서 마이너 같은 느낌을 좋아해서 캐릭터를 그런 식으로 구축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에요. 

Q. ‘신과 함께’의 강림 캐릭터가 떠오르네요. 인창과는 완전히 거리가 먼 인물인데(웃음).
하정우:
그런 면에서 ‘신과 함께’의 강림은 제겐 너무나도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쉬워보여도 굉장히 어렵거든요. ‘PMC: 더 벙커’도 마찬가지예요. 한 상황에 놓여 캐릭터를 끝까지 끌고 나감에 있어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니 연기하면서도 답답하며 어려운데, ‘백두산’에서는 리준평이 있었기에 인창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많이 보장됐어요. 일하는 게 즐거웠죠.

Q. 캐릭터가 주는 임팩트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없었을까요.
하정우:
저는 영화가 잘됐으면 하는 바람뿐이에요. 제 우선순위는, 제가 돋보이는 것보다 제가 참여한 영화가 더 재미있어야 한다는 거거든요. 제 역할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배우 하정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백두산’은 서사의 진행에 따라 인창 캐릭터의 성장 드라마도 함께 그려졌어요. 관객 입장에서는 여러 지점에서 인창이 변화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연기할 때도 이런 부분을 신경썼겠다 싶었어요.
하정우:
맞아요. 일단 관객 분들이 영화의 주어진 시간 내에 인물이 성장하고 변화하길 바라시는 편 같아요. 그런 지점에서 인창 역시 준평을 만나 상황에 적응하고 성장해나가는 포인트를 염두에 뒀죠. ICBM을 해체해 핵탄두를 갖고 나와 경영위에 전화하고 처음으로 리준평에게 총을 겨눠 갈 길을 가라는 게 첫 번째 성장 포인트라면, 이후의 전투 상황에서 트럭에 불을 질러 상황을 반전시키는 장면, 극 후반의 보천 갈림길에서 본인이 혼자 가겠다고 결심하는 지점들이 인창의 단계별 성장 포인트라고 봤어요.

Q.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이병헌을 두고 ‘연기 기계’라고 칭했잖아요. 함께 촬영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나요?
하정우:
선배이자 저보다 훌륭한 배우가 짐을 같이 나눠서 지고 간다는 건 굉장한 의지가 되는 일이더라고요. 정말 좋은 의미에서 ‘연기 기계’라는 표현을 썼어요. 이병헌 형은 흐트러짐 없이 매 테이크를 갈 때마다 열정과 에너지가 대단해요. 20대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정말 좋았는데, 영화를 보니까 같이 촬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좋았어요.

Q. 수지와 부부로 만난 것도 큰 화제였어요. 수지와의 투샷을 관객 입장에서 보니 어떤 느낌이었나요(웃음).
하정우:
민망하고 어색하더라고요. 볼 잡고 노는 게 어색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고요. 하하.

배우 하정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30대 때도 큰 사랑을 받았지만 어느덧 40대 배우 대열에 합류했어요. 
하정우:
흰 새치를 염색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고민부터 시작해서 내가 살아온 경험에 맞는 연기와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촬영장에서도 나이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Q. 과거에는 저예산 영화와 큰 규모의 영화를 번갈아 찍곤 했어요. 요즘은 그보단 작품의 수가 적어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하정우:
개봉 시기의 문제이긴 해요. 이전과 촬영하는 작품의 수는 비슷하거든요. 평균적으로 2년에 세 작품 정도를 찍고 있는데 산업이 커지면서 예산 역시 커졌어요. 그 가운데 중형급의 영화는 제작이 드물어졌고 도리어 큰 영화는 더욱 커진 반면 작은 영화는 그대로 저예산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입장에서는 과거에 선택의 폭이 더 컸는데 지금은 편수 자체가 줄고 기획이 통합돼 타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많아졌어요. 하지만 배우로서는 여러 영화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제가 참여하고 있는 영화사에서 ‘싱글라이더’와 ‘클로젯’ 등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그런 시도를 이어가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미덕 같아요. 지금 제작을 준비 중인 작품도 저예산 규모거든요. 한편으로 아쉬운 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찍고 싶은 데 그런 장르를 이 산업의 구조에서 만들 수 있을까 싶은 거예요.

Q. 경력이 쌓이면서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에도 변화가 생겼을까요?
하정우:
저는 늘 재미를 봐요. 영화적인 재미가 너무 단순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캐릭터는 두 번째 고려사항이에요. 캐릭터가 좋아도 영화 스토리가 재미있지 않으면 그걸 알아봐주지 않잖아요. 스토리가 훌륭하면서 캐릭터 역시 좋은 작품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선 ‘그린북’ 같은 영화가 참 좋은 영화라 생각해요.

배우 하정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오늘날의 하정우가 있기까지 중요한 포인트가 됐던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정우:
매 작품마다 제게 성장과 깨달음을 줬어요. 그 중 가장 크게 보이는 터닝 포인트는 ‘추격자’예요. 캐릭터를 통해 일반 관객들에 처음으로 영화배우로서 소개가 됐죠. ‘국가대표’는 상업영화로서 큰 성공을 거둔 첫 작품이에요. ‘황해’는 큰 성공은 못 했지만 1년 동안 한 캐릭터로 살아가며 한계에 부딪혀본 작품이고요. ‘군도’를 찍으면서는… 다신 사극을 못 하겠구나 싶었죠(웃음). 다른 의미에서 제게 엄청난 터닝 포인트를 줬거든요. 그리고 ‘베를린’은 처음으로 액션 연기를 소화했던 작품이에요. ‘더 테러 라이브’는, 혼자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다른 식으로 증명해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허삼관’은 감독과 주연을 한 작품인데, 다시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낼 수 없겠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작품이에요. 저예산 영화인 ‘롤러코스터’와는 다르게 상업영화를 감독과 배우로서 진행하다보니 미처 몰랐던 걸 느끼게 됐거든요. 부지런히 더 열정을 갖고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허삼관’이 가장 큰 터닝 포인트인 셈이네요.
하정우:
제 영화 인생에서 한 챕터가 넘어간 느낌이기도 해요. ‘허삼관’은 시나리오 분석과 선택에 있어 제게 큰 영향을 미친 터라 하루하루가 기억에 남거든요. 그리고 2011년에만 ‘범죄와의 전쟁’, ‘러브픽션’, ‘의뢰인’, ‘577 프로젝트’ 등 네 개의 작품을 했어요. 특히 ‘러브 픽션’은 전계수 감독님 특유의 코드로 공효진 씨와 재미있게 찍었던 터라 기억에 남아요. 2011년은 ‘황해’로 지쳐 있다가 새롭게 성장한 느낌을 받은 해였고 이후에 ‘베를린’과 ‘더 테러 라이브’ 등 여러 작품을 했어요. ‘허삼관’ 이후로는 ‘암살’과 ‘아가씨,’ ‘신과 함께’, ‘1987’, ‘PMC: 더 벙커’와 이번 작품인 ‘백두산’을 찍었죠. 모든 작품에 다 히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배우 하정우. 사진. CJ엔터테인먼트

Q.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백두산’은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요.
하정우: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 더 이상 ‘할리우드 식’이라는 말을 빼도 될 정도로, 그에 견줄 만한 컴퓨터 그래픽 스케일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자부심을 가져도 될 작품이라고 보고 있죠. 그런 부분이 제겐 흥미롭고 또 좋았고요.

Q. 늘 바쁘게 작품을 촬영하는 것 같아요. 일을 너무 많이 할 때면 재충전을 하고 싶어질 것 같은데.
하정우:
보통은 촬영만 하게 될 경우 나름의 규칙적인 쉬는 시간을 보장 받아요. 이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은 특별히 들지 않지만, 매너리즘 같은 게 올 때면 걷는 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요. 그리고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면 거기서 또 힘을 얻죠.  

Q. ‘소처럼 일하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대중과 관객들에 하정우라는 배우가 어떻게 남기를 바라나요.
하정우:
늘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이 봤을 때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배우요. 같이 살아가고 있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친근한 느낌이 드는 배우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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