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구혜정 기자

화 부른 이린위학(以隣爲壑)

백규(白圭)는 중국 전국시대 위(魏)나라 재상이다. 치수(治水)를 담당했으며, 제방 건설과 물 관리를 잘해 위나라의 농업생산을 발전시키는 데 공적이 많았다. 요즘으로 보면 훌륭한 건설부 장관이었던 것이다. 백규는 제방을 높이 쌓고 제방이 개미나 땅강아지가 판 구멍 때문에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조그만 구멍까지도 막아 물이 위나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물은 이웃나라로 흐르게 되면서 위나라에는 홍수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웃나라들은 그 여파로 오히려 홍수가 자주 발생하게 됐다.

백규는 치수에 큰 업적을 이뤘다고 자부하면서, 맹자(孟子)에게 “물을 다스리는 건은 우(禹)임금보다 낫다”고 자랑했다. 맹자는 “우임금이 물을 다스린 것은 물길을 따라 강과 바다를 골짜기(물구덩이)로 삼았는데, 그대는 이웃나라를 골짜기로 삼은것(우이사해위학/禹以四海爲壑, 백규이린위학/白圭以隣國爲壑)은 부도덕한 행위로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짓”이라며 질타했다고 한다. 맹자의 고자장구(告子章句) 하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웃을 골짜기로 삼는다(이린위학/以隣爲壑)'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든지 말든지 아랑곳 않고 자기들 이익만 챙기려는 태도나 자세를 일컫는다.

맹자의 말씀은 자신의 행동이 큰 재앙을 일으키니 큰 일을 하려면 작은 일이라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제궤의혈(堤潰蟻穴)의 경고와도 맞닿아 있다. 개미구멍으로 인해 천 길이나 되는 제방이 무너진다(천장지제 궤자의혈/千丈之堤 潰自蟻穴)는 애기로 같은 시대 법가의 대표적 인물인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편에 등장한다. 어지러웠던 전국시대에만 나만 살고보자는 생각들이 많았던 건 아닌 것 같다. 자신들만 생각하고 성급하게 저지른 일이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모르는 이들은 요즘도 적지 않다. 명색히 대한민국 제1야당이 얼마전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그런 대형사고를 쳤다.  다급해서 그랬다손 치더라도 국민을 외면하고 나만 잘살자는 식의 행동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는 교훈을 재차 확인시켜줬다. 정치적 실리도 못챙기고 욕은 욕대로 먹고 있는 제궤의혈(堤潰蟻穴)의 사태를 맞고 있다.

두 번째는 적반하장(賊反荷杖)

과정은 이랬다.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29일 무더기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 처리를 막았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검찰개혁법안 처리를 봉쇄하기 위해 비쟁점 법안까지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국회 마비를 불러왔다.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여론을 몰아갔으나 뜻대로 되지않았다. 법안 당사자들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특히 교통사고로 희생된 아이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 등)이 무산된 사실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은 확산 일로다. 한국당은 “민식이법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 않았다.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자는 제안을 민주당이 거부했다"고 반박했다.

이 또한 일수차천(一手遮天) 이른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즉 사실관계를 교묘히 왜곡한 해명에 가깝다는 게 정치권의 주장이다. 당초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민주당에 요구했다. 명백하게 ‘민식이법’을 선거법 저지용으로 활용한 발언이었다. ‘민식이법’ 통과를 위해 요구 조건을 내건 사실은 쏙 뺀 채 ‘필리버스터 신청에서 빠졌다’는 점만 강조했다.  알고보니 '민식이법'이 빠진 이유는 해당 법안이 뒤늦게 법제사법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넘어왔기 때문이었다. 민주당은 ‘민식이법 통과만을 위한 본회의는 열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과에 합의한 법들을 볼모 삼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 가운데는 한국당 단독으로 대표 발의한 법안이 26건이고 한국당의 동의로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이 76건이다. 이들 법안 마저 필리버스터 하려고 했느냐며 '자기 부정'‘이라는 성토도 만만찮다. 또 한국당이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내세운 청년기본법, 김정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포항지진특별법, 소상공인기본법, 균형발전법, 벤처투자촉진법 등 민생 법안들도 포함됐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필리버스터에 포함된 199건의 안건에는 국가안보 강화, 자연재해 대비, 지방분권 강화, 전통시장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여성과 농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종선여류(從善如流)가 주는 교훈

어찌됐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로 ‘민식이법’의 지난 달 29일 본회의 처리에 제동을 건 것이 ‘원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 원죄가 되고 있다. 한국당 내부에서도 ‘악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3일 “한국당에 건네는 마지막 제안”이라면서 “모든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데이터3법, 유치원3법, 어린이교통안전법 처리에 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모든 개혁법안의 본회의 부의가 완료돼 이제 실행만 남았다”고 덧붙혔다.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등 검찰개혁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한국당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꽉 막힌 정국을 풀 해법은 결국 여야 협상 뿐이지만, 필리버스터라는 극한 투쟁 카드를 이미 던진 한국당으로서는 민주당 등 다른당과 더 이상 주고 받을 카드가 마땅치 않아보인다.

종선여류(從善如流) 시혜불권(施惠不倦)이라는 말이 있다. 정확한 의견이나 충고는 마치 물이 흐르듯 듣고 따르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 때는 결코 피곤해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귀족 숙향(叔向)이  당시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칭찬한 데서 유래됐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라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특히 허물을 고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좋은 충고나 올바른 지적을  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자기 성찰의 힘이 길러지고 의식이 성숙해야 자기 허물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알고 타인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인다.  정확하게 이시점, 한국당에 충고해주고 싶다. "이번은 정말 당신들 잘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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