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제2사옥 예정 빌딩, (오른쪽) 우리은행 본점. 제공. 네이버

[미디어SR 김병헌 전문위원]

사마천(司馬遷)이 우리사회에 주는 교훈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한(漢)나라 무제(武帝)때 기록관 중의 우두머리 벼슬인 태사령(太史令)이었다. 흉노와 용감하게 싸우다가 중과부적으로 포로가 된 명장 이릉(李陵)을 변호한 죄로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궁형(宮刑·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에 처해졌다. 궁형은 고대 중국에서 오형(五刑)의 하나다. 오형이란 묵(墨), 의(劓), 월(刖), 궁(宮), 대벽(大辟). 5가지 형벌로, 묵은 죄명을 문신으로 얼굴이나 팔뚝에 새기는 것이고 의는 코를 베는 것이다. 월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며 대벽은 참수형이다. 궁은 대벽 이상의 중형으로 여겨졌다.

당시 중범죄자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깨끗하게 대벽을 선택하면 융숭하게 장례를 치뤄줬으나 궁형을 택하면 생에 대한 애착만 있는 한심한 작자 취급당했다. 사마천은 살아서 인간의 정당한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써 남기려고 결심했다. 죽음보다도 더 견디기 힘든 치욕을 씹어가며 초인적인 노력으로 써낸 저서가 사기(史記)130여권이다. 그는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정실이 없어 언제나 착한 사람편을 든다(천도무친 天道無親 / 상여선인 常與善人)고 하는데 착한 사람은 언제나 번영해야 할 것인데 과연 그런가? 천도(天道)는 시(是)냐 비(非)냐?"고 묻는다. 천도시비(天道是非). 가장 공명정대하다고 여겨지는 하늘은 과연 바른 자의 편인가 아닌가? 세상의 불공정을 한탄하고 하늘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말이다.

그가 최근 불완전판매 논란을 빚고 있는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사태를 봤다면 천도시비를 다시 외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면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일부 은행및 증권사들이 위험성을 투자자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판매한 액수만 무려 8224억여원(잔액기준)이다. 투자자 대부분이 선량한 우리 이웃들이라 더하다. 유휴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늘려볼려고 이들의 미사여구에 속아 투자한 이들이다. 우리 주위의 삼촌 숙모 형님 누나 오빠 동생들이다. 전체 투자잔액 가운데 개인 투자자의 수는 3654명. 투자금은 7326억원으로 전체 잔액의 89.1%나 된다. 1명당 2억원 가량을 투자한 셈이다.

개인투자자의 피해는 기망과 불공정의 결과

문제가 된 상품은 영국‧미국·독일 금리를 기초 자산으로 한 파생결합증권(DLS)과 이를 담은 파생결합펀드(DLF)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기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에 연계된 파생결합상품 판매잔액(1266억원) 전체가 손실 구간에 진입해 있다고 발표했다. 해당 금리가 이미 마이너스(-)0.7% 밑으로 떨어진 탓이다. 이 상품의 만기는 다음달부터 오는 11월이다. 현 금리수준이 유지될 경우 예상 손실금액은 1204억원(평균 예상손실률 95.1%)에 달한다. 최종 손실 규모는 만기시 금리 수준에 따라 결정되므로 지금 피해규모를 확정하기 어렵다.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스와프(CMS‧Constant Maturity Swap) 7년물 금리 및 미국 달러화 CMS 5년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상품의 판매잔액은 6958억원. 85.8%인 5973억원이 손실 구간에 있다. 금리 수준이 유지된다면 예상 피해금액은 3354억원(평균 예상 손실율 56.2%)이다. 문제는 연내 만기가 돌아오는 금액은 492억원에 불과해 향후 피해 규모는 가봐야 안다. 내년과 2022년에 각각 6141억원, 325억원이 만기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추세가 지속되면서 CMS 금리 역시 하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피해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상품의 대강은 이렇다.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해 만기 시점에 금리가 상품 가입 당시 설정한 구간 내에 있을 때 연 3~5%의 수익을 볼 수 있다. 은행 예금금리보다 2% 안팎 더 높다. 반면 구간을 벗어난다면 원금 전부를 잃을 수 있는구조다. 투자자 대부분이 가입 당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청천벽력이다. 그런데 판매한 은행이나 증권사는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투자자의 피해율에 비하면 100분의 1도 안된다고 한다. 불공정 불공평의 극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불완전상품이라고 보는 이유도 다름아니다. 고위험상품이라는 특성을 사전에 인지한 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사기나 기망이 따로 없다.

금융기관중 가장 공신력있고 보수적 성향을 띤 은행들이 주로 팔았으니 투자자들 속이기는 여반장(如反掌)이다. 판매사별로 보면 우리은행이 4012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하나은행 3876억원 ▲국민은행 262억원 ▲유안타증권 50억원 ▲미래에셋대우 13억원 ▲NH투자증권 11억원 순이다. 특히 1266억원 규모의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은 모두 우리은행(1255억원)과 NH투자증권(11억원)에서 판매됐다.사태가 심각해지자 판매한 은행이나 증권사들은 오리발 내밀기에 여념이 없다. 상품을 기획한 주체를 놓고 풍문만 무성할 뿐 서로 아니라고 손사래질이다. 모 증권사가 기획해 은행을 이용했다는 소문도 있다. 금감원에서 조사에 들어갔으니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씁쓸함은 진하게 남는다.

사이비(似而非)는 공정사회의 해악(害惡)이다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편에서 맹자(孟子)의 말씀이 떠오른다. 맹자는 공자(孔子)의 말씀을 인용해 말문을 연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강아지풀을 미워함은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망령됨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믿음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붉은 색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향원(鄕原.야합하는 위선자)을 미워하는 것은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라고 말한다. 사이비(似而非)에 대한 애기다. 사시이비(似是而非) 에서 나온 말로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사이비는 공정사회의 큰 해악(害惡)이며 이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해당 은행과 증권사들에게 사회적 책임은 먼나라 얘기로 보인다. 사이비가 따로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이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에게 금융기관이나 기업이라고 부르기조차 싫다. 사채놀이하는 시정잡배와 뭐가 다른가. 정부는 혹여 이들 때문에 ‘이게 나라냐?’는 질책을 듣지 않도록 강력하게 조치해주길 바란다. 잘잘못을 가려 일벌 백계로 다스리고 선량한 투자자들의 피해보상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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