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장혜진 시인

[장혜진 시인]

나보다 다섯살 아래 지인이 작은 스텐레스 양푼에 밥을 비벼오더니 양푼째로 식탁에 올려놓고 먹자했다.
그릇에 덜어먹자 했더니 비빔밥은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라고 크게 한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가 맛나게 먹었다.
하긴 비빔밥은 그리 먹어야 제맛이란 말에 끄덕끄덕 동의를 하면서도 실은 나는 예쁜 그릇에 보기좋게 담아 먹는 걸 선호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보기가 달라지기에.....
 
사실 음식을 준비하고 차리는 주부 입장에서 가장 성가신 부분이 뒷설거지다.
나 역시 음식 만드는 일은 즐겨 하지만 뒷설거지는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준비한 음식을 그릇에 보기좋게 담아내는 일을 즐거워한다.
뒷설거지의 성가심은 예쁜 상차림의 즐거움 다음에 오는일이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기꺼이
그릇들을 꺼낸다.
 
예전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예쁘게 음식을 담아서 먹였다.
귀찮다는 이유로 대충 먹이지 않았다.
딸 셋을 키우며 덤으로 조카 둘을 키우면서도 그렇게했던 이유는 첫번째가 내 만족이었다면 두번째는 딸들을 위해서였다.
보고 자라면서 몸에 밴 습관이 평생을 가기에 은연중에라도 딸들에게 의식속에 깊이 각인되어 습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내 성평등 의식이 고리타분 할 수도 있겠지만 여자는 남자보다 좀 더 섬세하기를 원하는 보수적인 성향도 한 몫 했겠지만.....
실은 나도 지극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한 영향이 알게 모르게 내 딸들에게 전해졌음을 인정한다.
 
그랬다.
오십을 갓 넘긴 지금의 내 나이 세대는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들. 우리들 세대가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겠지만 내 주변 지인들의 성장배경을 들어보면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보수적인 배경이었던 것 같다.
음식 이야기가 옆길로 샌 것 같은데 다시 음식 이야기로 이어가자면 여자는 무조건 먹는것도 함부로 아무렇게나 먹으면 못쓴다는 기본원칙하에 성장했다.
다른 세세한 부분도 마찮가지였지만 특히 음식에 대한 건 더 철저하다시피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하셨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나름 할머니의 깊은 뜻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엄마를 대신하는 자리여서 더욱 그리 하신 게 아닌지...
밖에 내 놓았을 때 엄마의 빈 자리에서 성장한 티가 혹시라도 날까봐 세심한 부분을 살펴가며 키워주신 것 같다.
풍족한 환경에서 세심한 보살핌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 써 주신 먼곳에 계신 할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다시 음식이야기를 하자면 내 나이 세대가 도시에서 성장한 것과 시골에서의 성장 배경 중 음식의 재료가 조금 다르긴하다.
지역적 특성이 물론 있겠지만 우스개 소리로 지인들끼리 하는 말이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추억할 수 있는 음식이 별반 없다는 말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이고 한 사람이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거나 또는 특별히 좋아하게 되어 그 음식이 추억이 되는 일은 누구나 다 갖고있다.
도시에서 성장했다고 그런 추억이 없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음식에대한 추억이 무궁무진하다.
더구나 음식에 일가견이 있으셨던 할머니덕분에 지금도 음식 만드는 일을 즐거워한다.
 
그런데 음식도 음식이지만 내 기억속의 추억은 음식 그 자체도 자체이지만 그릇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플레이팅인데 그시절에도 밥상을 참 정갈하게 예쁘게 차려내셨다.
그릇장에 차곡차곡 정리 되 있던 그릇들은 장식용이 아니라 일상용이었다.
그시절 할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그릇은 미국산 코럴이었다 50년이나 된 이야기다.
갈색 나비와 꽃이 프린팅된 버터플라이.
그중 가장 넖은 접시에 직접 만든 돈까스를 튀겨담고 그 옆에 무명실처럼 가늘게 채썬 양배추를 소복히 담은 후 미국산 콩통조림과 통통하게 삶은 마카로니를 보기좋게 담아서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런히 놓아주시곤 했다.
갈색 카레를 녹여서 끓인 돈까스용 소스와함께....
늘 그런식이었다.
음식 한가지도 제대로 구색을 갖춰서 해주셨다.
음식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게 하느라 그리 하신 것 같다.
 
며칠 전 추석명절 때였다.
다른 사람이 만든 식혜를 먹으며 어릴적 먹던 식혜를 떠올렸다.
내 기억속의 식혜는 새벽 희붐하게 내려온 안개가 우윳빛 오목한 그릇에 가득 내려앉은 그곳에 희고 길쭉한 밥알이 마치 사과꽃잎을 알알이 뜯어 놓은 듯 안개의 출렁임에 둥둥 떠다니다 빙그르르 물결따라 도는 걸 바라보다 입으로 가져가 호로록 마시는 그런 식혜가 내게는 식혜였다.
흰 꽃잎 사이를 돌돌말아 얇게저민 대추가 동동 떠다니는 그런.....
식혜의 윗물을 다 마신 후 가라앉아있는 푹 퍼진 밥알을 목으로 털어 넣으며 명절이 지나고 좀 한가로워지면 엿기름을 사다 추억을 띄워봐야지 하며 허허로운 속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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