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스티컷.

[박준영 크로스컬쳐 대표 / 문화평론가] 영화 ‘엑시트’가 나왔을 때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재난 액션 영화가 헐리웃의 블록버스터 시스템의 그것과는 일단 스케일에서 비교되지 않을거라는 선험적인 지식이 그렇게 만들었고, 평범한 포스터에 나와있는 두 주인공이 그닥 땡기지 않아서였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스타덤에 올랐지만 송강호,이병헌 급으로 채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조정석이 남자주인공 용남역을, 그리고 항상 끼워팔기, 맛배기로 연기력과는 별개로 주인공을 꿰차는 아이돌처럼 아직은 영화라는 매체에 익숙치 않은 소녀시대의 멤버였던 윤아가 여주인공을 맡은 것도 범작일거라는 예단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올해 가성비 최고의 영화로 등극했다. 재난 영화치고는 작은 제작비와 캐스팅 비용으로 천만 영화 등극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어느 영화 관계자도 예상치 못한 신선한 결과였다. 필자 역시 뭐 그러다 말겠지 하다가 흥행에 불이 붙자 뒤늦게 영화관을 찾아 왜 이 영화에 관객이 몰렸을까를 생각해봤다.

몇가지 이유가 나온다. 첫째 철저한 한국형 어드벤쳐 재난 영화로 화면을 구성하였다. 동네 어디에나 있음직한, 유럽 중세를 지향하지만 따져보면 국적불명의 예식장 건물이 공간적인 면을 채운다. 주인공들이 위험천만한 액션을 펼치는 곳은 주위 어디에서 볼 수 있는 입시 보습학원이며 건물 옥상 물탱크 위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대가족이 함께 뭉쳐 끈끈한 가족애가 여기에 버무러진다. 

둘째는 감정이입이 가능한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먼저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오늘도 핸드폰으로 불합격 메시지를 받고 매번 좌절하는 용남은 집에서도 엄마의 설거지를 돕거나 하나뿐인 누나의 잔소리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엄마의 회갑이지만 만나는 친척들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졸업했구요, 취업 안했구요, 한 잔 받으세요” 라며 선수를 친다. 
연회장에서 우연히 만난 첫사랑 의주(윤아분)와의 재회의 기쁨도 잠시.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 보여 일단 벤처기업의 과장이라 속이지만 이내 들통난다. 회갑잔치는 그렇게 달콤씁쓸하게 끝날 듯 했다. 영화는 이제부터다. 회사에 불만을 품은 화학회사 직원이 정체불명의 유독가스를 무작위 살포한다. 도시는 금새 아비규환이 되고 용남의 가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이 위기를 평소 대학동아리 산악반에서 익힌 솜씨로 헤쳐 나간다. 그리고 해피엔딩. 줄거리의 복선도 없고 갈등도 크지 않다. 용남과 의주는 정글같은 도시의 난마를 헤치고 뛰고 또 뛸 뿐이다. 그러나 20대들의 희망과 절망을 구석구석 잘 배치해 놓았다.

또 하나는 달라진 여성 주인공의 캐릭터이다. 결코 남주인공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한다. 의주(윤아역)는 곧은 허리와 명쾌한 자세로 옥상을 주파해 나간다. 민폐녀는 없다. 우리 시대의 알파걸들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사회의 편견이나 횡포도 마냥 참지 않는다. 매번 자신에게 집적대는 상사를 한 주먹에 때려 눕힌다.(사실 이 대목은 영화‘다이하드’가 연상되었다. 물론 ‘클리프 행어’의 여러 장면도 참고로 하였을 것이다.)

시민들은 드론으로 생중계되는 용남과 의주의 분투를 응원하며 결국 시민들의 자발적 도움으로 구사일생한다. 생사가 엇갈리는 긴장감의 순간은 오직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간다. 누구의 도움도 없고 편법도 없다. 요즘의 여러 시국의 상황들을 지켜 보면서, 왜 이 영화에 이렇게 열광했는지 무릎을 치게된다. 젊은이여 힘을 내자. 헬조선 맞다.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멋진 엑시트(Exit)를 보여달라고 하면 무리한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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