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이혜리. 사진. 크리에이티브그룹ING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곧 데뷔 10년차를 맞는 혜리에게 ‘청일전자 미쓰리’는 특별하다. 최근 종영한 이 작품에서 선심 역을 맡아 공감대를 자아내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것은 물론, 스스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히트작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역은 물론 매 작품마다 또래들을 대변하며 현실 반영을 톡톡히 해내는 혜리의 꿈은 ‘모든 나이를 담아내는 배우’다. 오는 2020년을 기점으로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혜리를 만나 배우로서 가진 이상향을 들여다봤다.

Q. ‘청일전자 미쓰리’를 찍으며 1년 가까이를 ‘선심’이로 살았어요.
혜리:
공감하면서 울고 웃으며 봐 주신 시청자 분들께 감사해요. 선심이로 살아간 시간이 행복했어요. 이번 작품은 제게도 위로가 됐던 작품이에요. 1년 8개월여 만의 드라마 컴백이었던 터라 걱정도 됐고 부담도 있었죠. 저와는 다른 선심이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도 염려됐지만, 연약하고 불안했던 선심이 조금씩 성장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저 역시도 작품 준비 때 느꼈던 불안함에 대한 위로를 받았어요.

Q. 오랜만의 컴백인데다 타이틀 롤이었어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혜리:
맞아요. 제목에 ‘미쓰리’가 들어가니까 극을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도 됐거든요. 하지만 선배님들을 만나보니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베테랑 선배님들이 계신데 저 스스로 큰 욕심을 냈던 거죠. 선배님들과 융화되고, 제가 선심이가 되어가기만 한다면 좋은 작품이 되는 건데 시작 전부터 부담이 컸던 것 같아요. 감독님과 선배님들을 만나며 조금씩 부담감을 풀어냈어요.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이혜리. 사진. 크리에이티브그룹ING

Q. 선심이라는 캐릭터와 ‘청일전자 미쓰리’를 배우 본인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나요?
혜리:
선심이를 보고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는 ‘평범함’이었어요. 이야기 자체도 특별하지 않고 빛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이야기라 생각했고요. 제일 염두에 둔 건, 이 작품이 ‘우리 옆에 있는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제 친구의 이야기, 시청자 분들의 이야기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생각해서 그걸 기점으로 캐릭터를 잡아갔어요. 이외에도 선심이가 큰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정장해나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연기하려 노력했어요. 처음에는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말단 직원이었다면, 마지막엔 책임감 갖고 직원을 아우르는 대표로 보였으면 했죠.

Q. 직접 아이디어도 냈다고 들었어요.
혜리:
의상을 몇 개만 정해서 그걸 돌려 입는 걸 제안했어요. 사실 우린 매일 새 옷을 입는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드라마를 연기하다보면 매일 새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선심이를 연기할 땐 옷은 다섯 벌, 가방과 신발은 두세 벌만 정해서 계절 변화가 있을 때만 옷을 바꾸는 식으로 아이디어를 냈었어요. 

Q.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와 작품에 대한 애정이 돋보이네요. 그래서인지, 김상경은 ‘청일전자 미쓰리’를 두고 ‘혜리의 인생작’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혜리:
선배님이 그러신 거면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일동 박장대소) 하하. 사실 저는 작품을 하면 시청자 분들의 생각이 정답이라 보는데, 이번 작품을 할 땐 저의 팬 분들이 아닌 일반 중소기업이나 공장에 다니는 분들에게 공감된다는 쪽지를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의 인생작이 됐다면 저 역시도 이번 작품이 제 마음에도 남아있을 거라 생각해요.

Q. 사실 연예인으로 생활하다보면 보통 사람들의 삶을 알긴 힘들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느낀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혜리:
오피스 물도 처음이었는데 저희 작품은 유독 현실과 맞닿아있는 오피스 물이었어요. 그래서 확실하게 느낀 건, 생각보다 참 역경이 많다는 거였어요. 하루하루 평안하게 지나가는 일이 없더라고요. 선심이도 극 중에서 쉴 틈 없이 참 바쁜데, 일반 회사에 다니는 제 친구들도 비슷하다는 걸 듣고 놀랐어요. 연차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애환이 있더라고요. 그것이야말로 직장인의 애환이다 싶었죠. 저는 촬영할 땐 잠도 못 자고 하지만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 전까지 쉴 수는 있거든요. 각자 장단점이 있구나 싶었죠.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이혜리. 사진. 크리에이티브그룹ING

Q. 사회초년생의 애환이란 어느 영역이든 비슷하죠. 걸스데이 데뷔 초의 일들을 생각해보면 일반 회사 신입사원과 비슷한 고충도 느꼈을 법한데.
혜리:
벌써 데뷔한지 9년이나 됐더라고요. 지금은 데뷔 초가 기억도 안 나요(웃음). 하지만 선심이를 연기하고 생각해보니 저도 화가 나고 억울했던 지점들은 있던 것 같아요. 다만 제가 화나는 줄 모르고 ‘알겠습니다’라고 한 적도 많았겠죠. 제가 솔직한 성격인 편인데도, 사회초년생이면 어떤 직업이든 비슷하겠구나 느꼈어요.

Q. 그런 힘든 시간들을 넘어 이제는 10년차를 앞두고 배우로 활동 중이에요. 작품을 촬영하면서는 수지, 설현과 함께 아이돌 출신 배우로 꼽히면서 경쟁구도로 표현되기도 했고요.
혜리:
드라마 할 때마다 아이돌 출신 배우들끼리 촬영 시기가 겹치는 것 같아요. 경쟁이라 말하긴 민망하지만, 다 같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구나 싶죠. 제 이름이 올라간 건 기쁜 일이고요. 경쟁구도라는데 이름이 안 올라가 있으면 너무 서운했을 걸요? 흐흐. 그래서 저는 그런 표현을 기분 좋게 생각하고, 열심히 응원도 하고 있어요.

Q. 걸스데이 멤버들도 이제는 다 ‘연기돌’이 아닌 배우로 전향했죠.
혜리:
저희 네 명이서 똑같은 직업을 갖고 만났다가 다시 다른 똑같은 직업들이 된 거예요. 그 덕에 다른 사람들에겐 말 못할 단점들이나 치부를 언니들에게는 솔직하게 묻고 또 솔직한 답변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만나면 일상 이야기도 하지만 연기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에요.

Q. 연기 욕심이 많은 것 같은데 전작 ‘응답하라 1988’의 흥행 탓에 새 작품을 할 때마다 덕선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요. 인생작을 가진 건 기쁘지만 배우로서는 그 이름을 넘어야 한다는 숙제 같을 텐데.
혜리:
‘응답하라 1988’은 제가 앞으로도 연기하면서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날까 생각할 정도로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아직도 덕선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그건 많은 분들에게 덕선이가 예쁜 캐릭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선 정말 긍정적이죠. 덕선이, 선심이뿐만 아니라 제가 연기한 모든 캐릭터에는 다 제가 들어있어요. 아예 다른 캐릭터나 악역을 맡는다면 그런 말을 안 들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의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장르물보다는 사람냄새 나는 따뜻한 이야기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싶고, 그 안에는 조금씩 덕선이가 묻어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드라마를 준비할 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죠. 이번 작품도 선심이에게만 집중하고 준비했어요.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이혜리. 사진. 크리에이티브그룹ING

Q. ‘응답하라 1988’ 이후 배우로의 기회가 넓어진 건 사실이에요. 그 작품 이후부터 매 드라마마다 주연을 맡았죠. 책임감과 부담감도 넓어졌을 것 같아요.
혜리:
맞아요. 주연은, 정말 큰 차이더라고요. 이걸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도 계속 하고 있어요.

Q. 잘해낼 수 있는 작품으로 방금 전 휴머니즘을 언급하기도 했어요. 친근한 것도 좋지만, 언젠가는 장르물로의 변신을 하게 될 수도 있어요. 배우로서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자신이 맡는 배역에 대한 고민을 하는 편일까요? 
혜리:
저는 계획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에요. 주어진 것에 최선 다하려 하고, 이전에 내가 해왔던 것과 앞으로의 미래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살다보니 10년 전보다 분명하게 성장했고요. 하지만 저는 저의 10년 후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변화의 시점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경험을 쌓다보면 그런 변신을 가질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올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Q. 현재에 집중하자는 게 삶의 목표겠군요.
혜리:
맞아요. 사실 저는 평소에 계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연예인 생활을 하다 보니 생각한 대로, 제 뜻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열심히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고 흘러가는 대로 했는데 큰 사랑을 받은 적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에 충실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계획한 것에 흠집이 가게 되면 그게 큰 위기같이 느껴지더라고요. 데뷔 초에는 걸스데이로서 잘 되지 않은 앨범도 많았고요. 그런 걸 겪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뀐 거예요. 저만의 스트레스 관리 노하우 같은 거죠.

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이혜리. 사진. 크리에이티브그룹ING

Q. 계획을 잡지 않는 편이라지만 내년은 데뷔 10주년이에요. 분명히 의미가 있는 해죠.
혜리:
벌써 10년이구나 싶어요. 그동안 열심히 산만큼 멤버들과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저 혼자서 간절히 하고 있어요(웃음). 저희가 처한 여건이 그러기엔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어서요. 저희끼리는 뭐라도 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안 되면, 저 혼자서라도 해야죠. 저도 10주년인 거니까요. 하하.

Q. 연기 외에도 ‘놀라운 토요일’ 등 예능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혜리:
사실 ‘진짜 사나이’와 ‘놀라운 토요일’만 한 건데도 그 두 가지로 큰 사랑을 받은 것 같아요. ‘진짜 사나이’ 이후 느낀 게 있었는데, 그냥 ‘나’처럼 하는 게 제일 좋다는 거였어요. 그래야 제가 에너지를 쓰기도 편하고 사람들과 날것의 케미스트리를 보여주기에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방송을 할 때도 방송하고 있다는 기분이 안 들거든요. ‘놀라운 토요일’에서도 게스트 분들이 녹화가 끝났다고 하면 “벌써요?”라고 되물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우리 방송이 모든 사람에게 편안한 방송이어서 화면에서 그런 편안함이 느껴진다 싶죠. 제작진 분들이 그렇게 놀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셔서 저는 그냥 저처럼 이야기하고 그럴 뿐이에요.

Q. 예능에서의 즐기는 모습이 ‘진짜배기’였네요. 배우로서도 지난 10년 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줬어요.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서도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인생작’이 추가되는 것도 좋겠고(웃음).
혜리:
저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런 에너지를 작품에 다 녹이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그리고 그때그때의 제 얼굴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어요. 옛날엔 작품을 하는 게 두렵고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돌아보니 19살의 저도, 23살과 26살의 저도 다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을 담아내면서 시청자 분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나이의 얼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10주년은 제게 있어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 될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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