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눈물' 저자 이철환 단국대학교 겸임교수. 사진. 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사민 기자]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하나에 이륙한 비행기를 멈춰 세운 이른바 '땅콩 회항'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사건 하나로 대한민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갑질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감춰져 있던 오너 일가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비단 대한항공의 문제가 아니다. 갑질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가정에서까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자연스레 형성되는 '갑을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갑질은 있다. 그렇다면 갑질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갑에 맞서는 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과가 빤하더라도, 을은 계속 싸워야 할까.
 
한국 사회의 갑질을 낱낱이 분석하고 파헤쳐 을의 생존 전략을 일러주는 책, '을의 눈물' 저자 이철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를 좀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에 맞서는 실질적인 행동이 계속돼야 한다. 을들은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민주적이고 성숙한 사회로 만들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철환 교수는 1977년부터 30년 이상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경제 관료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재벌의 민낯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다. 관료 생활 이후에는 금융정보분석원 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위원장 등 다양한 조직에 몸담았고, 현재는 학계로 적을 옮겨 단국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계, 경제계, 학계를 두루 거치면서 조직의 불합리한 갑을 구조에 일찍이 주목한 그는 사회 곳곳의 갑질을 날 선 시각으로 지켜봐 왔다. 그가 집필한 ''을'의 눈물'은 40여 년의 세월 동안 몸소 겪어 왔던 한국 사회 갑질 현장의 생생한 보고서다.
 
미디어SR은 겨울의 초입 서울 여의도에서 이철환 교수를 만나 건강한 갑을관계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다음은 1문 1답.
 
-정부와 금융권을 두루 거친 교수님의 사회적 위치를 보면 을보다는 갑에 가까운 삶을 살아오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셨나요?
 
책의 내용이 주로 갑에 의해 을이 고통받는 우리 사회 어두운 단면을 적시하기에, 이 책이 저를 비롯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책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갑질 현상이 이어지고 있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어떻게 사회 전체를 개혁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봤습니다.
 
이러한 고민 끝에 책이 만들어졌고,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제가 살아온 지난 삶에 대한 성찰을 겸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 책은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세대 참회록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갑질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데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가정에서도 갑질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 상층부에 있는 정치, 법조계, 행정부, 언론, 재벌 등 소위 말하는 사회 지도층의 갑질입니다. 이들의 갑질은 국민 전체에 미치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빨리 개혁이 이뤄져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갑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더 심하다고 보시나요?
 
한국 사회가 아직 덜 민주화되고 시민의식의 성숙도가 다른 선진 사회보다는 뒤떨어지다 보니 피부로 느끼는 갑질의 정도가 강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기 시작한 이후에도 많은 갑질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수면 위로 노출되지 못하다가, 땅콩 회항 사건을 계기로 분출되면서 사회적 이슈화가 됐어요. 이전에도 재벌의 맷값 폭행 사건 등 잠복한 갑질 사건이 많았는데 땅콩 회항 사건이 역설적이게도 사회를 정화하는 좋은 계기가 된 셈이죠.
 

-''을'의 눈물'에 따르면 최근 프랜차이즈 오너 갑질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대기업으로 성장한 프랜차이즈형 기업의 오너들이 직원이나 가맹점주에게 갑질을 자행하게 되는 산업적인 배경이 있을까요?

프랜차이즈 업계가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더 많은 갑질에 노출되는 게 사실입니다. 일반 기업체는 계층 조직 형태를 지녀 기업주가 직원이나 소비자를 바로 대면하지 않기에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지 않죠. 반면 프랜차이즈 업계는 중간 계층이 없이 본사와 가맹점주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접촉 빈도나 이해 충돌의 경우가 더 빈번한 것 같습니다.
 
일반 기업의 경우 기업 전체가 한 팀이 돼서 기업 이익을 위해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데 비해, 프랜차이즈 업계는 본사와 가맹점 간 이해관계를 제로섬게임으로 받아들여 갑을관계의 부작용에 빈번하게 노출돼 있습니다. 프랜차이즈 오너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 오너 개인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그가 영위하고 있는 사업에도 타격이 있기 때문에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언론의 갑질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해주셨는데요.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과정에서 불의에 맞서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희석됐다는 점입니다. 언론 매체가 많아지면서 치열한 경쟁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사업을 꾸려나가다 보니 가짜 뉴스까지 특종으로 삼으려고 목매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특히 최근 전통적인 언론뿐 아니라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언론 역할을 하는 소스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유사 언론이 분위기를 혼탁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가짜 뉴스가 세계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결론적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언론인의 윤리성이 창의성 못지않게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철환 교수. 사진. 구혜정 기자

-최근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직장갑질 119'의 활성화 등 갑질을 해결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이 커졌습니다. 이러한 해결책이 유효하게 작용해 갑질 문제가 어느 정도 완화됐다고 보시나요?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에 구체적인 효과가 얼마나 되는지 계량화하긴 힘들지만, 제도 자체가 만들어진 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갑질 현상이 불거지는 게 현실이기 때문에, 아직은 제도가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도 그 자체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의식도 같이 선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문화가 수직적인 위계질서에서 벗어나서 수평적으로 분권하고 민주화되는 구조로 개편이 되고, 국민들도 좀 더 성숙한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자정 노력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갑에 대한 제언으로 대기업과 재벌의 기부문화도 강조하셨습니다. 국내 기업 오너나 대기업들도 지분을 출자해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재단에 총수 일가 지분을 증여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기업이 국민에게 인정을 받고, 나아가 사랑 받는 기업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회적 책임 또한 좀 더 강화해야 합니다. 국민에게서 지탄을 받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소극적 의미의 사회적 책임이라면, 좀 더 적극적인 사회적 책임은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을 포함한 기부 행위를 활성화하는 것이죠. 이제는 기업들이 과거와는 다르게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서 수익을 올리는 장사치의 역할을 넘어 소비자와의 관계 정립의 중요성이 커졌습니다.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 공헌하는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야 국민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기업, 기업인이 될 수 있겠죠.
 
-어쩔 수 없이 갑을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 모든 을은 갑의 횡포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요. 동시에 스스로 갑질하는 상사가 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어떤 게 있을까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을의 노력만으로도 안 되고, 갑의 노력만으로도 안 됩니다. 우리 사회 전 계층의 구성원 모두가 갑질을 줄여나가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 경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개혁이 이뤄져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하고, 국민들의 의식 개혁도 끊임없이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아울러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정 능력을 통해서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여겨지는 소통과 포용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갓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면서 갑질의 최전선에서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모든 을에게 인생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갑을관계는 어떻게 보면 기성 세대와 미래 세대의 갈등 관계라고도 볼 수 있어요. 사실 기성세대는 그동안 경제 분야에서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을 12대 경제 대국으로 키우는 데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공로는 분명히 인정해줘야 하고, 그들이 가진 자긍심에 대해서도 존경해야 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 발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시민의식의 성숙도 측면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고속 성장을 하려다 보니 인권, 행복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 가치는 등한시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미래 세대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습니다.
 
이제 미래 세대가 중심이 돼서 경제 발전뿐 아니라 분배, 인권과 정의 그리고 행복 등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경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미래 세대가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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