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오동 전투’, “받은 만큼 갚아주마”
영화 ‘봉오동 전투’, “받은 만큼 갚아주마”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9.08.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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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SR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봉오동 전투 스틸컷
한일합방이 된지 십년이며 3.1만세운동이 일어난지 1년이 조금 지난 1920년 6월 7일. 중국의 지린성 봉오동에서 홍범도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대승을 한 전투를 ‘봉오동 전투’라 이른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일제의 횡포와 만행을 초장부터 작심하고 보여준다. 일본군은 자신들에게 길을 안내해준 조선의 형제를 무참하게 폭사 시키는가 하면 만주에 어렵게 살고있는 조선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살상하며 심지어 잘라진 머리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저 머릿속에 추상화 되있는 일본군의 만행을 영화는 시각적으로 구체화 시켜준다. 영화는 그러면서 저항과 복수의 당위를 축적해 나간다.
 
1920년대는 일본이 강성국가로 비약하는 결정적인 시기였다. 자본의 확대와 대규모의 생산산업을 기반으로 하여 번영과 안정의 토대를 만든 시간이었다. 이제 일본의 제국주의는 한반도에만 있기엔 생산의 총량을 소화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만주로, 중국으로 시야를 넓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한편 20년대 들어 만주와 연해주등에 삶의 터전을 만든 대한의 백성들과 독립군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일본 군대의 약을 올리는 기습공격을 자주 감행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군들도 노골적으로 중국 국경을 넘어 조선인 민간 부락에 대한 보복을 빈번하게 자행하고 있었던 바로 그즈음이 바로 봉오동 전투의 시작점이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일본은 이참에 아에 만주의 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로 작정하고 신식 무기와 대포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하여 만주로 진격한다. 일본군이 조선인 부락을 초토화 하려는 이유는 이들이 독립군의 생계에 필요한 ‘보급부대’ 역할을 지금까지 해 왔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실상 조선 민가의 초토화는 이후 독립군들에게 상당한 어려움을 주었다. 그래서 감자 하나 나눠먹기도 힘든 모습이 영화에서 보여지기도 했다. 이런 불리한 상황과 전황을 이겨내기 위해 독립군은 봉오동의 특수한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이 역시 ‘명량’에서 진도 울둘목 앞바다의 험한 수로를 이용한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은 원래 마적 출신이나 어느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대오각성 끝에 독립군의 맹장이 된다. “우리 장군님, 우리 장군님”을 입에 달고 사는데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의 수하이기도 하다. 사격술이 좋고 몸이 날랜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가 영화의 중심 인물이다. 해철은 일본군의 피를 손바닥에 적셔 ‘대한독립만세’라고 벽에 적을 정도로 일본군이라면 이를 간다. 장하는 엄마처럼 여기던 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하지만 다시금 전투력을 회복하여 적을 고지까지 유인하여 기관단총으로 일본군 분대원을 전멸시킨다. 가장 독립군 다운 독립군의 역할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장하가 산에 오르는 일본군을 향해 쏴댔던 무기는 미국 치과의사가 발명한 자동 게틀링기관단총이다. 동학혁명 당시 백산에서 벌어진 동학농민군과 조일 연합군의 마지막 전투가 머리에 떠 올랐다. 죽창과 낫으로만 무기를 삼았던 동학군은 일본의 개틀링 기관총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었고 농민들의 시체가 쌓여 백산을 이루었으며 흐르는 피로 강이 되어 흘렀다. 장하가 미친 듯 쏘아대는 연발 기관총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일본군을 보며 요즘 일본 때문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어지는듯하다. 물론 봉오동전투에서 실제 개틀링 기관총은 사용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시대정신’을 담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는 장면이 있다. 황해철은 일본군 초소를 습격하여 어린 일본군 장교 유키오(다이고 코타로)를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아 끌고 다니면서 일본군이 얼마나 악랄한 만행을 자행하는지 직접 보게 만든다. 어린 일본장교는 도쿄제대를 졸업하고 아버지도 전쟁영웅인 일본의 엘리트다. 무슨 의도였을까? 직접 보라는 거다. 그래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하게 하려는 의도이며 이를 똑똑히 보고 역사에 전하라는 뜻이다. 일본군에게 동생을 잃은 춘희(이재인)도 일본의 실상을 알고 혼란스러워 하는 유키오에게 연민과 함께 꽁꽁 갇혀있던 마음의 빗장을 열기 시작한다. 용서의 첫 번째 단계였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반일인가 극일인가? 아니면 반일하여 극일하는 건가? 온갖 논의와 논쟁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영화는 평면적이다. 캐릭터의 이중성과 깊이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게 ‘봉오동 전투’의 큰 결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나와 적이 부딪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고민은 당연히 없다. 죽고 죽이는 전투에서 이분법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 적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집에 들어 온 강도들인데..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증오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고 영화를 보고 난 어느 젊은 평론가는 말한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기억의 힘은 증오로부터 시작한다. 진정한 증오야말로 상대에 대한 화해의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일간의 여러 상황들을 보면서 국력의 차이등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가자거나, 즉자적 감성보다는 이성적으로 난관을 뚫어보자는 사람의 주장도 많은걸로 알고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역사도 사람이 만드는거고 용서도 사람이 하는거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현실과 이성 이전에 역사적 팩트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어지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화해가 있어야만 두 나라의 먼 관계가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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