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곽관훈 선문대 교수, 김우찬 고려대 교수,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 박경서 고려대 교수, 이동구 참여연대 변호사,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 최경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 사진 : 이승균 기자
[미디어SR 이승균 기자]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부에서 강제가 가능한 사회책임투자를 많은 전문가들은 첫번째로 꼽는다.  사회책임투자는 기업의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요소 전반을 검토해 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투자가 이뤄진 이후에도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면 주주권을 행사해 기업 경영에 관여하는 투자 전략을 의미한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러한 투자 방식을 고려하는 자산은 30조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보편화된 투자 접근법이다.
 
수탁자 책임 원칙이 담겨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사회책임투자 전략 중 하나인 기업관여 및 주주행동 방식을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지침서에 해당한다. 주주권 행사 방식의 책임투자 전략은 비재무적 점수가 낮은 기업을 투자 배제하는 네거티브 스크리닝, ESG 통합 전략에 이어 세 번째로 활용도가 높다. 사회책임투자는 국외 주요 연기금에서도 보편적으로 활용한다. 유럽계 연기금 자금 중 60% 이상, 미국계 연기금의 30%가 사회책임투자 형식으로 자금을 집행하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은 지난 13일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오는 12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해당 내용은 확정되어 실행된다.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 이후 1년여 만의 일이다. 사회책임투자 시장이 전무한 실정인 한국에서 700조원 규모 적립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이 같은 행보는 기업은 물론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13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기존 위탁운용사를 통해 운용하던 4조원 규모 책임투자를 대체투자를 제외한 전체 자산군으로 확대한다. 주식과 채권 그리고 국외 투자에도 2022년까지 적용한다. 위탁운용사의 책임투자도 내실화하기 위해 ESG 중심 벤치마크를 신규 개발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한다.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책임투자 원칙을 제정해 공표하고 조직을 확충한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내용은 기업 관여 전략을 확대 적용하기로 한 점이다. 국내주식은 기업과의 대화 적용 분야를 확대하고 해외주식의 경우 신규로 기업관여 전략을 도입한다. 횡령과 배임 등 사익을 편취하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으로 예상치 못한 우려가 발생하면 비공개 대화기업으로 선정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집중투표제도 활용한다. 선임 이사 수 만큼 의결권을 부여해 최대주주가 특정 이사를 선임하려 해도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결집해 이를 저지할 수 있다.
 
#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정당한가?
 
이에 13일 열린 공청회에서는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 목적 주주권 행사 자체가 정당하냐 아니냐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토론에 참여한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기금운용의 기본 목적인 안정성과 수익성이 아닌 경영참여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장기적 기업가치 향상과 의결권 행사가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참여가 되는 것"이라고 봤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와 수탁자책임전문위의 구조 속에서 기업에 부담만 줄 수 있다는 의견이다.
 
반면, 고려대학교 김우찬 교수는 집중투표제 도입을 통해 국민연금이 실효성 있는 주주권 행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국민연금이 설득해도 안 되는 예외적인 사안에 대해 정관을 개정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이걸 가지고 반론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사 선임, 해임까지 와도 99.9% 국민연금이 제안한 내용이 통과되지 않을 텐데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김앤장법률사무소 전문위원은 국민연금이 책임투자 활성화에 나서는 취지는 좋지만, 집중투표제 등을 도입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 방식이라고 우려했다. 박 전문위원은 "기업은 지배구조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 따라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을 수 있다. 정관변경으로 집중투표제를 요구하면 그런 것들이 도외시 되고 공격당할 수 있다. 강행규범보다 더 무서운 역할을 하게 된다. 기업과 윈윈할 수 있는 대화에 나서야 한다"며 기업이 국민연금을 투자자로서 주주로서 동반자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봤다.
 
이동구 참여연대 변호사는 상장회사가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오늘날 주점관리 대상에 오른 기업들의 경영진 사익편취 등을 판단하는 것은 대단한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나머지 주주권이 강화되는 효과를 발생한다. 주주권 행사는 과도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것을 하는 마땅한 일이다. 나아가 다른 기관과 연대하는 것이 선진국의 수탁자 책임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투자 철회를 포함한 강도 높은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은 "경영참여 주주권과 관련해서 기업과 지속적인 대화도 하고 주주제안도 했음에도 기업의 개선 여지가 없으면 투자 철회를 하는 부분도 집어넣어야 한다. 국민연금은 영향력이 막대한 유니버셜 오너 관점이 부재하다"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이상의 수단 강구를 요구했다. 이 국장은 국민연금이 민간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홍원표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최소한의 대응에 해당한다며 사회를 바꾸는 임팩트 투자에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주주권 행사는 반칙을 하는 상대방에 대응하는 지침이라고 본다. 법령 위반, 횡령 등과 관련해서는 신속하게 주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기금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사회책임투자의 수익성 원칙과 동등한 원칙을 세워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어떤 전략이 유효한가
 
책임투자와 관련해서는 공청회 토론 참여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찬성 입장을 내세웠지만, 투자 전략과 부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곽관훈 교수는 "책임투자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장기투자자로 수익률와 안정성이라는 부분을 전제해야 한다. 그 관점에서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찬 교수도 "책임투자를 한다면 초과수익률을 내든지, 초과수익률이 나지 않으면 정상적인 수익률을 내면서 기업을 변화시켜 위험을 줄이는 둘 중 하나는 되야 한다. 책임투자 전략 중 수동적인 스크리닝 전략, ESG 통합 전략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그동안 학술연구에 따르면 두 가지 전략은 초과수익률을 낸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을 위해 국민연금이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설명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국민연금의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직접 책임투자에 나설 것이 아니라 위탁운용사, 리서치 기관, 투자기관과 협력과 공조를 통해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고 봤다. 류 대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모호한 표현으로 과도한 권한을 주고 내부 인력을 강화하고 늘려가면 책임투자 관련 외부업체는 다 죽는다. 해외 연기금들은 에셋오너와 매니저, 서비스공급자가 공조하며 책임투자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국민연금의 맨데이트(권한)를 갖기 위해 시장의 원칙에 의해 혁신이 일어나고 경쟁력 있는 전략과 방법론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오 사무국장은 "네거티브 스크리닝 합의를 봐야 한다. ESG 프로바이더는 국민연금의 책임투자에서 굉장히 중요한 플레이어다. 위탁운용사 선정 평가할 때 공정운영 과정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이 직접 책임투자를 운용하겠다는 개념은 사회책임투자 생태계를 죽이겠다는 것과 똑같다. 국민연금이 이때까지 가장 소홀했던 것들이 ESG 정보공개 요구다. 이것만 해도 한국의 사회책임투자 수준은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관여를 높여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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