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드라마 ‘비밀의 숲’을 기점으로 흥행 연타를 치고 있는 이준혁이 tvN드라마 ‘지정생존자’를 통해 또 하나의 인생 캐릭터를 남기면서 새로운 방점을 찍었다. 8년 만에 인터뷰에 응한다는 이준혁은 시청자들에 고마움을 전하는 한편 대중이 마음 가는 대로 자신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자신만의 삶의 모토에 대해 전하는 등 진솔한 이야기를 내놨다.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더라도, 이준혁은 분명히 매력 있는 사람이다.

Q. 존재감이 뚜렷했음에도, 극 중 오영석의 말로가 너무 순식간이었어요.
이준혁:
그날의 그 장면이 제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떠날 땐 빨리 가줘야죠. 남은 사람들의사연도 정리할 게 많은데 제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오영석이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진 않았어요.

Q. 오영석은 국가에 헌신하려다 배신을 당해 변절하고 그릇된 신념을 쫓게 된 캐릭터예요.
이준혁:
그렇기 때문에 오영석처럼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대사회가 참 좋은 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할 수 있잖아요. 그게 TV매체나 소설, 영화, 음악일 수도 있죠. 생각보다 많은 위로의 장치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는 바도 있는 것 같아요. 힘들면 나 혼자 힘들고 말아야지 오영석 같이 테러를 공모하거나 하면 안 되죠. 저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들면 힘든 거지, 그걸 마음에 담아두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렇게는 못 살죠.

tvN 드라마 ‘지정생존자’에서 오영석 역으로 열연한 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Q. 오영석 캐릭터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는지 궁금해요. 연민하기엔 그 변절의 정도가 컸고, 그렇다고 비난만 하기엔 그 전의 서사가 안쓰러웠죠.
이준혁:
저는 오영석이 이미 죽어있는 사람이라 봤어요. 오영석에게는 가족도 없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요. 드라마에서도 그 흔한 가족사진도 안 나왔거든요. 오영석에게 유일하게 좋은, 그리고 인정받던 시간이 국가에 헌신하던 바로 그때였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걸 잃은 오영석의 시간은 그때 그 시기에 멈춰있을 수밖에 없던 거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악의 무리는 만난 거고요. 대선주자까지 가게 된 건 극복의 과정이었지만, 그 길에서 악의 무리가 아닌 반무진 같은 사람을 만났어야 했어요.

Q.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나 외모를 두고 극찬하는 반응이 많았어요.
이준혁:
캐릭터 설명부터 그런 내용이 나와요. 드라마 내에서도 외모 부분이 강조돼서, 아마 시청자 분들도 세뇌를 당한 것 같아요.

Q. 정말 반응이 좋았는 걸요(웃음). 외모적인 설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었을까요?
이준혁:
날렵한 느낌을 내려고 다이어트를 하려 했어요. 그것 말고는 저의 팀원들과 이 작품에서 어떤 느낌을 주자는 목표치를 두고 다 함께 캐릭터 준비를 했어요. 이후에는 오영석 캐릭터가 고립돼 있다 보니 배우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대화 참여를 잘 안하려 했고요. 캐릭터의 힘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만 다 같이 만나거나 하질 못해서 ‘왕따생존자’ 느낌이 나기도 했고요(웃음).

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Q. ‘지정생존자’에서 오영석은 갈등 전면에 서 있죠. 감독이 방향성을 제시해 준 부분은 없었나요.
이준혁:
오영석이 실존하지 않아 보였으면 해서,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많이 맞췄어요. 그래서 가족이나 아내의 설정도 없앴죠. 연령대에서도 리얼리즘을 뺐어요. 실제 권한대행이라면 50대가 맞겠지만 오영석은 나이도 불문인 미스터리한 느낌이 강해보였으면 했거든요. 도대체 뭔지 모르겠는 느낌으로.

Q. 이준혁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비밀의 숲’과 ‘신과 함께’ 등을 만난 2017년부터 전환점을 맞는 느낌이 있어요.
이준혁:
그래도 삶이 별로 다를 게 없더라고요. 늘 하던 대로 촬영 하고, 끝나면 집에 가고. 그것뿐이에요. 작품이 잘된 것에는 감사하죠. 같이 일한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열심히 일하는데 작품이 반응 없거나 하면 주변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저도 더 힘들어져요. 그래서 작품이 잘됐으면 좋겠다 싶고, 잘된 작품은 다행이라는 마음이 있어요.

Q. 작품을 하면서는 현장과 집만 오간다면, 작품을 하지 않을 땐 뭘 하며 지내는 편인가요.
이준혁:
집에만 있어요. 운동은 어쩔 수 없이 하고요. 운동은 진짜 하기 싫어요. 일 때문에 하는데 지치긴 하죠(웃음). 가끔 친구를 만날 때도 있지만, 뭔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있어요. 집이 암실처럼 어둡거든요. 암막커튼도 있고요. 혼자 있을 땐 그림도 가끔 그리긴 하지만 그냥 많이 누워있는 편이고, 요리도 할 때는 있지만 요즘엔 잘 안 하고 있어요.

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Q. 그러고 보니 먹는 걸 좋아하는 걸로 명성이 자자하더라고요. 과거에 음식 이야기를 한 SNS나 V앱 영상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던데.
이준혁:
먹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잘 못 먹게 되니까 먹고 싶다는 2차적 욕망이 제일 커지게 돼요. 이 나이에 먹는 걸 잘 못 먹으니까 얼마나 사람이 안쓰러워요. 그냥 먹고 싶다고 생각만 하죠.

Q. 이야기를 들어보면 굉장히 정적이지만 먹는 걸 좋아한다는 결론이 되는데요(웃음). 다른 취미도 있을까요.
이준혁:
영화 보는 게 취미예요. 그걸 좋아해서 이 일을 하는 거고요. 장르 상관 없이 다 잘 보는 편인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봤을 때가 제일 기분 좋아요. 다른 것들은 취미라고 하기엔 일의 연장선상이 될 때도 있거든요.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간혹 정말 좋은 영화들은 그런 것까지도 잊게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미드소마’를 재밌게 봤어요.

Q. 과거 인터뷰에서 감독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
이준혁:
스무살 때의 이야기긴 해요. 저는 폭발적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잘하자 싶어요. 매번 하나하나 해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를 다 잘하는 분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단한 에너지를 가지신 거잖아요. 저는 굳이 따지면 나무늘보 같은 사람이라….

Q. 느리다기보다는 생각이 많은 편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예능 출연이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이유도 생각이 많기 때문일까요?
이준혁:
그런 것보다는 제 자신에 대해 내놓을 만한 게 없어요. 제가 재미있을까요? 보시는 분들이 수신료를 아까워 할 것 같아요. 제가 나오는 게 어떻게 재밌을 수가 있겠어요.

Q. 작년에 진행한 V앱 방송의 반응이 정말 좋았던 걸로 아는데.
이준혁:
그건 불특정다수가 아닌 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니까요. 다만 V앱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SNS도 하지 않다 보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단이 없어요.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발전해서 동영상 콘텐츠를 통해 소통을 할 수가 있게 됐잖아요. 그런 것도 부담되기는 하지만 그런 게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Q. 팬들의 반응을 잘 보는 편인가요.
이준혁:
보는 시기가 있어요. 작품의 캐릭터적인 면에 대해 참고를 해야 할 땐 무조건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연장선상에서 방송도 봐야 하지만 그런 시점이 지나가면 보지 않게 돼요. 일이긴 해서 방송을 보게 되긴 하는데 너무 쑥스럽고 민망해요.

Q.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궁금해요.
이준혁:
끝나고 나면 좋은 사람들과 연기한 게 좋아서 객관적인 판단이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면, 썩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Q. ‘지정생존자’의 전체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준혁:
좋은 이야기죠. 결국 그런 이상적인 사고가 세상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좋은 것을 추구하는 건,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모습이 없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지정생존자’를 두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만족스러워요.

Q. 일상 속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한 바 있죠.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본인만의 이유가 있을까요?
이준혁:
전혀요. 드라마는 드라마고 영화는 영화라 생각해요. 저는 제 마음 속에서 보고 싶은 것들이나 그때그때의 흐름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예를 들어 먹고 싶은 음식이 바뀌거나 패션에서 유행이 바뀌듯, 어떤 유행의 흐름이 생기면 트렌드도 자연스럽게 바뀌잖아요. 마찬가지로 드라마도 다변화해서 장르물이 많아졌어요. 이런 상황에선 로맨스와 멜로도 괜찮다고 보는 거죠. 정치 드라마가 얼마 없으니 그것도 좋은 거고요. 그런 느낌으로 작품을 선택해요. 오늘 먹은 음식을 보고 내일 먹을 음식을 고르는 것처럼요. ‘오늘은 돈까스 먹었으니 내일은 짜장면을 먹어볼까?’와 같은 거죠(웃음).

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배우 이준혁. 사진. 에이스팩토리 제공

Q. 그런 관점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다음 작품은 어떤 방향일까요.
이준혁:
이제 무거운 걸 먹었으니 가벼운 디저트를 먹고 싶어요. 로코 등의 장르와 관계 없이 그냥 편안한 느낌의 작품이요.

Q. 최근 ‘빌런’(악역을 일컫는 말)이라고 통칭되는 역할도 맡고 로코의 주인공도 해봤죠. 여러 색을 보여준 건데,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이준혁:
저는 그냥, 대중이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Q. 이제 12년차 배우예요. 데뷔했을 때 10년 후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기도 했을 텐데, 지금은 그 목표치에서 어느 정도 와 있는 것 같나요.
이준혁:
기대치에 비해서는 정말 잘된 것 같아요. 연기학원을 다닐 때에는 같은 학원의 형이 TV에만 나와도 대단해보였어요. 저도 TV에 출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미 그걸 이뤘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거죠, 지금은.

Q. 지금 시점에서 10년 후의 바람이 있다면요.
이준혁: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제 주변 사람들과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일하는 것보다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기술이 발전하면 좋겠어요.

Q. 다분히 인류애적 발언이네요(웃음). 현 시점으로 다시 되돌아와서, ‘지정생존자’는 배우 이준혁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요?
이준혁:
‘지정생존자’는 올바른 사람들이 모여서 에너지를 바른 곳에 쓰며 만든 작품이에요. 서로 즐겁게 일에 충실히 임한 게 시청자들에게도 와 닿아서 저희 작품을 좋아해준 것 같아요. 결국 그런 소통이 일의 즐거움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정생존자’를 촬영하는 시간이 제게 뜻 깊게 남았어요. 모두가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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