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미디어SR 한혜리 기자]

배우 허성태의 얼굴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깊게 자리 잡은 굵은 선들이 보인다. 그것들이 지금의 허성태의 역할을 만들어 왔나 싶다. 얼마 전 종영한 OCN 드라마 ‘왓쳐’에서는 장해룡 형사 반장 역할로 분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장해룡 반장은 차분한 표정으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게 했고, 후엔 본성을 드러낸 날 것의 표정으로 섬뜩하게 했기에. 그러나 종영 인터뷰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어쩐지 수더분한 기색이 다분했다. 누가 봐도 드라마 속 막중한 역할의 부담감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시시각각 다른 얼굴로 감정을 전하는 배우 허성태, 그의 다음 얼굴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

Q. ‘왓쳐’ 마지막 회는 어디서 시청했나요.
허성태:
촬영은 이미 전에 끝나서 마지막 회는 집에서 아내랑 같이 봤어요.

Q. ‘왓쳐’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허성태:
그렇죠. 저도 1, 2부 대본 받고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까, 찍으면서도 감탄했어요. 오죽하면 종방연 때 감독님, 작가님 사인까지 받았겠어요. 하하. 감독님한테 제 분량이 제일 많은 15부 대본에 사인을 받았죠. (웃음)

Q. 시청자 입장에선 참 흥미진진하면서도 어렵기도 한 드라마였어요. 배우로써 마주한 ‘왓쳐’는 어땠나요?
허성태:
‘왓쳐’는 정말 처음 대본을 보자마자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동안 작품이 들어오면 어떤 작품이든 감사하게 임했는데, 이번에는 제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죠. 선과 악, 옳고 그름 사이, 그 교집합 안에서 흘러가는 인물들의 심리가 너무 재밌고 매력적이더라고요. 다만, 감독님은 제 역할이 원래 한석규 선배랑 친구로 나오는 역할인데 차이 나 보일까 봐 조금 염려하시더라고요. 다행스럽게도 한석규 선배께서 첫 촬영할 때 애드리브로 “너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라는 대사로 정리해 주시는 바람에 모두가 걱정을 놓을 수 있었죠.

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Q. 장해룡 역할의 첫인상도 궁금해요.
허성태:
처음에 저도 1~2부 대본만 보고는 도치광(한석규)이 악역 아니냐고 물어봤어요. 이런 식으로 가면 장해룡은 후반부엔 완전히 정의롭게 끝나지 않겠나 싶었죠. 근데 감독님이 먼 산만 바라보시고 대답을 안 하시더라고요. 하하. 장해룡의 반전은 촬영 중반부까지 몰랐어요. 서스펜스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감독님은 일부러 말씀 안 해주셨죠. 배우의 연기가 혹시나 한쪽으로 치우칠까 걱정하신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참 고민이 많았던 역할이었죠. 마지막 회를 보면서도 ‘내가 맞는 연기를 한 건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했어요. 장해룡은 고민으로 시작해서 고민으로 끝난 것 같아요.

Q. 장해룡을 위해 7kg이나 체중을 감량했잖아요. 배우가 무척 공들인 캐릭터라고 느껴졌어요.
허성태:
처음엔 7kg를 감량했는데 찍다 보니 3kg 쪘더라고요. (웃음) 전작 MBC ‘이몽’ 때랑 비교해보면 티가 많이 나죠. 살은 탄수화물만 안 먹어도 빠지더라고요. 거기에 운동까지 해서 금세 감량한 편이었어요. 밥은 반으로 줄이고 나물이나 반찬 위주로 먹고. 아, 그래서 액션 신에서 힘이 달렸을 수도 있겠네요. 하하.

Q. 장해룡이라는 인물은 감정의 폭이 넓다고 느껴졌어요. 냉철함부터 부성애까지.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라 기존의 악역과는 달랐죠.
허성태:
그동안 많은 악역을 해오며 느낀 건 악역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번 장해룡 역할도 딸에 대한 히스토리가 있었고 지난번 드라마 ‘터널’의 캐릭터 역시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한 악한 마음이었잖아요. 저 역시도 그런 이유 있는 악역들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Q. 액션의 강도도 상당했죠. 특히 마지막 회에서 서강준과의 액션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호흡은 어땠나요?
허성태:
서강준은 사람 자체가 밝고 에너지가 강한 배우였어요. 액션신을 할 때, 평소 연기할 때도 에너지가 엄청나죠. 액션신 때도 서로 힘내자고 격려를 했어요. (서)강준이와의 현장은 늘 기분이 좋아져요. 또, 강준이랑은 차가 똑같아서 에피소드가 많아요. 한 번은 제가 저희 차인 줄 알고 강준이네 차를 잘못 탔는데, 강준이가 어서 오시라고 반기더라고요. 하하. 서로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죠.

Q. 이렇게 허성태가 서강준을 아끼는 것처럼, 장해룡도 김영군(서강준)을 남달리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비록 원수지만 영군에게 자기 밑으로 오라고도 스카우트 했었잖아요.
허성태:
그땐 장해룡과 김영군이 원수 사이가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너 2~3년 뒤에 내 밑으로 와라.” 사실 이 대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장해룡은 겁났던 것 같아요. 영군이를 본인 옆에 두고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던 거죠.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까 봐 두려웠고.

Q. 본인이 영군이라면 장해룡을 어떻게 했을까요.
허성태:
일단 김영군은 현명한 선택을 했어요. 보시는 분들도 느꼈을 거예요. 정말 대단하고 훌륭한 거죠. 하지만 제가 영군이었다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복수를 했을 것 같아요. 부모의 원수잖아요. 보통 사람이라면 영군이처럼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울 것 같아요.

Q. 한석규 선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보통 후배들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배우고 얻잖아요. 한석규란 선배에게 얻은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허성태:
한석규 선배와의 호흡은 오히려 편했어요. 상대방을 편하게 이끌어주세요. 연기할 때도 상대 배우가 잘 캐치할 수 있게 짙은 색깔로 감정을 전달해주시죠. 그럼 자연스럽게 반응이 이끌려 나와요. 정말 놀랐던 건 선배는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하세요. 다양한 시도를 하시는 걸 보고 “이렇게 하신단 말이지?”하면서 저도 신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보면서 배우는 것도 재밌었고요. 여러모로 함께 있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 같아요.

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Q. 작품을 할 때 반응을 체크하는 편인가요?
허성태:
이전까진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유독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잘 해내고 싶다고 하면서 들어간 작품이니까요. 과연 내가 했던 연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냈을지 이전보다 고민이 되더라고요. ‘왓쳐’는 그런 공감에 예민하게 신경 썼던 것 같아요.

Q. 기억에 남는 평이 있다면요?
허성태:
아, 로봇 같다는 댓글이 있었어요. 하하. 충격적인 평은 아니지만, 기억에 꽤 남아요. 사실 장해룡을 애매모호하게 연기하려고 했던 의도도 있었어요. 감정을 좀 절제하면서요. 뒤에 반전이 있는 인물이니까요. 그런 점을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의도한 거와 다른 반응이라서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Q. ‘왓쳐’는 메시지가 있는 드라마였죠. 견제받지 않은 권력이라든지, 부패한 권력에 대한 메시지라든지. 시청자들은 많은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왓쳐’는 인간 허성태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요.
허성태:
버릇이 하나 생겼어요. 사람의 말을 한 번 의심하는 것. 하하. 극 중후반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말을 들어도 “진짜일까”라는 의심을 한 번쯤은 하게 되더라고요. 누구든 앞에선 좋게 얘기하고 뒤에선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자신의 목표를 따라서 변화했던 ‘왓쳐’의 캐릭터들처럼 말이에요. 도치광의 대사 중 이런 게 있었어요. “나는 한 번도 정의를 위해 일해본 적이 없다.” 인간사에서 선과 악, 절대적인 건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맞는 것 같아요. 인생은 얽히고 설켜 있잖아요. 생각해보면 선(善)이라고 믿었던 도치광도 나쁜 짓을 했으니까요.

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Q. 감시자, 관찰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허성태는 요즘 무엇을 관찰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허성태:
고양이요. (웃음)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일할 때 빼곤 주로 고양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아요. 원체 동물들을 좋아해서. 하하. 이름이 남한이와 나주예요. 남한이는 영화 ‘남한산성’을 찍을 때 데려왔고, 나주는 독립 영화 찍을 때 나주 곰탕집 사장님께서 키우던 고양이의 새끼를 주셔서 데리고 왔어요. 곰탕집 사장님이나 아이들을 아시는 분들을 위해 SNS에 꾸준히 남한이, 나주의 사진을 올리고 있죠.

Q. 예상치 못한 모습이네요.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에서도 반전 매력을 뽐냈었죠? 예능 욕심은 없나요?
허성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예능 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정말 똑똑하신 것도 같고요. ‘구해줘 홈즈’는 그래도 하나의 미션을 통해 차근차근히 진행됐다면, 전에 출연했던 ‘런닝맨’은 정말 속도가 빠르더라고요.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거기에 센스까지 겸비해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죠. 하하.

Q. 예능에서의 모습을 보니 코믹연기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어 등장하는 ‘싸이코패스 다이어리’가 코믹 극이죠. 코믹에 대한 욕심도 궁금해요.
허성태: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역할이에요. 감독님께서도 ‘허성태’라는 배우를 바꾸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계세요.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 것 같아요. ‘밀정’, ‘남한산성’, ‘꾼’ 이후 운이 좋게도 바로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역할이 주어져서 참 다행이고 기회란 생각이 들었죠. 사실 그동안 악역에 대한 구체적인 걱정은 잘 안 했어요. 오히려 주위에서 염려해주셔서 깨달았던 편이죠. 이번에 한석규 선배도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고, 권상우 형도 얘기해주더라고요. 이제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고요. 다행스러운 건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도 그렇고 앞으로 개봉할 것들이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들이에요. 재밌는 역할이 많아서 새로운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Q. 변화에 대한 갈증이 있군요?
허성태:
나중에는 꼭 정의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네요. (일동 웃음) ‘시그널’의 조진웅 선배 같은 역할 있잖아요. ‘절대 선(善)’ 같은 역할이요. 기회가 된다면 애절한 부성애를 보여줄 수 있는 소시민 같은 역할도 정말 해보고 싶어요.

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Q. 허성태를 말하자면 ‘늦깎이 데뷔’, ‘기적의 오디션’ 등을 얘기 안 할 수 없어요. 확실히 허성태 이후로 배우로서 도전에 대한 나이 장벽이 조금 허물어진 느낌이에요.
허성태:
‘기적의 오디션’ 이후 한 3~4년 동안은 단역으로 수십 편 정도 출연했던 것 같아요. ‘밀정’에서 처음으로 조연 캐스팅이 됐죠. 숫자로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엄청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나름 힘든 생활이었어요. 저는 결혼을 했기에 가정에 대한 책임도 있었거든요. 이땐 정말 아내가 큰 역할을 해줬어요. 35세가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서 잘 안되면 ‘왓쳐’의 ‘장사회’처럼 “장사나 하자!”라는 마음이었죠. 하하. 주변에서도 얘기 많이 들어요. “형도 서른다섯에 시작했잖아!”라며 조언을 해달라고하는데 솔직히 전 겁나요. 조언이라고 해도 당사자가 아니니까 어쩌면 무책임 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더 자신의 확신이 중요하고요. 제가 뜯어말린다고 해도 하지 않을 거며, 부추긴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도 많이 봐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 수도 있어요.

Q. 후회했던 적은 있었나요?
허성태:
음, 보험이나 적금을 깰 때 한두 번 정도? (웃음) 생활은 해야 하잖아요. 그래도 후회하는 걸 티 낼 수 없었던 건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면목이 없더라고요. 초라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도 어머니랑 그런 얘기를 해요. “천만다행이지?” 하하. 지금까지 단역만 전전하고 있었다면 아마 고향으로 내려갔을 것 같아요. 마흔세 살이잖아요. 오십 대는 준비해야죠. (웃음)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허성태:
제 자존심이었어요. 이대론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보통 서울에서 버티지 못하면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가잖아요. 그렇게 되면 제가 결국 해내지 못했단 생각에 저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미친 듯이 프로필을 돌렸죠. 그렇게 목마름이 쌓여서 더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그때 포기하지 않아서 참 다행스럽죠.

Q. 다시 돌아간다면요?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허성태:
그럼요. 하하. 그렇게 오랫동안 단역을 하다가 한참 후에 처음으로 300만 원이라는 수입을 찍어봤어요. ‘이렇게나마 생계는 유지되겠구나’하고 안심하며 엄청나게 울었던 것 같아요. 그땐 정말 날마다 종일 일했거든요. 당시 쉴 틈 없이 일 한 덕에 점점 여기저기 찾는 분들이 많아지고 알아봐주셔서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 허성태. 사진. 한아름컴퍼니 제공

Q. 배우의 생활은 예전 회사 생활과는 아주 다르죠.
허성태:
아무래도 그렇죠. 시간 패턴도 그렇고 사소한 라이프 스타일 모든 게 다 다르지만, 가장 차이가 나는 건 ‘출근하는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회사에 출근할 때는 약간 끌려가는 기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늘 피곤하고. 근데 지금은 잠을 못 자고 새벽 촬영장에 나가도 즐거워요. 가는 길 자체가 즐거운 마음이 가득해요. 제 적성에 더 잘 맞는 거겠죠. 그게 참 감사한 것 같아요.

Q. 오늘을 마친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늘 사람은 내일을 꿈꾸죠. ‘왓쳐’까지 마친 허성태가 꿈꾸는 내일은 어떤가요?
허성태:
회사 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사실 사업계획서라는 게 그대로 실행된 적이 없잖아요? 하하. 그래서 계획을 꼼꼼히 짜는 편은 아니에요. ‘하다 보면 그 자리에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하고 있죠. 지금 당장은 올해 주어진 재밌는 캐릭터들로 그동안 악역을 해오면서 느꼈던 스트레스를 해소할 생각이에요. 내년엔 다른 색깔의 옷도 입어보고 싶고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만 같아서 이후부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더욱 좋은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Q. 허성태는 어떤 배우로 대중의 기억에 남고 싶나요.
허성태:
거창한 말 같기도 한데, 사람 같은 연기자요. (웃음)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사람 냄새나는 배우’ 이런 말도 좋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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