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서초사옥 사진:구혜정 기자

[미디어SR 김병헌 전문위원] 

유상(儒商)의 원조...자공(子貢)

공자(孔子)의 제자중 자로(子路) 다음으로 논어(論語)에 많이 나오는 이가 자공(子貢)이다. 이름은 단목사(端木賜). 춘추시대 위(偉)나라 사람이며 안회(顏回)와 동년배다. 공자가 호학자(好學者)로 평했다. 평생 관직에 나간 적이 없지만 가장 부유하고 성공한 제자 중 한명이다. 정치인이자 기업가였다. 뛰어난 외교술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서 높은 관직에도 올랐다. 노나라의 대부였던 숙손문숙(叔孫武叔)은 자공이 공자보다 뛰어나다고 평했다. 물론 자공은 펄쩍 뛰었겠지만...공자는 그를 호련(瑚璉)”이라고 평가했다. 호련은 제사에 사용하는 옥으로 만든 그릇이다. 당시 옥은 매우 귀한 보물이었다. 자공의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춘추시대 후기에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자유상인’을 대표하는 기업가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통해 부를 쌓았는지에 대해선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사기(史記) 의 기업편이라고 할수있는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따르면 그는 조(曹)나라와 노나라 사이에서 값이 쌀 때 물건을 사서 값이 비쌀 때 팔아 많은 돈을 남겼다.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자공은 사고팔기를 잘해 시세의 변동에 따라 물건을 잘 회전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미뤄보면 자공은 각지의 물자를 사들였다가 가격 변동에 맞춰 거래해 막대한 이익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기업가의 덕목이다. 자공은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면서 미래를 잘 예측해 재물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교묘한 수단이나 법을 악용해 부자가 된 것이 아니다. 순수한 기업가적 판단에 의지해 성공했다. 공자는 “자공이 관의 명을 받지 않고도 재물을 잘 불린다”고 했다. 조정이나 관청과 관계 이른바 정경유착 없이 공정 공평하게 부를 축척했다는 뜻이다. 공자가 자공을 두고 ‘예측을 잘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시장 상황과 가격 변동 등을 잘 헤아려 재물을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제조업이 아닌 유통업으로 막대한 돈을 거머쥔 것으로 보인다.

총수의 품위(品位)=기업의 품격

자공은 거부(巨富)였지만 예를 좋아했으며 공자를 도와 유학을 세상에 떨치게 한 유상(儒商)이었다. ‘의(義)로써 이를 취하고, 이(利)로써 세상을 구한다(以義取利 以利濟世)’는 이념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다. 오늘날도 기업의 총수가 기업의 브랜드이기도 하니 총수의 능력과 기업관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말하고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 셈이다. 존경받고 사랑받지 않을수가 없다.사람에게 품격이 있듯이 기업에게도 품격이 있다. 경영권 계승이 상속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도 다름 아니다. 기업이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지만 브랜드 가치외에 사회적 가치나 사회적 책임을 논하는 것도 품격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말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제조 공장의 문을 닫은 뒤 중국 언론에서 이례적으로 추켜세웠다. 삼성전자가 공장가동 중단으로 직장을 잃은 직원들을 마지막까지 챙긴 모습이 품위가 있었다는 내용이 솔깃하게 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16일 ‘삼성전자는 중국 시장에서 패배자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전자가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공장 문을 닫으면서 품격을 갖춘 것은 삼성전자가 가진 소프트파워를 보여준다"며 중국기업도 삼성전자의 책임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품위와 품격이란 삼성전자가 직장을 잃은 공장 직원들에게 퇴직금 지급을 비롯해 다양한 보상을 한 것을 가리킨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14일 "우리는 지식재산권을 엄격히 보호하고 중국에 등록한 모든 국내외 기업을 동일하게 대우할 것"이라면서 "삼성과 중국의 수년간의 협력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리 총리의 찬사는 기업의 품격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서초구 현대차그룹 본사/현대차그룹 홈페이지 제공

지난11일 현대자동차그룹이 쎄타2 GDi 엔진 결함 논란에 평생 보증을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문제의 엔진을 장착한 2011~2019년형 차량을 보유한 한국, 미국 소비자에게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는 이날 집단소송을 제기한 미국 소비자들과 화해안에 합의했다. 국내 소비자에게도 똑같은 수준의 보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삼성전자나 현대차는 한국을 대표한다. 2%가 부족한 듯 해도 글로벌 초일류 기업들이다. SK와 LG도 못지않다. 하지만 유독 국내에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글로벌하지도 일류도 아닌 국내정치 탓도 있다.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데도 벗어나지 못하는 '반재벌' 정서도 걸림돌이다. 기업들이 수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사회적 가치와 사회적 책임을 부르짖는데도 어딘지 모르게 허허롭다.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글로벌 기업, 거기서 멈춘 느낌이다. 이제는 존경받는 기업, 품격 있는 기업으로 올라서야한다. 임직원, 취업준비생, 협력기업 등 이(利)해(害)로 연결된 관계자들에게만 존경하고 사랑받는 기업은 한 순간이다,

기업이 품격을 갖추려면

22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올해 상장사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등급을 발표했다 746개 평가대상 상장기업 중 74.2%인 553개사가 B이하 등급을 받았다. B+ 등급은 135개사(18.1%), A등급은 50개사(6.7%), A+ 등급은 8개사(1.1%)에 불과했다. S등급을 받은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KCGS는 B+ 등급을 지속가능 경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다소 필요하나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다소 있는 단계로 판정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평균 점수는 상승했으나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KCGS 관계자는 "아직도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체계는 취약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시 자공으로 돌아가 보자.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공자의 이름이 널리 천하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이 공자를 도운 결과”라고 말했다‘ 공자의 수제자 72명 중 자공은 재여(宰予)와 더불어 언변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사업에 유용하게 활용됐을 뿐 아니라 공자의 조국 노나라가 제나라의 침공을 받게 됐을 때 외교사절로 파견돼 위기를 해결하는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공자 사후 유가(儒家)를 하나의 학파로 우뚝 서게 하는 후원자로서 엄청난 역할을 해냈다고 후세 역사가들은 말한다. 물론 자신의 사업에 도움도 됐으리라... 그가 중국 상인의 이상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유상(儒商)의 원조로 추앙받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공은 3대가 부자였는데, 손자 단목숙(端木叔)은 말년에 전 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었지만 자손들에게는 나누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2500년전의 자공은 지금도 품격 있는 기업가나 기업의 품격이 뭔지에 대해 많은 기업인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기업인들이여 각성합시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