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누구에게나 영감은 떠오른다. 다만 이 영감을 어디서 찾는지, 어떻게 발전시켜나가는지, 그리하여 어떤 유의미한 결과물로 이어갈 수 있는지가 무수한 차이를 낳게 된다. 헤이즈는 그 과정의 중심에 자기 자신을 뒀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감정으로 노래하니 자연히 공감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믿고 듣는다는 수식어를 넘어 이젠 ‘헤이즈’라는 이름만으로도 그의 노래는 하나의 지표로서 자리매김하게 됐다. 모든 나날들의 상황과 감정을 대변하는, 헤이즈는 어느새 우리 모두의 나날들을 노래하고 있다.

Q. ‘떨어지는 낙엽까지도’와 ‘만추’, 가을에 꼭 어울리는 더블 타이틀이에요.
헤이즈:
두 곡 모두 가을의 이미지를 연상하며 만든 곡들이에요. ‘떨어지는 낙엽까지도’는 어느 날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저렇게 가을과 겨울을 거쳐 봄이 오는 것을 떠올리다 나온 노래예요. 낙엽이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도 앞으로의 아름다운 날을 위한 준비과정이니까,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도 또 다른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준비과정일 뿐이고 슬픈 역경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준비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두 번째 타이틀 ‘만추’는 오래 만났던 연인의 변심을 느꼈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듣기 싫어서 먼저 이별을 고하며 차갑게 돌아서는 과정을 느낀 곡이에요. 그 저변엔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이유가 깔려 있죠. 사실 이 곡은… 제 경험담이에요(웃음).

Q.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노래가 더욱 잘 와 닿는 것 같아요.
헤이즈:
저는 OST나 참여곡이 아닌 제 노래를 전부 제 경험담으로 쓰거든요.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도 일기를 쓰면서 거기에 멜로디를 붙이다 나온 거였어요. 그게 저만의 작업방식인데, 실제 있었던 일들을 가사로 쓰는 게 더 몰입도 잘 되더라고요. 지난해에 ‘바람’이라는앨범을 만들 땐 예전의 상황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 앨범 이후 처음으로 이번 앨범을 만들 때 다시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정선에 좀 더 저를 몰입시키려 하다보니까 힘들었어요. ‘만추’를 쓸 땐 울기도 했죠.

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Q. 가사도 좋지만, 헤이즈의 노래는 멜로디뿐만 아니라 음악 자체가 귀에 잘 들린다는 느낌이에요. 싱어송라이터로서 노래를 만들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 편인가요?
헤이즈:
첫 번째는 주제, 두 번째는 가사, 세 번째는 멜로디예요. 저는 노래마다 소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랑과 이별이 다 같진 않잖아요. 그런 것들을 다양하게 담고 싶어서 소재를 잘 잡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가사를 쓸 땐 ‘포장하지 말자’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심어놓고 있어요.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다소 지질하게 들릴지라도 있는 그대로 쓰려 해요. 제 연애사를 아는 주변인들은 제 사연을 다 알고 있으니까, 지인들이 봐도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대한 솔직하게 쓰고 있어요.

Q. 경험담과 일기가 중요한 창작의 원천인 셈이네요. 지금도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나요.
헤이즈:
전처럼 형식을 갖춰 쓰진 않지만 메모장에 항상 메모를 해놓고 있어요. 매일 느끼는 점을 두서없이 적어놓고 있죠.

Q. 오늘도 헤이즈의 메모장에 적힐 만한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데뷔 후 언론을 대상으로 첫 인터뷰를 가진 걸로 알고 있어요.
헤이즈:
맞아요. 앨범을 벌써 여러 장 냈지만 앨범에 대해 온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아쉬웠거든요. 특히 이번 앨범은 싱글로 만들려다가 점점 살이 붙어 미니앨범이 된 거라 더욱 자랑스럽고 애정이 커요. 이 앨범을 굉장히 사랑하게 될 것 같아서 열심히 앨범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Q. 더블 타이틀 중 ‘만추’는 크러쉬와 첫 호흡을 맞춘 곡이에요.
헤이즈:
이 곡을 쓰고 나서 떠오르는 분이 크러쉬 님뿐이었어요. 친분이 없는지라 회사를 통해 부탁드렸는데 바로 수락해주셔서 감동을 받았어요. 작업 속도도 정말 빠르셨고 1차로 보내주셨던 결과물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다 결정되기도 했어요. 작업과정이 정말 순조로웠죠. 크러쉬 님의 멜로디 라인이 제게 정말 필요했는데 덕분에 이 곡이 잘 완성된 것 같아요. 원래는 ‘떨어지는 낙엽까지도’만 타이틀이었는데, 마지막에 써서 넣게 된 곡이 ‘만추’였거든요. 정말 만족스러워서 마지막에 타이틀로 추가를 시켰어요. 지금도 정말 좋아요.

Q. 곡에 대한 감과 만족도가 늘어나서일까요? 이제는 기존에 붙던 ‘음색깡패’, ‘음원깡패’, ‘고막여친’ 등의 수식어가 아닌 ‘수식어가 필요 없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헤이즈의 이름 앞에 자리하게 됐어요.
헤이즈:
정말 좋고 기뻐요. 수식어가 붙지 않는 순간부터 틀이 깨지는 것 같거든요.

Q. 대중에 자신의 노래가 사랑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헤이즈:
시대를 정말 잘 타고 난 거죠. 음색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시작될 때 제가 나타난 것 같아요. 음원강자라는 타이틀이 생겨나는 시점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 솔직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써서 많은 분들이 더 공감해주신 덕분이라고도 생각해요.

Q.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사적인 게 가장 보편적이다’는 명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죠. 
헤이즈:
딱 맞는 말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결국은 똑같거든요. 모두가 알고 보면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모두가 공감해줄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제가 대신 하니까 더욱 더 과장 없이 특별한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Q. 앨범 수록곡을 보고 사람 사는 것도, 사람 취향도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거에 많은 이들에 사랑 받았던 캔디맨의 ‘일기’가 리메이크 버전으로 실린 걸 보고 정말 반가웠어요.
헤이즈:
제가 싸이월드를 하던 시절에 배경음악 설정하는 것에 정말 공들였었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배경음악을 설정할 수 있는 SNS가 없어요. 그래서 그때의 감성을, 지금은 모르는 분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싸이월드 콘셉트의 리메이크를 구상했어요. 그래서 당시 제 싸이월드의 오랜 배경음악이었던 캔디맨 선배님의 ‘일기’를 다시 부르기로 했죠. 리메이크 시리즈를 생각했는데, 녹음해보니 이번 앨범과도 잘 맞아서 수록곡으로 넣게 됐어요.

Q. 트랙포스터부터 앨범의 이름 ‘만추’(晩秋)까지, 가을을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이미 계절마다의 대표곡들이 있는데 이제 가을 역시 헤이즈의 계절이 되겠네요(웃음).
헤이즈:
이번 앨범은 발매 시기부터 늦가을을 겨냥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떨어지는 낙엽까지도’가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이 가을에 떠올릴 수 있는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만추’는 가을에 이별한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노래가 되면 좋겠어요.

Q. 여름을 노래하는 ‘앤 줄라이’(And July)부터 겨울에는 ‘첫눈에’, 비가 올 땐 ‘비도 오고 그래서’ 등의 대표곡이 있어요. 이제 가을노래가 추가됐으니 다음은 봄노래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도 생겨요.
헤이즈:
제가 원래 자연과 제 삶에서 영감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봄은 ‘썸’도 타고 풋풋하며 행복한 계절인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그런 감정을 경험한지가 꽤 됐거든요(웃음). 봄에 대한 노래는 아직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이번 봄에 좋은 일이 생긴다면 내년 봄에 그런 노래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그럴 계획이 세워지지가 않아서…(일동 박장대소).

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Q. 솔직한 답변이 신선하게 와 닿았어요(웃음). 혹시 다른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걸까요?
헤이즈:
정말 많죠. 이번 앨범에서도 다른 색을 입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기리보이 님에게 곡을 받았어요. 노래가 정말 좋아서 회사에서 곡을 수급해 들려주시기도 했죠. 여러 곡들을 들어보고 또 불러보면서 제가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을 선별하려 해요. 앞으로는 다른 작곡가 님들의 노래를 앨범에 한두 곡씩은 넣고자 생각 중이에요.

Q. 곡을 꼭 받아보고 싶은 작곡가가 있다면.
헤이즈:
윤상 선배님이요! 제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에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이문세 선배님, 윤상 선배님, 변진섭 선배님, 이적 선배님, 유희열 선배님들의 음악을 듣고 자랐거든요. 분명히 제 지금 음악에도 영향을 주셨을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꼭 곡을 받고 싶어요. 정말 좋을 것 같아요.

Q. 반대로 곡을 선물해주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요?
헤이즈:
아직은 없어요. 원래는 대선배님들께 곡 선물하는 게 꿈이었는데, 일전에 이문세 선배님께 곡을 드리면서 그게 해소됐거든요. 앞으로도 어떤 분께 곡을 드릴지 열심히 생각해보려 해요.

Q. 보통 나이가 들면서 같은 경험을 해도 느끼는 바와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지잖아요. 헤이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곡을 쓰는 만큼,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어쩌면 조급함이 들 수도 있는 거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도 있죠.
헤이즈:
20대 초반에 낸 앨범엔 제 꿈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곡이 많아요. 한창 제 이름을 알리면서는 여기저기서 연락이 너무 많이 온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도 있고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에 대해서도 곡을 쓰고 이별과 사랑, 비, 밤하늘의 별을 봐도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영감이 어디서든 튀어나왔거든요. 하지만 2016년쯤부터는 정말이지 일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저의 시야 자체가 좁아졌고 점점 새로운 영감이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곡을 쓸 때 몇 년 전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거든요.

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Q. 영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걱정도 들겠어요.
헤이즈:
고민되긴 하죠. 특히 최근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영화도 보고 책도 읽어보는 등의 대안을 생각했지만 걱정되긴 돼요. 그래도 살면서 계속 새로운 일들이 생기니까 그때마다 색다른 것들을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하지만 아주 마음은 못 놓겠어요. 삶에 변화가 정말 없거든요. 늘 똑같아요. ‘바람’ 앨범을 만들 땐 혼자 프라하로 여행을 떠나서 앨범을 완성시켜 왔거든요? 작업하기엔 정말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무서웠어요. 곡은 마음에 들게 잘 나왔을지라도 앞으로 다시는 혼자 여행가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여러 가지로 고민 중이에요, 지금도.

Q. 3년여 동안 일만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헤이즈:
그렇지는 않아요. 일만 한 것 자체가 너무나도 자의적인 결정이었거든요(웃음). 에너지와 마음, ‘멘탈’ 등이 가장 좋았던 시기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저는 ‘언프리티 랩스타’를 할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이게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이 시기가 그리울 것이라는 걸요. 일만 하다 보니 놓친 것도 많지만, 그럼에도 저는 정말 후회가 없어요.

Q. 이렇게까지 음악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헤이즈:
팬 분들이 커요. 예전에는 혼자 좋아서 음악을 만든 거지만 이제는 저를 기다려주시는 팬 분들이 생겼잖아요. 항상 제가 생각해야 할 분들이고, 또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도 안 된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제 원동력은 온전히 제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니까요. 

가수 헤이즈. 사진. 스튜디오블루

Q. ‘언프리티 랩스타’ 때 이미 느껴봤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방송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변화가 없는 현 상황을 활동 영역의 확장으로 바꿔갈 여지가 있는 거죠.
헤이즈:
저도 그건 느껴요. 하지만 방송을 잘 하지 않는 이유가 꽤 많아요. 회사에서도 일단 제가 방송활동에는 재능이 없다고 보시는 것 같고(웃음), 저 역시도 자신이 없긴 해요. 저는 행사 시즌을 제외하고는 365일 내내 앨범을 만들고 있거든요. 그런데 방송을 활발하게 하기 시작하면 앨범을 만드는 데에도 분명히 지장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 고민을 하게 되는 지점이 생기죠. 하지만 조만간 방송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기대해주세요(웃음).

Q. 대중에 헤이즈라는 가수를 알리게 된 본격적인 계기가 ‘언프리티 랩스타’인데, 당시엔 랩을 주로 선보였어요. 그리고 그 후부터는 감성적인 음악 위주로 발표하고 있죠. 어떤 게 헤이즈 본연의 음악에 더 가깝나요?
헤이즈:
저는 원래 노래와 랩을 함께 했어요. 지금도 써놓은 곡 중에 랩만 있는 것들도 많아요. 그런데 앨범을 구성할 때면 앨범의 전체적인 색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있어서 제외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노래만 할 생각은 없고, 앞으로 랩 곡들도 발표하게 될 것 같아요. 랩과 노래 둘 다 좋거든요, 저는.

Q. 형식면에서도 새로운 확장을 기대해 볼 수 있겠는걸요(웃음).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 다양할수록 듣는 사람 입장에선 더욱 신선하게 와 닿고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헤이즈:
앞으로도 저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솔직한 모습으로 음악을 들려드릴 테니, 계속 기대해주시면 좋겠어요. 열심히 음악을 만들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힘든 일을 겪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떨어지는 낙엽까지도’를 듣고 힘을 얻으시길 바라요. 어려움만 딛고 일어서면 무조건 더 나은 다음으로 넘어가는 걸 믿고 있고, 저는 항상 그걸 경험해왔거든요. 그렇게 제 노래로 위로를 얻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