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미디어SR 권민수 기자] 2021년부터 수익사업용 자산의 최소 1%를 공익목적으로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공익법인이 늘어난다. 정부가 1% 의무지출 대상 공익법인을 자산 5억원 이상 또는 수입금액 3억원 이상(종교법인 제외)으로 범위를 넓혔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상속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지난 7월 심의·의결했고, 2021년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개정을 두고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익법인은 출연받은 자산에 상속, 증여세를 내지 않는 등의 세제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공익사업에 돈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 개정은 자산을 쌓아두기만 하던 공익법인들이 공익사업에 돈을 소비하도록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의무지출 규정 확대는 한국 공익법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미 1969년 조세개혁을 통해 '5% 페이아웃 룰(Payout rule)'을 도입한 미국의 사례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5% 페이아웃 룰'은 공익법인 투자자산의 5%를 의무지출하도록 하는 법이다. 현재 한국 공익법인이 자산을 보유하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가진 것처럼, 20세기 중반의 미국 또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공익법인의 편법적 기업지배와 사익추구 등의 문제도 심각했다. 

이에 미국은 '5% 페이아웃 룰'을 도입해 규제 패러다임을 지출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공익법인이 일회적인 기부나 자선활동보다 전문성 있는 공익목적 투자를 하도록 이끌었다. 

사회적 투자 활성화 물꼬, PRI로 틀자 

미국의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공익목적 의무지출 범위에 '프로그램연계투자(PRI, Program-Related Investment)'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PRI는 소셜 임팩트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에 주식, 채권, 벤처투자 등의 방법으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즉, 미국 공익법인은 보유하고 있는 유휴자산을 통해 공익사업 관련 투자를 집행할 경우 해당 금액을 공익사업 관련 지출로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질병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공익법인이 바이오 기업 주식·채권을 사거나 관련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김 위원은 "미국이 공익목적 의무지출 인정 범위에 PRI를 추가했더니 공익법인이 투자를 활성화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공익법인들이 목적사업 달성에 있어 일반 기부보다 PRI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해당 방식이 재무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곳이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멀린다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으로, 건강 교육, 빈곤퇴치 등을 공익목적으로 삼은 이 재단은 전 세계 유망 벤처기업에 활발히 투자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김 위원은 한국도 PRI를 공익목적 의무지출 범위에 포함해 사회적 투자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공익법인 출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졌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사회적 투자 관련 제도를 마련해 물길을 내줘야 한다. PRI 등에 대한 명확한 근거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PRI 활성화와 함께 마구잡이 투자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도 필요하다. 미국은 공익법인이 본래의 사업 목적을 훼손시킬 수 있는 투자에 대해 미 국세청(IRS)이 과세를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제퍼다이징 인베스트먼트 룰(Jeopardizing investment rule)'을 운영하고 있다. 

공익법인도 스스로 투자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김 위원은 공익법인이 사회적 투자를 할 경우 실무 담당자에 대한 면책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투자에서 손실이 나면 담당자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공익법인이 내부적으로 투자 매뉴얼을 만들어, 해당 매뉴얼을 지킨 사람은 면책하는 방향으로 프로세스를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속 가능한 공익법인 위해서는 '성과측정·투명성' 잡아야

1% 의무지출 규정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공익법인이 지속 가능하게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에도 관심이 높아졌다. 

김 위원은 공익법인이 스스로 공익사업 성과를 잘 내고, 그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곧 지속 가능한 공익법인이 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스로 성과측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위원은 "공공기관이나 SK가 스스로 사회가치 측정을 하는 것처럼 공익법인도 사업의 과정과 결과를 스스로 평가해야 한다. 그 평가 결과를 직원의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방식을 활용한다면 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공익법인이 스스로 운영을 잘하고 투명성을 강화하면, 기부금이 더 모이고 결국 공익법인은 지속 가능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라 덧붙였다.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필요도 있다. 김 위원은 "기부자, 투자자의 기부 문화 발전이 더딘 상황이며, 네트워크도 부족하다. 공익법인 어워드를 개최하는 방식 등으로 문화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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