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크러쉬의 음악 세계
[인터뷰] 크러쉬의 음악 세계
  • 김예슬 기자
  • 승인 2019.12.09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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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저의 궁극적 목표는 건강히 오래 음악을 하는 거예요. 아직 전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정규앨범이고, 5년 6개월 만이다. 다분히 기념비적인 앨범인 만큼 온 정성을 쏟았다. 그럼에도 긴장감을 숨기지 못한다. 만감이 교차한다며 컴백 소회를 밝힌 가수 크러쉬는 신보를 두고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앨범”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길과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 이를 통해 많은 배움을 얻은 그는 아직도 음악적인 여행과 방황을 이어가고 있다. 크러쉬의 음악은 어디로 뻗어나가게 될까. 분명한 건, 이를 지켜보는 모든 과정에 기분 좋은 설렘이 함께 하리라는 것이다.

Q. 꾸준히 곡을 발표했던 만큼, 정규앨범이 5년 6개월만이라는 걸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러쉬:
오랜만에 정규앨범을 내는 것이어서 긴장도 되고 설레요. 만감이 교차한다고 할까요? 싱글앨범이나 EP 앨범은 정규앨범보다 규모가 작아서 부담이 크진 않았는데 이번 앨범은 완성하는 데에만 3년 가까이 걸렸어요.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앨범이거든요. 정말 긴장돼요.

Q. 첫 작업이 3년 전부터 시작된 거라면 작업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크러쉬:
이 앨범을 처음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하기 시작한 게 3년 전이에요. 그때부터 노래들을 하나씩 보관해왔죠. 그 사이에 다른 앨범도 발표했지만요. 다만 정규앨범은 제 나름대로의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내고 싶었어요. 5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 작업물을 발표하며 제가 가야 할 길과 방향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진지하게 집중하면서 완성한 결과물이에요. 나름 많은 고민과 연구, 노력 끝에 나온 앨범인 셈이죠.

Q. 그래서일까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살이 6kg나 빠졌다고 들었어요.
크러쉬:
앨범의 전체적인 톤 앤 매너와 스토리를 확실하게 잡고 가다보니 스트레스가 컸어요. 만들어놨는데도 앨범에 못 실은 곡이 굉장히 많아요. 음악 작업을 하다보면 온전한 상태로 작업하긴 쉽지 않아요.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겪게 되거든요. 그래도 다 완성하니 편안한 마음으로 제 앨범을 듣게 돼요.

Q. 신보에 담아낸 ‘확실한 주제’란 무엇인가요?
크러쉬:
저는 원래 앨범 작업을 할 때 새벽 1시부터 새벽 6시, 늦게까지는 아침 7시 사이에 하는 편이에요. 이때가 온전히 제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그 시간들을 통해 이 앨범에 넣은 노래가 많아서 제목도 ‘프롬 미드나잇 투 선라이즈’(From Midnight To Sunrise)라고 지었어요. 3년 전, 제가 ‘원더로스트’(wonderlost)라는 EP 앨범을 작업하던 때에 곡 작업을 하다 강아지와 새벽 산책을 나간 적이 있어요. 한강까지 갔는데 동쪽에는 해가 뜨는 중이고 서쪽은 아직 깜깜한 밤인 거예요. 그 중간점에 서있자니 사색에 잠기게 되더라고요. 나는 인생의 어디쯤까지 와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이런 자아성찰을 테마로 하는 앨범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힌트를 얻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하루’라는 테마 안에서 시간 흐름에 맞게 트랙을 배치했어요. 그 덕에 스토리텔링이 분명하고 확실해질 수 있었죠.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Q.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을 거치며 크러쉬라는 가수의 방향성을 찾아냈을까요?
크러쉬:
완전히 찾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지금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어요. 하지만 앨범을 만들면서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었어요. 예전엔 앨범 작업을 할 때 전체적인 앨범의 분위기에 신경 쓰지 않고 음악 하나하나에 공을 많이 들이며 다 쏟아 부었다면, 이번에는 강약조절을 확실히 했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Q. 균형을 맞췄다는 느낌인 거네요. ‘위드 유’(With U)와 ‘얼론’(Alone)이라는 더블 타이틀을 내세운 것도 흥미로워요.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잖아요.
크러쉬:
완전히 결이 다른 주제의 곡들이에요. ‘얼론’은 힘들고 지쳤을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자 안식처가 역시 음악이었다는 근본적인 생각을 갖고 만들었어요. 제 음악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고,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나 힘듦을 해결하지 못 해도 교감으로서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테마가 있는 곡이에요. 반면 ‘위드 유’는 90년대 감성을 가진 노래죠. 두 곡이 연결되지는 않아요. ‘위드 유’는 순수하게 ‘완전한 사랑’에 대한 테마를 잡고 만들었거든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세분화됐죠.

Q. 최근 크러쉬의 노래들은 장르를 다양하게 탐구해나간다는 인상이 강해요. 자신의 틀을 스스로 바꾸려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번에도 신디사이저를 활용하는 점이 독특하게 다가왔죠. 
크러쉬:
굉장히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많이 거쳤어요. 3년 전부터 LP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을 들으며 과거의 음악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마음을 움직이는 아날로그만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폭넓은 기간 동안의 음악을 들으면서 당시 뮤지션이 쓴 악기와 녹음방식을 보고 이번 앨범에도 적용해봤어요. 실험적인 편곡도 담겼어요. 

Q. 요새 들어 시티 팝 장르가 재조명받으며 1990년대를 ‘뉴트로’로 소비하는 움직임이 도드라지고 있어요. 공교롭게도 이 움직임을 주도하는 건 그 당시를 경험해보지 못한 1990년대에 태어난 가수들이고요.
크러쉬:
저 역시도 92년생이에요(웃음). 저는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90년대 미국 알앤비(R&B) 음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이런 현상과 관련해서 신중현 선생님이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 있어요.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은 시대를 골라서 산다’는 이야기인데, 옛날 감성의 음악과 문화를 유튜브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원하는 시대를 선택해서 살 수 있게 된 거죠. 저 역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 시대에 산 건 아니지만, 단순히 흉내를 낸다는 의미보다는 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저의 음악의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최근에 LP를 자주 들었는데, LP에는 그 음악을 만들며 어떤 장비를 썼는지가 자세히 나와 있어요. 그런 것들이 이번 앨범을 만드는 데 있어 많은 참고가 됐죠.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Q. 음악에 탐닉하던 와중에도 힘든 순간은 있었을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수록곡인 ‘클로쓰’(Cloth)에는 공황장애를 앓았던 기억을 담았다고 들었어요.
크러쉬: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무대에 서는 게 무서웠고 제가 소모품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굉장히 많이 극복했어요. 이겨낸 셈이죠. 제가 원래 일기를 자주 쓰는 편인데, ‘클로쓰’는 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예요.

Q. 주변의 도움도 컸겠어요. 특히나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고생이 컸던 만큼 주위에 조언을 받았을 법한데.
크러쉬:
이번 제 앨범의 7곡 작업을 함께 한 홍소진 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건반 세션과 작·편곡으로 유명하신데 제가 만든 밴드 팀에도 속해계시거든요.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그분과 많은 작업을 거쳤죠. 이번 앨범 작업의 1등공신이에요. 싸이 대표님은 전체적인 밸런스를 봐주셨어요. 사운드에서의 이해도가 높으셔서 여러 도움을 주셨죠. 

Q. 타이틀 작사에 참여한 노브(nov)가 친누나인 걸로 알고 있어요.
크러쉬:
맞아요. 그 이름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인데,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가사로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 자연스럽게 가사로 나오곤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는데, 많이 의지하다보니 음악적인 교류도 많았어요. 서로 많이 응원하고 있어요.

Q.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주변과 조언을 주고받다보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 앨범을 만들기 전 ‘내 인생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한 사색을 했다고 말했는데, 지금 그 답은 찾은 상태인가요?
크러쉬:
아뇨, 못 찾았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이 더욱 기대돼요. 아직도 저는 음악적으로 여행하고, 방황하고 있어요. 그건 제 삶도 마찬가지죠. 저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저의 가장 큰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하게 오래 음악을 하는 건데, 벌써 그 답을 찾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Q. 가수로서 크러쉬의 이름 앞엔 ‘음원깡패’라는 수식어가 붙곤 해요. 그만큼 대중 입맛에 맞는 노래를 낸다는 건데, 이게 역으로 음악 세계의 확장을 막을 수도 있어요.
크러쉬:
뮤지션으로서 어떠한 노림수를 고집하면 성장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저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음악을 생각하게 돼요. 이번 앨범처럼 전체적인 스토리를 짜거나 하면서 저의 취향에 맞게 최적화시킨 음악을 좋은 결과물로 만들어서 들려드리는 게 뮤지션의 숙명이라는 생각을 하죠. 주변에서 기대가 큰 만큼 부담은 솔직히 돼요. 하지만 저 나름대로는 겸손하려 늘 노력해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거든요.

Q. 여러 고민을 안고 나온 음반이지만 최근 음원 차트 사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분위기가 좋지 않아요. 그런 시류에 휩쓸리는 것에 대한 걱정도 될 것 같은데.
크러쉬: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오래오래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1, 2년 음악하고 그만둘 게 아니니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앨범을 많이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정말 열심히 만들었거든요.

Q. 크러쉬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의 정의가 궁금해요.
크러쉬: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이 진짜 좋은 음악 같아요. 새 앨범을 작업하며 느낀 게 있어요. 여러 가지 편곡 테크닉을 거쳐 더 화려하게, 힘을 줘서 만들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저의 귀를 많이 믿었거든요. 들었을 때 정말 좋은 사운드, 정말 좋은 편곡과 선율이 좋은 음악을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이라 생각해요.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가수 크러쉬. 사진. 피네이션

Q. 앨범을 만들며 다방면에서 고민을 거쳤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지금 크러쉬가 가진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크러쉬: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해질 수 있을지 예요. 예전에는 밤새 작업하고 공연을 하더라도 힘들지 않았는데 요즘엔 일어나기가 힘들더라고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가 걱정돼서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겨먹고 있어요. 제 궁극적 목표가 오래 음악을 하는 것인 만큼 제 목숨이 닿는 데까지 좋은 음악을 즐겁게, 재미있게, 건강하게 하고 싶어요. 

Q. 이제 서른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본인의 20대를 되돌아보면 어땠던 것 같나요.
크러쉬: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저는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21살 때 자이언티 형을 처음 만났고 그레이, 로꼬 형들을 만났죠. 쌈디 형과 다이나믹 듀오 형들과도 작업을 했는데,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뚜렷한 목표 의식과 방향성이 없었어요. 그래서 번 아웃이 왔던 것 같기도 해요.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을 때, 지금의 저를 비유하자면 여행을 가기 위해 이제 막 탑승 수속을 한 젊은이 같아요. 목적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아요. 서른이면 목적지가 정해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Q. 오래 음악하려면 건강도 중요하지만 감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경험하는 바가 달라지고, 감이 유지되지 않는 순간을 맞게 될 수밖에 없죠.
크러쉬:
저 역시도 그게 두려워요.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음악가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찰해야 하는 게 숙명 같아요.

Q. ‘크러쉬’하면 피처링과 드라마 OST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인식이 커요. 앞으로 이 사람과 꼭 작업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거나, OST 작업 계획이 있다면 귀띔해주세요.
크러쉬:
나얼 형님이요. 이번에 작업하면서 나얼 형님 작업실에도 찾아갔었는데 음악적으로 좋은 이야기와 조언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얼 형님과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것 말고도 OST 작업은 언제나 좋아요. 사실 아직 ‘도깨비’도 못 봤는데, 이번에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OST의 힘이 정말 크다는 걸 느꼈어요. 노래만 들으면 그 장면이 계속 연상되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OST 작업은 늘 좋은 마음으로 임할 것 같아요.

김예슬 기자 yeye@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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