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임시완은 기회에 강하다. 다수 작품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10년의 시간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을 완벽히 해내며 배우로의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군 복무 후 신작 ‘타인은 지옥이다’를 마친 임시완은 이성적이었던 자신이 감성적으로 변했다며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날카로운 이성을 갖고 늘 냉담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감성에도 치우쳐보고 싶단다. 지금의 젊음을 만끽하리라 마음먹은 그는 연기를 즐기는 배우로의 진화를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임시완은 최선이라는 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새로운 기회를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Q. 살이 정말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임시완:
그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불한당’을 찍을 땐 살이 많이 쪘었거든요. 그래서 군대에서 살을 좀 빼봤어요. 잘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Q. ‘타인은 지옥이다’가 제대하고 첫 작품이었던 만큼 부담감도 없잖아 있었을 것 같아요.
임시완:
첫 작품이니까 부담스럽지 않은 작품을 골랐어요. 10부작이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덜했고, 웹툰 원작도 재밌게 봤었거든요. 

Q. 답답하면서도 착한 듯한, 윤종우는 묘한 캐릭터였어요.
임시완: 제 의도가 바로 그런 거였어요. 착하지만은 않게끔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보통 피해를 받는 쪽은 착한 편이지만, 그렇다 해서 무조건적으로 착하게 보이기보단 나쁜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죠. ‘착하다’와 ‘나쁘다’의 중간 지점에 닿게끔 아슬아슬하지만 결국엔 그 선을 넘어 부정적인 사람으로 표현하려 했어요.

Q. 장르물 특성상 어두운 분위기가 주를 이뤘어요. 촬영을 마친 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까지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임시완:
아예 없었어요. 심각하게 찍지를 않았거든요. 감독님이 즐겁게 찍자는 주의였어요. 그래서 저는 1, 2회의 드라마 톤을 보고 많이 놀랐어요. ‘아 맞다, 우리가 이런 장르의 드라마를 찍었었지’라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웃음).

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Q. 전반적으로 잔인한 장면도 많았어요. 그럼에도 ‘타인은 지옥이다’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임시완:
잔인했던 건 장르의 다양성 측면으로 바라봐 주시면 좋겠어요. 저 역시도 시청자로서 잔인하고 기괴한 걸 잘 안 보는 편이지만, 작품의 메시지를 표현할 때 필요하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제가 느낀 메시지는 분명해요. ‘타인은 지옥이다’는 말 그대로 타인이 지옥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직설적으로 표현된 거라 생각하거든요. 결국 종우 역시 구석으로 내몰리며 믿을 구석이 사라지자 최후에는 타인에게 지옥이 돼버리죠. 그래서 저는, 저희 드라마가 타인이 지옥이 되지 않게 하려면 상대방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아요.

Q. OCN이 최근 ‘시네마틱 드라마’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등의 시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배우 본인이 현장에서 느낀 새로운 점이 있었을지 궁금해요.
임시완:
기술적으로 영화와 드라마타이즈의 구분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다른 점은 있었어요. 드라마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대사를 기다려줘야 하는 지점이 있어요. 시청자로 하여금 상황을 인지할 수 있게끔 해야 해서, 보다 더 안정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대사를 할 때 서로 약간의 순서가 정해진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서로의 대사를 기다려주진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대사를 쳐야 할 것 같은 때면 바로 들어갔죠. 중간 추임새를 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런 면에선 자유로웠던 작품 같아요.

Q. 처음으로 임시완이라는 사람을 배우로 주목 받게 한 ‘해를 품은 달’과 배우로의 도약을 이끌었던 ‘미생’, 두 작품 모두 원작이 있는 리메이크예요. 이번 작품을 고를 때 기존의 이런 성공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었나요.
임시완:
일단, 저는 원작이 있는 작품을 리메이크 하는 것에 호의적인 편이에요. 특히 요즘은 웹툰 영역에 새로운 장르적 시도로 평가 받는 작품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었을 때 이제까지 못 봤던 새로운 콘텐츠를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호의적인 마음을 갖고 있죠.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런 것보단 부담 없이 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Q. 원작이 있는 만큼 기댈 부분이 있다는 건 큰 장점 같아요. 미리 이야기의 줄기를 알고 있으면 촬영 순서가 뒤섞여도 내가 어느 감정 선을 유지해야겠다는 지표는 갖고 있는 셈이니까.
임시완:
그럼에도 미묘한 흐름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그건 늘 쉽지가 않은 작업이에요. ‘타인은 지옥이다’에서도 종우의 신경이 쇠약해지면서 눈빛이 풀리는데, 쇠약해지는 순서대로 작품을 찍는 게 아니거든요. 그 흐름을 갖고 가면서 연기해야 하니까 어려웠죠. 과거에는 그런 걸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대사 지문보다 더 빼곡할 정도로 했는데, 지금은 그러진 않아요. 어느 순간 언어로서 제 생각의 폭을 제한하게 되는 한계성을 느끼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필요하다 싶은 몇 가지만 적어두고, 감을 유지하려 해요. 그러다 비언어적 행동이나 표정으로 감정을 표출하려 하죠.

Q. 연기에 있어 방식 자체를 바꿔버린 거네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임시완:
‘미생’ 바로 다음부터 그렇게 제 자신을 바꿨어요. 공부하듯 연기를 접근하기 보단 날 것 그 자체로 즐기며 해보자는 생각이 생겼거든요.

Q.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다면요?
임시완:
연기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어요. 연기라는 작업 자체가 제겐 인고의 연속이었거든요. 감정 신을 찍을 땐 슬픈 감정 속에만 있어야 하고, 재밌는 감정을 느끼면 안 되니까 평상시의 모든 걸 제한하곤 했어요. 작품을 할 때도 수능 공부를 하듯 치열하게 대본을 보고 또 접근했죠. 아마 그렇게 공부했으면 대학교를 더 좋게 갔을 걸요?(웃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다보니까 문제가 생겼어요. 연기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걸로 인해 성취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다음 작업이 두려워지는 거예요. 이렇게 하다보면 연기를 오래 못 하겠다는 불안감이 그 당시에 들더라고요.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필연적으로 바꾸게 됐죠.

Q. 그 결과, 지금 연기 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달라졌나요?
임시완:
그럼요. 충분히 달라졌고 또 재미도 있어요.

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Q. 주변에서 연기에 대한 접근방식에 변화를 준 걸 알아차린 사람도 있었을까요.
임시완:
있었어요. 특히 ‘불한당’을 찍던 때에는 ‘또 다른 연기를 봤다’는 의견들이 많았어요. 그런 방식으로 ‘원라인’에 이어 ‘불한당’을 찍은 거였는데, 이렇게 연기를 접근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Q. 자신감이 생기면 생길수록, 반대로 자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을 것 같아요. ‘내가 이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식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된 거잖아요.
임시완:
그냥 저는, 언제나 최고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이 정도까지만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비슷한 이야기지만, ‘미생’의 연기를 지금 다시 보면 부족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보여요. 하지만 지금 다시 ‘미생’을 해보자 하면 저는 못할 것 같아요. ‘불한당’도 마찬가지예요. 당장에 ‘타인은 지옥이다’를 다시 해보자 하면 그 역시도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언제나 저는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Q. 그런 임시완에게 가장 큰 만족도를 안겨준 작품은 무엇인가요?
임시완:
만족하는 부분이 다 달라요. 상대적으로 만족도가 컸던 건 ‘변호인’과 ‘미생’, ‘불한당’이에요 ‘변호인’은 송강호 선배님과 연기를 하면서 처음으로 계산되지 않은, 저조차도 모를 감정이 훅 올라오는 장면이 있어요. 접견실 장면인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연기가 이런 걸 지향하는 건가 싶어서 저도 그 감정을 열심히 쫓았죠. 연기로서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변호인’에서 처음으로 느꼈어요. ‘미생’은 너무나도 훌륭한 저의 인생작이고요. ‘미생’으로 위로 받고 ‘미생’을 보며 자라왔다는 분들이 아직까지도 계셔서 그런 부분에서 만족도가 높아요. ‘불한당’을 통해서는 저의 바뀐 연기스타일을 인정받은 덕에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어요. 

Q. 납득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네요. ‘타인은 지옥이다’를 통해서는 어떤 만족을 얻었나요?
임시완:
장르를 불문하고 연기를 놀이처럼 할 수 있던 점이 만족스러워요. 정말 재미있게 찍은 작품이거든요. 감독님이 잘 노는 배우들을 데리고 현장을 놀이터처럼 만들어주신 터라 소꿉놀이를 하듯 창의적으로 연기를 시도해볼 수 있었어요.

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Q. 새로운 시도는 깨달음을 가져다주곤 하죠. 창의적인 시도 덕에 연기적인 성장을 새롭게 일궈낼 수 있었을 법한데.
임시완:
평상시에 생활연기가 들어가는 부분에서 만족을 크게 느끼긴 했어요. 진부하게 들릴 수 있는 대사를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표현을 한 장면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돼서 스스로도 만족스러워요. 레이몬드 챈들러의 책 ‘높은 창’을 언급한 부분이나, 극 중 석윤이와 대화하는 장면이 제가 만족하는 부분들이에요. 감독님이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적극 반영해주셨거든요. 자유롭게 표현하다보니 연기도 풍성해진 것 같아요. 연기를 갖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발전시킨 것 같아 뿌듯해요.

Q. 연기 10년차인데도 계속 발전하고 진화하는 게 인상적이네요.
임시완:
에이, 저는 한참 멀었죠. 벌써 10년이나 됐다는 것도 달갑진 않아요. 군대 기간도 빼야 하고요. 연차가 적어야 더 무모한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잖아요. 연기 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정말 무모한 건데,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건 얼마 안 됐을 때나 가능한 거죠. 그땐 못 하더라도, 실패를 하더라도 그러는 게 당연한 시기잖아요. 그런 점에서 10년차라는 타이틀은 좋게 다가오지만은 않아요.

Q. 어떤 것을 10년이나 했다고 하면 자연히 기대가 따라붙기 마련이니까요. 부담감 속에서도 확신을 얻어가는 순간들이 점점 더 절실해지죠.
임시완:
 연기를 몇 년 했다고 말하는 게 제게는 가장 쓸데없는 이야기 같아요. 당장 제가 다른 작품에서 저와 맞지 않은 옷을 입으면 어색해보일 수 있는 거고요. 그냥 작품들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것뿐이라 생각해요. 선배님들도 비슷한 생각 아닐까요? 이 작품이 과연 내게 잘 맞을까 고민하다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또 하나 해냈다’며 안심하는 거고, 매번 고민하고 부딪히며 갈등하고 해내면서 안심해나가는 연속이라 생각해요.

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Q. 군 복무를 한 뒤 연기를 바라보는 마인드에도 변화가 생겼을까요?
임시완:
변화보다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 더 생겼어요. 2년 동안 연기를 못 했으니까요. 감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있었죠. 그게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요소로 작용했고요. 10부작은 큰 부담이 없잖아요. 그런 생각들 외에는 원래 제가 하던 대로 연기에 접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크게 달라져야겠단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Q. 제대 후 30대의 배우로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됐잖아요. 자신의 30대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임시완:
계속 젊은 기운을 발산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무모할 땐 무모하게 부딪히고 싶고요. 제가 오히려 20대 때에는 매사에 차갑고 냉정하게,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젊음이라는 단어를 만끽하고, 젊음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싶어요. 이성보다는 감성에 치우쳐보고도 싶고요.

Q. 냉정을 고집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임시완:
뭔가를 선택한다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웬만한 건 다 안 한다고 했었죠. ‘적도의 남자’도, ‘불한당’도 다 어려워서 못 하겠다 했었어요. ‘오빠생각’은 하면 어려보일 것 같다고 못 하겠다 했고요. 일단 “아니요”라고 답하는 게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무모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스케줄이 생겼다고 하면 “그래요? 일단 해요”라고 하는 편이에요. 

Q. 생각 방식이 완전히 바뀐 거네요. 군대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친 건가요?
임시완:
아직까지도 충분히 젊으니까 생각이 늙지는 말자 싶었거든요. 점점 제 자신이 고착돼가는 게 느껴지니까 그러고 싶지 않았죠. 물론, 고착된다면 나중엔 심리적으로 안정감 있긴 할 거예요.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자연히 안정화가 될 거니까, 벌써부터 그걸 즐길 필요는 없겠다 싶었죠.

Q. 오히려 어릴 때 애늙은이 소리를 들었겠어요(웃음).
임시완:
맞아요. 하지만 물론 그만의 미덕이 있었겠죠? 

배우 임시완. 사진. 플럼액터스

Q. 그룹 제국의 아이들로 함께 활동했던 김동준과 일전에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임시완이라는 사람에 대해 “늘 믿고 따를 수 있는 형”이라는 말을 했죠.
임시완:
동준이에겐 늘 진심어린 조언을 하죠. 동준이가 ‘보좌관’ 촬영 전에 대본을 같이 봐 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실제로 대본을 같이 보진 않았지만, 감독님과 대화 많이 나누면서 하라는 등의 이야기를 해줬어요. 동준이 외에도 제국의 아이들 멤버들과는 지금도 교류하며 지내요. 형식, 동준이에겐 간식차를 보내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광희와는 서로 안 주고 안 보냈어요(웃음). 광희는 예능 촬영이 많은 편인데, 예능 촬영장 특성 상 간식 차 배달이 어렵지만 저는 얼마든지 받을 수 있거든요. 아, 보내달라는 의도 없이 그냥 저는 사실만 이야기하는 거예요(일동 박장대소).

Q. 멤버들과의 호흡은 여전하네요(웃음). 데뷔를 하며 여러 고락을 함께 한 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본인만의 길을 잘 개척해나가고 있어요. 앞으로 꿈꾸는 배우로서의 이상향이 있을까요.
임시완: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러면서 연기를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 저는, 계속 연기를 즐기고 싶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소처럼 열심히 일하려 합니다. 아직 기운이 꽤 남아있거든요.

Q. 소처럼 일한다는 말이 참 기대되는걸요. 미처 꺼내지 못한, 배우 임시완의 또 다른 새로운 얼굴들이 있겠죠?
임시완:
글쎄요. 저도 그걸 기대하고 있어요. 여러 다른 모습들이 나와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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