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 시인 제공.

[장혜진 시인]

올 겨울들어 처음으로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도록 내렸다. 참으로 소담스럽게 내렸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어릴적 추억이있다.
나 어릴적에는 겨울에 눈이 한번 내렸다하면 문밖을 나가지 못할만큼 내렸다. 그덕분에 어른이 된 지금도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눈처럼 쌓여서 오래도록 녹지않고 남아 있는지도.....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문에 매달려 눈이 얼마나  쌓이나 하고 기다렸다.
백설기떡을 찌려고 물에 불려서 빻아놓은 쌀가루 같은 눈이 하염없이 내리기를 창문에 턱을 괴고 마냥 기다렸다.
들숨날숨으로 창문이 반투명으로 희뿌옇게 변하면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고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문밖에 눈이 소복히 쌓이기를 기다렸다.

긴 기다림의 시간이 흐르고 밥그릇에 소복히 담긴 밥처럼  현관밖 계단과 손잡이 난간위에 눈이 쌓이면 그때부터 분주해진다.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서 소꿉놀이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싶은  작은 그릇이란 그릇은 죄다 꺼내서 소꿉바구니에 담아  현관밖으로 나갔다.
손이 시리면 호호 불어가며  작은 그릇에 희고 깨끗한 눈을 숫가락으로 퍼담았다.
대식구들의 밥을 퍼담 듯 꾹꾹 눌러가며 그릇에 눈을 담으면 숟가락이 눈에 닿을 때 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나는 그때 눈이 방귀를 뀐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건 예쁜 선녀가 똥을 누는거라고 믿었던 나이였다.
선녀의 똥이 내는 소리였던 그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어쩌면 그리 듣기 좋던지 내 똥누는 소리도 그처럼 예뻤으면 하고 부러워했다.

똥이 이렇게 희고 예쁜데 선녀는 얼마나 더 예쁠까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그릇마다 가득가득 눈을 담았다.
야속하게도 꾹꾹 눌러 고봉으로 퍼담아 놓아도  서서히 녹아 물로 변하는 눈이 속상했다. 아이스크림보다 더 빨리 녹아버리는 눈이라 그릇에 더 빨리 가득 가득 담았다.

얼마나 그렇게 놀았을까?
코가 빨개지고 손가락도 곱아서 겨우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려 집으로 들어가 풀썩 쓰러지듯이 방에 누웠다.
까무룩 잠이 들었고 잠결에도 그릇에 담겨진 눈이 다 녹았을까 걱정되어서 다시 나가보면 그릇에 눈이 가득 담겨있었다.
분명 아버지가 담아 놓았다는 것을 알면서 짐짓 모른 척 어?눈이 안 녹았네 라며 좋아했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에서는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했지만 나는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린시절 그 겨울로 가고싶다.
아기 비둘기의 겨드랑이 깃털같은 눈이 너울너울 흩날리며 내리는 날이면 일곱살 그때 그 겨울로 돌아가 눈이 펑펑 내리던 그날 ,

내 아버지의 팔베개를 하고 호랑이가 아낙에게 곶감을 주면 안잡아 먹지 하던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할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면 또 또 해달라고 하면서 그 팔을 놓지 않을것이다.
영영 이별이 될 줄 모르고 놓았던 그 팔을 꼭 붙잡을 것이다.

겨울의 중간 즈음 함박눈을 만나 몹시 반가웠으나.....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