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直說後談] 명실상부한 따뜻한 금융을 위하여
[김병헌의 直說後談] 명실상부한 따뜻한 금융을 위하여
  • 김병헌 전문위원
  • 승인 2019.09.2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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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미디어SR 김병헌 전문위원] 

빚과 고리대금, 그리고 서민

예일대 교수 출신인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인류 경제의 역사는 신용, 즉 부채(負債)의 역사였다고 정의한다. 인류 초기에 부채는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는 힘이었다. 부채를 가능하게 하는 신뢰가 집단을 유지하는 큰 힘으로 작용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부채는 인간 사회에 위협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 됐다. 고대부터 인류는 부채에 따른 이자가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를 적용해왔다. 대부분 종교도 과도한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高利貸金)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 '돈 꿔 주고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경구는 마태복음 말고도 신약성서 도처에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는 교환을 위해 만든 것, 이자는 축재 방법 가운데 가장 자연에 반(反)한다”고 설파했다. 고대, 중세에 고리대금이 널리 성행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기원전 5세기 로마의 '12표법(表法)'은 연 12%의 금리 상한 규제법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은 16세기 당시 유럽에서 고리대금업이 얼마나 횡행했는지 가늠케 한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의 인신 담보(擔保)에서 시작된 질(質)과 당(當)은 경제적 의미의 전환을 거치면서 한대에 이미 초기 전당(典當)업 형태로 발전했다. 남북조시대에는 사원을 중심으로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소비대차형태는 ‘장리(長利)’였다. 물품 고리대금이다. 쌀이나 보리를 빌려주고 수확기에 절반 이상을 더해 받는 형태다. 보릿고개부터 추수까지 8~9개월인데 연 50~70%의 고리대금을 받았다. 조선의 고리대금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리’에 더해 ‘갑리(甲利)’까지 생겼다. 말 그대로 곱으로 쳐서 받는다. 화폐로 빚을 지면 3배, 곡물로는 5~7배로 갚아야 했다. 세계 최고의 수퍼 고리대금업자가 옛날 우리나라에 있었다.

돈도 일반 상품처럼 수요 공급이 만나는 곳에서 가격이 정해진다. '돈값' 즉 금리(金利)가 생겨나는 것이다. 금리의 인식이 보편화된 것은 중상주의와 산업화를 거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꽃핀 근세 이후다. 우리나라의 경우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리대금업자나 사채업자의 횡포는 심심찮게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단속과 지나친 고금리 규제 덕택에 불법 고리대금업자나 사채업자들도 줄어든 듯하다. 서민금융을 표방하는 대부업도 쪼그라드는 형국이다. 대형업체들은 영업을 축소하거나 업종 전환에 나섰고, 중소형 업체들도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동의하지않지만 서민금융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있다는 일부 우려까지 나온다. 필요악이라는 측면이다. 국내 최대 대부업체인 산와대부(산와머니)는 지난 3월부터 신규 대출을 중단했다. 전국 지점을 30개 이상 폐쇄했고, 기존 대출 회수만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철수설이 무성하다. 업계 2위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와 4위 웰컴크레디라인대부(웰컴론)는 2024년까지 폐업할 예정이다.

몰락하고 있는 대부업계...우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대부업체 이용자는 2015년 267만 명에서 2018년 221만 명으로 줄었다. 경기 침체 탓인지 연체율은 같은 기간 4.7%에서 7.3%로 뛰었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상위 4개 업체 중 3개가 사업을 접는다는 건 업종 자체가 몰락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도 올들어 10% 안팎에 머문다. 대출을 신청한 10명 중 9명이 거절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업의 급격한 위축은 저신용자를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 위험을 키울수도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새 대부업 대출을 거부당한 사람의 14.1%가 불법사금융을 이용했다. 불법사채 평균 이자율은 연 353%에 달한다. 아직도 적지않은 서민들이 엄청난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불법 사금융을 이용한다는 방증이다. 뒤집어 말한면 정부의 서민금융 확대 노력에도 금융기관의 문턱이 아직 높다는 의미다. 대부업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최고 금리규제다. 정부는 연 66%이던 법정 최고 금리를 24%로 끌어내리고, 저신용자를 위한 정책대출을 늘리는 등 대부업계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서민금융 지원 대상인 신용등급 6등급 이하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913만명에 이른다 . 또 차상위 이하 가구가 290만 가구이다. 가구당 구성원을 3명으로 계산하면 900만명에 달한다. 신용등급 6등급 이하와 차상위 가구를 더하면 인구 중복을 감안해도 줄잡아 1500만명이 서민금융의 잠재적인 고객이다. 지난해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은 서민들이 207만명이다. 이 들이 서민금융의 직접적인 지원 대상이다.

격탁양청(激濁揚淸), 정부 금융권 노력해야

지난해 정부와 금융권의 서민금융 지원실적을 보면 서민금융진흥원에서 33만5000명에게 3조9000억원을 지원했다. 은행권 새희망홀씨를 통해서는 21만명이 3조원 지원을 받았다. 합해야 54만5000명이다. 제도권에서 대출을 거절당한 수요까지 감안하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등 인터넷 은행도 규모면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이들도 중금리 대출을 중심으로 대출금을 크게 늘려가 2018년 3분기 기준 대출 잔액이 7조 7886억원에 이르고 있다. 시중은행 대비 3% 수준이다. 저축은행도 인터넷은행과의 중금리 대출경쟁 등으로 힘들어 하지만 지금보다 많은 부분에서 서민금융의 역할을 해나가야 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구당서(舊唐書) 왕규전(王珪傳)에 따르면 왕규는 당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신하로 특히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태종이 어느 날 중신들과 주연을 즐기던 중 왕규에게 본인을 비롯한 여러 중신들 인물평을 시켰다. 그는 내로라하는 재상들의 실무 능력, 전문성, 충성심, 청렴함 등 그 사람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자신은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단지 “혼탁함을 제거하고 깨끗함을 드날리며(격탁양청/激濁揚淸),사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량한 것을 좋아하는(질오호선/嫉惡好善)면에서는 제가 약간 낫습니다.” 인재 발굴에 특출하다고 평가받는 자신의 장점에 대해 덧붙인 말이 격탁양청이다. '탁한 흐름을 부딪쳐 흘려보내고 맑은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악을 제거하고 선을 권장하는 비유로도 쓴다. 지금은 저금리 기조가 대세다. 저금리라해도 은행 문턱이 항상 높았던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남의 애기다. 정부와 금융권이 서민금융에 좀 더 신경을 쓴다면 어려운 경제상황에 빚에 찌든 서민들에게는 그만한 격탁양청이 있겠는가? 명실상부한 따뜻한 금융을 기대해본다.

김병헌 전문위원 biemms@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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