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설명한 퀄컴의 사업구조.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미디어SR 정혜원 기자] 4일(어제) 공정거래위원회와 거대 글로벌 통신장비업체인 퀄컴 간 꼬박 3년 가까이 소요된 법적 공방에서 공정위가 1승을 거뒀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노태악)는 퀄컴에 1조 300억원의 역대 최고 금액의 과징금이 적법하다고 봤다.

5일 공정위에서 이번 소송을 진행하는 권혜지 사무관은 미디어SR에 “(공정위가 지적한) 3가지 위법 사항 중 1개 빼고는 위법성을 인정받았다”면서 “과징금은 기업의 매출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일부 승소라도 과징금의 금액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고, 퀄컴 측이 상고장을 접수하지는 않았지만 상고 의사는 밝혔기 때문에 향후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차분히 말했다.

서울고법은 퀄컴 인코포레이티드와 그 계열사 2개 회사(이하 3사 통칭하여 퀄컴)가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소송(2017누48)에 대해 퀄컴의 청구를 기각하고 공정거래위원회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2017년 1월 공정위는 퀄컴 등이 자신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경쟁 사업자의 사업 활동을 방해한 행위 등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1조 311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는 퀄컴이 경쟁 모뎀칩셋사에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는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 제공을 거절하거나 제한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유지‧남용했다고 봤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전세계 모뎀칩셋시장 점유율 변화 그래프. 퀄컴의 FRAND 확약 위반으로 경쟁자는 줄어들고 있다. 제공. 공정거래위원회

퀄컴이 보유한 표준필수특허는 다른 기술로 대체가 불가능해 완전한 독점력을 갖기 때문에 다른 기술은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해당 기술을 표준으로 지정하되 특허권 남용을 막고 경쟁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 FRAND 확약을 맺는다. FRAND 확약은 표준필수특허 보유자가 특허이용자에게 공정하고(fair), 합리적이며(reasonable), 비차별적인(non-discriminatory)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겠다고 보장하는 약속이다.

퀄컴은 이러한 FRAND 확약을 위반하여 특허를 제공하지 않거나 회피했다. 경쟁 모뎀칩셋사는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고, 퀄컴의 특허를 이용해 휴대폰을 제조해야하는 삼성, 애플 등의 제조사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퀄컴의 계약 조건에 대부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즉 퀄컴은 휴대폰 제조사에 정당한 대가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한 특허 제공 조건을 강제했다. 휴대폰 제조사의 특허를 무상으로 사용하는 등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거래 행위를 했다고 공정위는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퀄컴이 FRAND 확약을 따르지 않아 시장 경쟁 행위를 방해하고 부당한 특허 제공 계약을 체결하고 이행을 강제한 것까지만 인정했다. 휴대폰 제조사들에게 특허를 제공하면서 제조사가 원하는 특허만 선별적으로 계약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모든 휴대폰 제조사가 불공정거래의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정위 권혜지 사무관은 미디어SR에 “퀄컴이 어떤 회사들에게는 특허를 선택할 권리를 준 예외가 있었고 어떤 경우에는 제조사가 요청해 포괄적인 특허 제공 계약을 맺은 경우도 있어서 법원이 인정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재판 결과를 해석했다.

그러면서 “대만, 중국 등에서는 동의 의결이나 합의는 있었으나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받은 건 세계에서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2014년 8월 직권 조사에 착수한 지 5년이 넘게 걸렸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공정위의 승소는 역대 최대 과징금의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퀄컴에 1조원 대의 과징금과 비교해 앞서 공정위는 호남철 담합 사건에 4355억원, 6개 LPG 사업자 담합 사건에 383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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