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출처 : thewarrencentre.org.au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수학과 물리학에서 기존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매우 특수한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블랙홀의 중심에는 밀도가 무한대인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진술로 비교적 친숙하다. 이 개념을 인공지능 기술이 주도할 미래에 적용한 것이 바로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인데, 기존의 법칙이나 제도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현실이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에 앞서 기존의 경제 시스템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 즉 경제적 특이점(economic singularity)이 먼저 도래한다는 것이 특이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한편 특이점으로 묘사되는 지극히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또한 두 가지 특이점이 연속적으로 발생할지도 예단하기 어렵다. 필자는 여기서 어느 쪽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은지 전망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할 것은 권력의 집중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fascism)이 사회 전반에 만연할 가능성이다.
 
파시즘이든, 나치즘이든 아니면 전체주의나 공산주의 등 어떤 명칭으로 불리더라도 이것은 인간의 고유한 기본권과 다양한 정체성을 부정하고 국가나 유일무이한 정당(공산당, 나치당 등)으로 대변되는 하나의 정치세력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필자는 이러한 체제들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파시즘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체제가 지금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필자가 아는 한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대변되는 현 상황에서 진지하게 파시즘을 경고한 대표적인 인물은 예일대 역사학자 티머시 슈나이더(Timothy Snyder) 교수이다. 전공분야가 중앙 유럽과 동유럽 역사, 그리고 홀로코스트라고 하니 파시즘에 정통하다고 볼 수 있다. 티머시 교수는 저서 『폭정』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 받고 있다면서 20가지 교훈을 제시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인간의 본성을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토머스 제퍼슨이 ‘영원한 경계(eternal vigilance)는 자유의 대가이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 이같이 말한 미국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러나 이 격언의 참뜻은 완전히 다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유를 갉아먹고 기어코 끝장낼 ‘미국인들’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기서 경계의 대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이 대목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부의 적, 즉 우리의 의식 수준에 따라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파시즘을 선동하는 주동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머시 교수가 이 책에서 제시한 20가지 교훈 가운데 필자가 특히 공감하는 부분은 진실을 믿으라는 것, 직접 조사하라는 것, 그리고 대의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가짜 뉴스를 대량으로 유포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각자의 감각적 판단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해짐에 따라 진실을 전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티머시 교수는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단계”라고 단언한다. 현재 일본의 경제보복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반일·친일 논쟁을 살펴보다 보니 이것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경고처럼 보인다.
 
이와 같이 인간의 본성에는 파시즘으로 경도될 수 있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다는 그의 경고를 우리 모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을 자극하는 기술이 점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이들이 사회 전반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가 분분한 실정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들로 인해 기존의 분산적인 정보처리보다 오히려 중앙집중적인 정보처리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정치적 선호를 선거와 투표라는 방식을 통해 집계(aggregation)하는 정치체제이다. 한편 자본주의는 시장을 통해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보유한 다양한 정보를 집계해서 서로 공유하도록 해줌으로써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경제체제이다. 즉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두 분산적인 정보처리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체제이며, 이것이 다른 체제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원리의 근간을 뒤흔드는 기술이 바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인류의 물질적 풍요를 위해 개발되어온 기술이 오히려 인류를 파시즘이라는 나락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은 진정 역설적이라 할 것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그리고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거대 정보기술기업들이 빅데이터와 이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은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기술이 적용된다면 파시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 기업과 정부가 협력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이미 사람들을 사회적 신용점수(social credit score)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획일적으로 점수를 부여한 후 이것을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다는 발상 자체가 파시즘의 핵심이다. 문제는 중국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이러한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정보기술의 놀라운 발달에 힘입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고 삶이 편리해진 것이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이 과정에서 우리의 체험과 행동이 인터넷 플랫폼을 장악한 소수 기업들에 의해 원재료로 사용되어 그들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데이터주의(Dataism)를 경고한 것, 경영학자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감시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 부르면서 자본주의의 타락을 비판한 것, 그리고 미디어학자 닉 콜드리(Nick Couldry)가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alism)를 거론하면서 역사적 식민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것은 모두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모두 민주주의의 위기와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백을 매우는 이념으로 파시즘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 간에 힘의 균형이 무너진 후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자생력이 없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하게 된다. 1930년대 독일이 그러했으며, 현재의 북한이 그러하다. 그러면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우리와 유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사한 전통을 가진 북한의 경우를 보면 왠지 걱정이 앞선다. 우리에게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와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구현할 저력이 있는가? 이 시점에서는 특히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유혹을 뿌리치고 분산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정치·경제 시스템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 능력이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파워엘리트들의 막중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필자는 여기서 이와 관련해 슈나이더 교수의 말을 빌려 한 가지 제안을 하려한다. 그는 인터넷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조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게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을 분별하는 능력은 비로소 당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우뚝 세운다. 그리고 공동의 지식에 대해 모두가 신뢰를 보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진실을 조사하는 개인은 사회를 건설하는 시민이며, 그러한 개인을 싫어하는 지도자는 잠재적 독재자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깨어있지 않으면 파시즘과 독재의 망령은 항상 그 모습을 드러내려 꿈틀거린다. 우리가 이성적인 시민으로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첨단기술의 시대에 아직도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한 채 소모적인 논쟁에 갇혀 있으면서 우리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미망(迷妄)에서 깨어나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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